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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연의 하루를 살아도 영혼이 숨쉬듯

진짜 내가 되는 것이 가장 자유로운 것

무엇인가 키워내고 살려내고 있다. 남들과 같은 듯 다른 꿈을 꾸며 온 우주를 돌고 돌아 지금은 어느 산골마을에서 하나의 우주를 품고 있다. 이곳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믿으며 하늘을, 나무를, 별들을, 고양이를 키워내고 있다. 경계 없이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가 되고 싶어서 지구별 여러 나라에서 머물고 떠나기를 반복하며 살다가 지금은 내가 두 발을 딛고 서있는 곳에서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글 | 조서연 인생예술학교 교장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4-16 09:38

나는 어디든지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되는 것이 가장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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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집을 계약 하던 날.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시골집에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잡초밭이 되어 있었다.
 
유목민의 삶을 잠시 멈추고 산골마을에서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십년을 넘게 내가 살고 싶은 곳을 찾아 남이 소유하고 있는 집을 옮겨 다니며 살다가 처음 내 집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물론 아직 내가 구매한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 주인 눈치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꾸미고 살 수 있는 공간이라 나에게는 굉장히 의미있고 심장이 뛸 정도로 설레는 ‘의미, 심장’ 한 집이다.
 
전 세계 다양한 나라를 여행 다니며 현지인과 여행자 사이를 오갔다. 수많은 집에 머물기도 했지만 배낭을 풀었다 싸기를 반복하며 채우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힘들지 않게 비우는 게 최대 과제였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공간을 온전히 나의 취향으로 채우며, 내가 원하는 삶을 가꿔가기 위한 시작점으로 내가 나답게 온전하게 살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다.
 
아파트나 오피스텔처럼 시멘트로 만들어진 집이나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구조에 월세 부담을 안고 아둥바둥 살아가기보다는 흙을 밟고, 만지며 마음이 풍요롭게 살고 싶었다. 아파트가 싫었고 답답한 도시는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러나 서울에서 마당 있는 집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때문에 답답한 도시가 싫을 때면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떠났다.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몇 년씩 그렇게 배낭을 메고 살고 싶은 마을이나 나라에 가서 살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서울에 돌아올 때마다 내가 태어난 그곳이 점점 낯설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항상 쫓기듯 바쁘게 살아가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불안해했다. 길을 걷거나 지하철에서 살짝 스치기만 해도 미안하다는 말 대신 욕이 먼저 튀어나올 정도로 분노가 가득했다. 가진 게 많을 때에도 항상 부족했고 불행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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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오래 된 집이 새로운 캔버스가 되었다.

도시에서 나의 삶, 그리고 시골살이를 결심한 이유

나는 도시에서 자주 아팠다.
 
보기에는 체력도 강하고 건강해 보이는데 여기 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최대한 건강하게 밥을 먹으려고 했지만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날이 많아질수록 뱃속은 부글부글 거리거나 가스가 차 변비로 고생을 했다. 속이 안좋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자꾸 짜증이 나고 신경질적일 때가 많았다.
 
도시의 소음이나 현란한 네온사인과 광고들은 나의 귀와 눈을 너무나 피곤하게 했다. 듣고 싶지 않은 것, 보고 싶지 않은 것을 하는 수 없이 봐야 하고 들어야 될 때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무언가를 특별히 하지 않아도 사람 많고 차와 건물들로 빽빽한 도시의 거리를 걸으면 피로감과 스트레스가 온몸에 덕지 덕지 붙어서 감각에 둔해졌다.
 
고요한 자연에서 자연의 주파수에 몸과 마음을 맞춰서 지내다가 혼란스러운 주파수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몸은 격렬하게 원하지 않는다고 저항을 했다. 그렇게 저항을 하는 에너지에 온 힘을 다 쏟다보니 금방 지치고 피로감이 찾아 왔다. 정신없는 도시를 돌아다닌 다음날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워야만 회복이 가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루가 이틀, 이틀이 사흘이 되기도 했다.
 
도시에 있을 때도 친구들과 공원이나 고궁 같이 나무와 꽃이 많고 조용한 곳에서 만났지만 이동을 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는 쉽게 이겨내지를 못했다. 그럴 때마다 간절하게 조용한 산속이나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미세한 진동으로 퍼져나왔다. 하지만 먼 미래 처럼 느껴졌다. ‘여자 혼자 시골에서?’ 전 세계를 혼자 배낭 하나 메고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한국 땅에서 시골로 혼자 가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였다. 고민하고 준비한 기간이 십년이나 걸렸으니까.
 
왜 나는 자주 아픈걸까? 내 몸둥아리가 내 마음과 의지대로 되지 않자 대책이 필요했다. 주변 사람들은 병원을 가보라고 했지만 나보다 더 안녕해보이지 않는 의사에게 내 몸을 맡기며 뭐가 뭔지도 모르는 검사들과 약들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 몸을 내가 들여다보고 내 마음도 내가 더 주의깊게 관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맡기는 것이 아닌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내 몸과 마음을 관리하고 싶었다.
 
아마도 그때쯤 나는 나라는 인간이 강렬하게 궁금했던 듯하다. 그 전까지는 세상이 궁금했다. 나보다는 외부, 나의 시선도 항상 바깥으로만 향해있었다. 그래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온몸으로 느끼고 경험하고 싶어서 세상을 그렇게 떠돌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나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나는 왜 화가 나는지, 나는 왜 우울한지, 내 생각과 관념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그리고 내가 잘 고 있는 건지 확신이 없었다. 질문의 꼬리를 꼬리를 물으면서 답을 찾아가자 모든 게 간결하고 단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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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망. 너와 나 우리, 자연과 우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생명의 에너지와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랬다. 나는 잘살고 싶었다. 인간답게, 온전하게, 영혼이 풍요롭게.

그리고 나로 살아가기 위한 혁명을 시작했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조서연 인생예술학교 교장

‘인생예술학교’라는 무대 위를 디자인하는 창조성 강사

등록일 : 2019-04-16 09:38   |  수정일 : 2019-04-1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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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용  ( 2019-04-17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0
"사람들은 무언가에 항상 쫒기듯 살아가고...가진게 많을때에도 부족했고 불행했다'" 라는 글 가슴깊이 와닿는 맞는 말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답글보이기  뚜시  ( 2019-04-18 )  찬성 : 1 반대 : 0
그러게요! 저도 길을 걷거나 지하철에서 살짝 스치기만 해도 미안하다는 말 대신 욕이 먼저 튀어나올 정도로 분노가 가득했다 이거 보면서 제 모습 같아 부끄러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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