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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연의 하루를 살아도 영혼이 숨쉬듯

시골살이 1년의 깨달음,
리틀 포 레스트

글 | 조서연 인생예술학교 교장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5-15 09:53

벌써 1년이라니. 정말이지 엊그제 집을 둘러보고 계약 한 것 같은데 이렇게 빨리 1년이 지났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시 숨을 천천히 고르고 한 해를 돌아보니 그래도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일을 해낸 듯하다. 마음 속에 품고만 있었던 일들을 실제로 해낸 기쁨이랄까. 누구에게는 별일 아니지만 나에게는 하늘의 별을 보는 일처럼 소중한 일들이었고 별일 없이 사는 게 별일처럼 특별한 일상이기도 했다.
 
허름하고 낡아서 손볼 곳이 많은 오래된 시골집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독립 공간이 생겨서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굳이 왜 이러고 살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나만의 놀이터에서 내 멋대로, ‘어떻게 즐겁게 잘살까’ 놀 궁리를 했다. 버려진 것을 주어다가 다시 무언가를 만들고 집 안 곳곳에 벽화를 그리거나 마당을 가꾸며 내 삶에 집중하느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 느낌만이 중요했고 그 느낌을 믿고 따르는 용기만이 필요했다. 결론적으로 시골 살이 1년은 싱그러운 생명의 에너지가 가득했고 그 에너지가 온 몸에 퍼지며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답답한 회색 도시를 떠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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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일 즐거운 일 중 하나, 흙 만지는 일.

작년 6월 시골에 내려와서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낡은 시골집에 묵은 때를 벗겨내고 집안에 온기를 채워가며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손이 닿고 관심을 주는 곳마다 다시 살아나고 변화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삶이 도시에서 머리만 쓰는 삶보다 잘 사는 것 같아 좋았다. 여자 혼자 어떻게 시골에서 사냐며 걱정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도움의 손길과 따뜻한 마음을 보태주는 응원이 많았다. 부족하고 어려운 부분보다 넉넉하고 풍족한 면이 더 많았다. 나눌 것이 많은 삶에 감사함도 커져갔다.
 
시골살이가 궁금해서 놀러오는 분들도 많았고 두 팔 걷어 부치고 도와주겠다고 찾아오는 친구들 덕에 집안은 항상 북적였다. 혼자 시골에 왔지만 혼자 지낸 적은 별로 없이 여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구슬땀이 뚝뚝 떨어지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찬물 바가지를 뒤집어쓰며 여름을 보냈다. 8월 말 무렵에는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보일러를 틀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져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내가 사는 진안 고원은 일교차가 큰 곳이라 한여름 밤에는 선풍기를 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서늘한 편이다.)
 
여름은 어찌 저찌 잘 살았지만 단열이 허술한 오래된 시골집이 겨울에도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점점 불어났다. 사방팔방 황소바람이 들어오는 곳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보일러 기름 값이라도 벌려면 바깥일을 부지런히 해야 했다. 생계를 위한 일들을 하면서 겨울에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마을 벽화를 그리거나 그림을 그려서 팔기도 하고 시장에 나가서 물건도 팔았다. 학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과외도 했다. 버튼 하나로 모든 게 해결되는 도시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난생 처음 월동준비라는 것을 하면서 겨울의 존재를 실감했다. 숨 가쁜 가을도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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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하는 명상 예술 치유 모임 ‘마음 가꾸기’.

겨울이 찾아왔다. 추운 걸 싫어해서 겨울이면 항상 따뜻한 나라로 피신을 다녔는데, 다른 곳보다 지대가 높아 춥고 눈도 많이 오는 고원지역에서 겨울을 맞이할 줄이야. 따뜻한 남쪽 나라나 바다가 있는 곳에 살고 싶었는데 산이 많은 추운 산골 마을에서 살 게 될지 누가 알았을까. 자발적 선택이니 누구를 탓하랴. 오롯이 내가 내 삶을 책임지고 마주해야지. 명상을 하다가 우연히 ‘마이산 근처에 가서 살아라’라는 말 한마디가 환청처럼 들려서 이것저것 고민없이 이곳에 온 것도 이유가 있겠지. 그러니 내가 마주 하는 모든 일도 이유가 있고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난 참 쉽지 않은 길을 간다. 언제나.
 
보일러가 터지고 수도 배관이 터지고, 전기가 나가서 깜깜하고 차가운 방안에 촛불 하나 켜놓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했다. 잘 사는 것 같다가도 갑자기 내 삶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질 때면 마음이 땅 끝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따뜻한 나라로 피신을 갈까, 조금 더 편한 곳으로 이사를 갈까, 그냥 남들처럼 편하게 살까. 겨울 동안 이런 저런 고민을 참 많이 했지만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끌리는 것이 없었다. 피하기보다 오롯이 마주하고 싶었고 나와 약속한 이 실험을 잘 마치고 싶었다. 몸이 편한 곳보다 마음이 편한 곳에 있고 싶다는 게 결론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다짐했다. 잘 버텨보자고, 잘 이겨내 보자고. 그리고 하루하루 즐겁게 잘 지내보자고.
 
오랫동안 배우고 싶었던 풍물을 배우기 시작했고 겨울은 북치고 장구치며 자주 풍악을 울렸다. 내 자신을 위한 응원가이기도 했고 살풀이기도 했다. 그 덕에 대보름날 신고식을 하고 마을 굿판을 벌이며 어느 때보다 더 진실하고 간절하게 올 한 해 잘 부탁한다고 두 손 모아 기도면서 봄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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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의 학교에서 하는 토종씨앗 텃밭 가꾸기 수업 중.

얼마나 기다렸던 봄인가. 살면서 이토록 봄을 기다렸던 적이 없던 것 같다. 겨우내 움츠러진 모든 생명이 다시 깨어나 살아있다고 손짓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봄을 만나자 내 몸도 서서히 깨어나 살아있는 존재로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해졌다. 서서히 땅이 녹아서 폭신폭신한 흙 사이로 새싹이 있는 힘껏 힘을 내서 올라오는 생명의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해졌다. 덕분에 싹을 틔우기 위해 여기저기 씨앗을 퍼트리며 애쓰지만 주변의 잡초들에게 영양분을 더 많이 빼앗기는 느낌이다.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내가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진안에서 어떻게 하면 즐겁게 잘 지낼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말을 한마디 보탤 때마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도 점점 늘어나게 됐다. 반갑고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일이 많아질수록 집안에서 할 일을 점점 내팽개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리틀 포 레스트.(a Iittle for rest) 잠시 숨을 고르고 쉬어 가야 할 때다. 도시에서 바쁘고 정신없는 삶이 싫어서 시골에 왔는데 마음의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무언가에 쫓기듯 일하고 있었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이곳에 왔는데 대충 끼니를 때울 때마다 초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자꾸 ‘이게 아닌데’ 하고 속삭인다. 무언가를 더 많이 해야 하는 덧셈의 삶보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뺄셈의 삶을 실천하고 싶다.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지켜나가고 싶다.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내 영혼이 기쁜 일을 더 많이 하고 싶다.
 
아침 새소리에 일어나고, 마당에 나가 흙을 밟고, 텃밭에 물을 주고, 피어나는 꽃에 인사하고, 손으로 빨래해서 툭툭 털어 빨랫줄에 널고, 햇살 듬뿍 머금은 이불을 덮고, 한가롭게 낮잠자고 있는 고양이를 바라보고, 텃밭에서 건강하게 자란 채소들로 밥을 짓고, 글과 그림으로 일상을 가꾸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마음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별 다른 수입은 없지만 크게 소비하거나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시골살이. 돈을 벌기 위해 꼭 뭔가 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가장 큰 힘이기도 했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건강하게, 불필요한 것은 줄이고 자주 정리하고 심플해지는 것. 그것이 오늘 하루 눈이 부시게 빛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일 테니까. 그 하루가 모여 아름다운 삶이 만들어지겠지. 그렇게 가꾸고 싶다. 내 마음 밭을. 그것이 고작 얼마 안 되는 텃밭을 가꾸고 얼마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바빠지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기에. 그리고 함께 가꾸고 싶다. 우리의 마음 밭에 심은 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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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농사짓기. 텃밭에 물을 주는 행위는 내 마음에 물을 주는 것과 같다.

4계절을 오롯이 만나며 자연의 흐름에 발맞춰 가는 삶이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익숙해지고 싶다. 자연의 법칙을 따르며 자연스럽게 살아갈 때 내 본성대로 잘 살아가는 것일 테니. 본성을 거스를 때 몸과 마음, 영혼은 아프다고 외칠 테니까. 어느 한 곳이라도 아프면 병이 난다. 마음이 고요할 때는 몸과 마음, 영혼이 전하는 미세하고 작은 소리도 잘 들리지만 마음이 분주할 때는 아무리 크게 외쳐도 그 소리를 무시하고 달려간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 가장 바쁜 시기에 자주 자주 멈춰서 우리의 마음을 바라봐줘야 한다. 그리고 마음의 안부를 물어봐줘야 한다. 내 마음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여유가 생길 때 비소로 내 주변이 보인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꽃들이 나 좀 봐달라고 지천에서 손짓하고 초록 잎사귀들이 무성하게 올라와서 바람에 춤추는 나무들도 미소짓는 5월이다. 느끼자, 더 많이. 가슴을 열고 다가가자, 나를 살리는 존재들에게.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조서연 인생예술학교 교장

‘인생예술학교’라는 무대 위를 디자인하는 창조성 강사

등록일 : 2019-05-15 09:53   |  수정일 : 2019-05-1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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