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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일은 9월 11일이다

글 |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4-10 10:05

정부는 4월 11일 오전,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서 광복회 주관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한다고 한다. 원래 문재인 대통령이 건국 100주년 기념식까지 염두에 두고 공을 들였으나 미국 방문이라는 갑작스런 상황 변화로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문제는 4월 11일을 임시정부수립일로 기념하는 것이 과연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1919년 4월 11일 수립된 상해임시정부는 다섯 달 뒤에 출범하는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 부분일 뿐만 아니라 계승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통합 임시정부 수립과정을 보면 그것은 분명해진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국내외에서는 임시정부를 표방한 독립운동 단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 중에 의미 있는 단체는 연해주의 대한국민의회(3. 17.),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4.11), 국내의 한성정부(4.23)로, 이들은 단체 결성과 동시에 효율적인 독립운동을 위한 통합 논의를 진행하였다. 처음에는 상해 임정과 대한국민의회가 내각을 해산한 후 한성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여 통합하기로 하였으나, 내각을 해산한 국민의회와는 달리 상해 임정이 약속을 지키기 않아 다소 혼선이 있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성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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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시정부의 통합 - 천재교육 고등학교 한국사, 249쪽
 
이러한 사실은 아이들 교과서에도 그대로 서술되어 있다. 초등학교 사회6-1 교과서에는 “3·1 운동 전후로 국내외에서 임시 정부가 만들어졌다. 여러 지역의 임시 정부는 독립을 위한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통합 정부를 수립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1919년 9월, 중국 상하이에서 여러 임시정부를 통합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고 하였으며, 중학교 역사② 교과서에는 “여러 임시 정부는 곧바로 통합 운동을 벌였다. 그리하여 한성 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상하이에 위치한 통합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하였다.(1919.9.)<좋은책신사고, 58쪽>”고 서술되어 있다. 또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그 서술이 좀 더 상세하다.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여러 임시 정부는 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공통된 열망을 바탕으로 빠르게 통합 논의를 전개하였다. 그 결과 한성 정부의 각료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고, 연해주와 상하이의 정부는 해산하기로 합의하였다. 통합 과정에서 임시 정부를 무장 독립 투쟁을 지도하는 데 유리한 연해주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과 서구 열강의 조계지역이 많아 외교 활동에 유리한 상하이에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기도 하였다. 마침내 1919년 9월 이승만을 임시 대통령으로 하고 이동휘를 국무총리로 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출범하였다. 임시 정부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삼권 분립에 기초한 민주 공화제를 채택하여 임시 의정원(입법), 국무원(행정), 법원(사법)을 구성하였다.” -비상교육, 290쪽- 

상하이 임정의 대한민국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프랑스 조계라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일본의 간섭과 탄압을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양 열강과의 외교 활동에 유리한 점이 고려되어 위치는 상하이로 정해졌다. 이러한 교과서의 서술을 보더라도 9월 11일 출범한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야말로 이전의 상해 임시정부보다 정통성에서 우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이라 한 것을 두고 그 대상을 4월 11일 수립한 상해 임시정부로 간주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헌법 전문에서 밝힌 법통 계승의 대상은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이며, 이는 또 한성정부의 법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4월 11일 수립한 상해 임시정부와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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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각에서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건국의 시점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것도 잘못된 역사인식이다. 건국을 했다면 국민·영토·주권을 갖춘 독립국가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후 조국 독립을 위해 국내외에서 활동한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은 모두 분리주의자이거나 국가 전복세력이 되버린다. , 김구가 1941년에 건국강령을 제정하거나 1947년에 건국실천원양성소의 소장이 되어 건국을 실천할 인재를 배출하는 등 일련의 활동이 설명되지 않는다. 당연히 1919년 건국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은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있으며, 이는 다시 한성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임시정부 수립일은 411일이 아닌 911일이며, 당연히 기념식도 이날에 거행하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칼럼니스트 사진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

국사교과서연구소장
전 동국대학교 동국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학사/석사/박사수료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박사수료

등록일 : 2019-04-10 10:05   |  수정일 : 2019-04-1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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