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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연숙의 ‘내겐 너무 그리운 것들’

왜 생선 맛이 변하지?

글 | 이연숙 작가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5-10 21:44

 
“이 맛도 아니네. 지난번에 E마트에서 산 게 꼬리꼬리한 맛이 나서 이번엔 N마트에서 샀는데 이것도 그 맛이 아니네.”
“그 맛이 어떤 맛인데?”
“두툼하면서 담백한 살점이 고소해서 껍질까지 맛있었고 뭣보다 가시가 많지 않아서 내가 엄청 좋아했는데.... 왜 생선 맛이 변하지?”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다섯 세대가 함께 살았다. 그 중에는 시장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집도 있었다. 키가 작달막한 아저씨와 손이 유난히 통통했던 아줌마였는데 그들은 이따금씩 시장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집안에 비릿한 냄새가 그득 찼다. 그런데도 그들이 영 싫지만은 않았던 이유는 술판보다 자주, 생선이 풍성해지는 날이 많았다는 데 있었다. 보통은 팔다 남은 생선이었지만 가끔 한번 씩은 도매업을 하는 박씨 아저씨가 박스 채 마당에 부려놓은 동태며 임연수며 고등어, 꽁치, 준치, 갈치 등도 있었다.
 
다섯 가구가 공평하게 나눠 가져도 양이 많아 공짜 생선이 들어온 날에는 거의 일주일간 그 생선만 먹어야 하는 부작용도 있었다. 나는 그조차 싫지 않았다. 찌개로 끓이는 조리법 밖에 없어서였는지 겨울이면 집집마다 동태찌개 끓이는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갈치는 굽거나 졸였다.

임연수어가 어릴 적 기억으로 남아있는 나와는 달리 동생이 기억하는 준치의 조리법은 조금 특별했다. 가시가 많은 준치는 제 형태로 굽거나 졸이기보다는 곱게 다져 완자로 빚은 후 밀가루와 계란을 묻혀 찌개에 넣어 끓였다. 동생 뿐 아니라 식구들 모두 그 것을 좋아했지만 조리과정이 복잡한 관계로 그리 자주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그에 비해, (그 때는 이면수라고 부르던) 임연수어는 조리법이 간단했다. 기름을 넉넉히 두른 프라이팬에 소금 살짝 뿌린 생선을 튀기듯 구우면 된다. 어쩌면 일하는 엄마대신 저녁 식사를 책임지느라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다는 점이 내가 그 것을 좋아하는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맛은 그 이상이었다. 두툼한 살집에서는 잡내 없는 고소함이 있었고 기름에 튀겨진 껍질은 바삭하면서 쫄깃했다. 이면수를 튀긴 날은 접시에 찌꺼기가 남지 않았다.

몇 년 전엔가 동생은 엄마를 모시고 포구 구경을 갔다가 준치를 보자 무작정 사들고 집으로 와 엄마에게 찌개를 끓여달라고 했단다. 엄마는, 뭘 그런 게 다 먹고 싶다니? 난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라면서도 기억을 더듬어 손끝의 감각으로 찌개를 끓였다고 했다. 맛이 어떠하더냐고 내가 물었다. 그 맛이 아니더라고 동생이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동생처럼 나도 마트에서 임연수어를 보자 반가워 무작정 사들고 왔었다. 그 날 저녁에 기름 넉넉히 두르고 튀겼다. 식감도 다르고 냄새도 내가 기억하던 그 것과 달랐다. 크기가 예전 것보다 작은 것이 혹여 반건조 상태였나 싶었다. 다른 마트에 갔을 때 얼음 조각위에 놓인 생물 임연수어를 확인하고 구입해서 튀겨 저녁상에 올렸다.

‘이게 아닌데...??’

동태도 갈치도 어릴 때 먹었던 그 맛이 아니긴 마찬가지였다. 그 때는 먹을 게 많지 않아 맛있게 느껴졌을 거라고 엄마는 말했지만 생선 값은 그 때에 비해 열배쯤 비싸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다고 해도 그 때 먹었던 굵기의 갈치 가격표를 보고는 차마 사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경우도 많다.
 
연말에 골절로 수술을 받고 회복중인 엄마는 늘 입맛이 없다고 한다. 입맛이 없다는 표현을 ‘아무 것도 맛있는 게 없어, 다 써.’ 라고 찡그리며 말한다. 엄마는 한 공기 소복이 퍼 드린 밥을 반은 국이나 찌개와 먹고 남은 밥에는 찬 물을 부어 마저 비운다.
언제부터 생긴 습관인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비운 밥그릇을 내려놓으며 추임새처럼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내가, 맛있어서 먹는 게 아니야. 먹어야 힘을 쓰니까 억지로 먹는 거지.”
 
엄마는 골반골절, 요양원 등의 단어가 곧 죽음이라고 여기는 여든세 살이 되었고 준치를, 이면수를 추억하는 자식들은 이미 반백을 넘어선 지 오래다. 생선 한 접시에 경쟁하듯 젓가락질이 분주하던 아이들은 이제 없다.
반쯤 남은 밥에 물을 부어 비우는 엄마의 습관처럼 나 또한 나도 모르는 사이 밴 습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생선은 그 시절에 맛있었던 것으로 충분하다. 생선 맛이 변한 게 아니었다. 다만 시간을 떠나왔을 뿐이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이연숙 작가

63년생 토끼띠 평범한 주부이자 작가. 2009년 문예지 <좋은수필>로 등단하고 2014년 친정엄마와 가족, 그리고 자신의 성장기를 엮은 에세이 <엄마 덕분입니다>를 출간했다. 에세이 작가에 이어 소설가에 도전하고 있다.

등록일 : 2019-05-10 21:44   |  수정일 : 2019-05-10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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