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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배의 나무와 숲

제재의 역설과 인도적 지원

글 | 이인배 협력안보연구원장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5-15 15:38

▲ 최근 공개된 FAO/WFP의 북한 식량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서 가장 부족한 식량은 쌀이 아니라 옥수수다. 쌀은 56만톤 정도 부족한 것으로 조사된 반면, 옥수수는 83만톤이 모자란다. 사진은 지난 2011년 7월 26일 굿네이버스 등 NGO 주도로 밀가루 300톤을 실은 트럭이 북한 사리원시를 향하고 있는 모습. 사진=조선DB.
제재의 역설(sanctions paradox)이란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효과가 나타난다는 의미다. 이는 트프츠 대학의 다니엘 드래즈너(Daniel W. Drezner) 교수가 1999년 그의 저서에서 사용한 용어다. 드래즈너 교수는 국제 재제는 대량살상무기의 포기와 같은 당초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그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으나, 일정 부분 양보는 얻을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미국의 동참이 국제 제재 성공 여부의 가장 중요한 가장 요건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큰 문제는 제재로 고통을 받는 대상이 제재 대상국의 정부여야 하는데, 오히려 해당 국민들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제재 대상국 정부는 제재의 부당성을 제기하며 반격하는 빌미를 갖게 되고, 역설적으로 체제 자체의 문제를 회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으로 야기된 유엔안보리 제재는 2006년 10월 9일 유엔안보리 결의 1817호를 시작으로 10여차례 이루어졌는데, 2016년 이전까지는 핵무기, 대량살상무기, 탄도미사일 및 관련 기술에 관한 금수조치에 집중했다. 이를 스마트 제재라고 성격규정하면서,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되, 북한 주민들의 피해는 최소화하는 제재 조치를 추진했다.
 
정책실패로 인한 경제난을 유엔제재로 탓으로 돌려

그런데 2016년 1월 6일 4번째 핵실험으로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는 북한 당국의 선언이 있은 후, 유엔의 대북제재는 성격을 바꾸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다보니 제재의 허점(loopholes)이 너무 많아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했다는 반성과 함께, 핵개발 저지가 아니라 핵을 포기토록 하기 위한 제재로 목표를 전환한 것이다. 핵무기를 보유하는 한 북한 체제가 버티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 후 유엔안보리는 원유, 정제유 수입 제한을 비롯해, 지하자원, 섬유, 해산물 수출금지 그리고 2017년 12월 이후 신규 해외노동자 파견금지 및 2년 내 해외노동자 철수까지 명시한 것이다.
 
바로 지난 4월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해제를 요구한 5개의 유엔제재(UNSC Res. 2270, 2321, 2371, 2375, 2395)가 바로 이것이었다. 북한은 제재가 고통스러워서가 아니라 북한주민들의 삶을 위해 민생과 관련된 제재를 해제해 달라고 제안했다고 강변했다. 이 지점이 유엔제재의 역설의 발동하는 지점이다.
 
북한 주민들의 삶의 고통이 사회주의 폐쇄계획경제의 한계라는 근본적인 문제와 더불어, 북한 당국의 군사부문에 대한 우선적인 자원배분과 돌발적인 김정은의 지시(1호지시)로 인한 경제발전 계획의 왜곡 등 정책실패에 기인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제재 국면에서 북한은 미 제국주의의 공화국 말살정책이 현재 어려움의 원인으로 규정하며, 체제의 정당성 유지에 활용하고 있다. 결국 북한 당국에게 고통을 주어 핵포기를 유도하겠다는 국제제재의 의도가 일정 부분 북한 경제난, 식량난의 변명거리로 활용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 장마당 상황을 보면, 유통되는 상품이 급격히 줄고 있을 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구매력도 낮아져 북한 장마당이 예년에 비해 매우 한산한 상황이다. 그나마 장마당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것이 옥수수, 식용유와 기타 생필품 정도라고 한다. 쌀값은 안정되어 큰 변화가 없고, 옥수수 가격은 변동이 큰 상황이다. 최근 공개된 FAO/WFP의 북한 식량 보고서(FAO/WFP Joint Rapid Food Security Assessment, DPRK)에서도 자세히 보면 가장 모자란 곡식은 쌀이 아니라 옥수수다. 쌀은 56만톤 정도 부족한 것으로 조사된 반면, 옥수수는 83만톤이 모자란다.
 
최근 두차례에 걸쳐 북한이 쏘아올린 ‘불상의 발사체’로 인하여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문제가 국민적 반대에 부딪혔다. 이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사회로 나와 ‘함께 잘 살수 있는 길’로 나서려나보다 기대했던 국민들이 적잖이 실망한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도 결국 주한미군 철수를 겨냥한 기만이었을 뿐이고, 남북한간의 대화무드도 미국의 대북제재를 통한 외교적 핵포기 전략을 변화시켜주기만을 바란 위장평화였을 뿐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적 지원으로 유엔제재 효과의 시너지를 기대
 
국제사회의 대북경제제재는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호흡을 어렵게 만드는 도모지 형벌과 같은 것이 될 것인데, 제재 역설의 빌미를 차단함으로써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인도적 지원은 북한 당국과의 대화를 위한 도구도, 비핵화를 위한 수단도 아니다. 인도적 지원은 그 목적대로 북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물자를, 그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조용히 지속적으로 국제기구를 통해 추진하는 것이 옳다. 쌀보다는 옥수수가 효과적이고(식량이 아니라면 여성을 위한 생리용품도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정부보다는 국제기구가 나서는 것이 제재의 역설을 방어하여, 명분있는 제재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인배 협력안보연구원장

‘나무와 숲’은 현안 이슈에 대해 문제의 핵심을 세밀하게 살펴보는 동시에 큰 틀에서 솔루션을 제공하고자 한다. 주된 관심사는 남북관계, 외교·안보 문제이며, 그 영역을 정치 현안 등으로 넓혀 나갈 예정이다. 현재 협력안보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청와대 대북전략담당 선임행정관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동아시아 갈등을 넘어 협력으로>, <동북아 평화공동체: ‘협력안보’의 모색> 등이 있다.

등록일 : 2019-05-15 15:38   |  수정일 : 2019-05-1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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