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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에 사회계약설을 주장

묵자와 홉스

⊙ 홉스는 종교전쟁과 영국 내전 체험, 묵자는 戰國시대 살아… 한국도 지금 準內戰 상태
⊙ 홉스, “인간은 모두를 두렵게 하는 ‘공통의 힘’ 없이 사는 동안 ‘萬人에 대한 만인의 전쟁’ 상태”
⊙ 墨子, “우두머리가 없던 옛날에는 사람들이 물과 독약으로써 서로 해쳐”
⊙ 혼란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국가·사회 상정… 王權神授說 부정

임건순
1981년 출생.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수료. 저서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생존의 기술, 승리의 조건, 변화의 전술》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관중에서 한비자까지 위대한 사상가 13인이 꿈꾸었던 최상의 국가》 《오자: 손자를 넘어선 불패의 전략가》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세, 동아시아 사상의 거의 모든 것》 《생각이 많으면 진다: 우리가 몰랐던 류현진 이야기》 《야구오패: 한국 야구를 지배한 감독들》

글 | 임건순 동양철학자 2019-07-10 22:14

토머스 홉스(왼쪽)와 묵자. 두 사람은 공포의 시대를 살면서 사회계약설을 주장했다.
  
광화문 근처에 산다. 광화문이 코앞이다. 자주 시위와 분규를 본다. 그러면서 한국의 상황이 준내전(準內戰)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면서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생각까지 해보게 된다.
  
2016년 겨울 환하게 타오른 그 겨울의 ‘촛불’, 촛불의 빛깔은 찬란하지만 잔인한 게 아니었을까? 환하게 타올랐지만 환하게 타오른 만큼 적지 않은 이의 삶을 무채색(無彩色)으로 만들었고, 적지 않은 이들의 목소리를 음소거(音消去)해버린 게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지금 국가의 상황이 준내전 상황으로 기운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촛불 이후 우리 삶이 나아진 게 무엇일까? 우리 사회 양극화(兩極化)가 정말 심한 문제고, 성(城) 안과 밖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던데, 촛불 이후 성안은 더욱 따스하고 풍요로워졌지만 밖의 국민들 삶도 나아진 게 있는지 모르겠다. 나아지기는커녕 궁핍해지고 더욱 고단해진 사람들이 너무 많은 듯싶다.
  
촛불이 타올라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바뀐 세상이 절반 이상의 국민에게 나아진 삶을 느끼게 해주지 못한 거 같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휴전선 아래 내전이 시작된 게 아닐까 싶은데, 지금은 신(新)삼국시대가 아닐까? 휴전선 위로는 북한, 그리고 휴전선 아래로는 두 개의 국민, 두 개의 나라가 있으니, 삼국시대가 다시 열렸다는 생각이 든다.


準내전 시대를 살면서
  
극단적으로 갈린 양(兩) 진영 간에 불신과 증오만이 팽배해 있다. 국가의 헌법이 있고 헌법이 말하는 헌법적 가치가 있다지만, 전(全) 국민을 묶는 기본적 가치는 있는지 의심스럽다. 어떻게든 갈등과 증오, 불신을 수습하고 국민들을 통합해나가야 되겠는데, 나 같은 필부(匹夫) 말고 위정자(爲政者)나 엘리트라는 사람들은 이런 심각한 내전 상황과 관련해 고민이나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뭔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우리 사회를 묶는 기본적 가치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할지’ ‘우리가 공유(共有)해야 하는 미래의 모습은 무엇이 되어야 할지’를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누군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나 같은 소심한 성 밖의 지식인은 이런 시국(時局)을 보며 역시나 책을 꺼내 보고 고전을 다시 들춰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국가에 대해 다시 묻고, 좋은 정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좋은 정치가 행해지려면 어떤 조건들이 선행(先行)되어야 하는지, 고전들에 물어야 한다. 동양철학자지만 동양에만 혹은 서양에만 묻지 않고 두루두루 물어보며 찾으려 한다. 
  
문화와 연대(年代), 시간의 차이를 초월해 아주 흡사한 사상가와 고전이 있다. 홉스와 묵자(墨子), 공자(孔子)와 에드먼드 버크, 한비자(韓非子)와 애덤 스미스 등 문제의식, 개인과 사회를 바라보는 기본적 관점 등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사상가들이 있다. 그들을 차례로 살펴보면서 더 나은 우리 사회의 내일을 위한 생각의 진화(進化)가 있었으면 좋겠다. 첫 번째로는 홉스와 묵자다. 준내전 상황이란 우리의 모습 때문에 그리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운명의 인질이며 희생자이다”라는 말이 토머스 홉스 시대에 일어난 영국 내전 전후(前後)에 널리 퍼졌다고 한다. 홉스는 평범한 사람들에 주목했고, 정치가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고 여겼다. 지금 한국은 사실상의 내전 상황이고, 지금의 정치가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에 봉사하지 못한다고 여겨서 홉스를 선정했다. 홉스만이 아니라 묵자와 같이 엮어서 이야기할 것이다.
  
   
‘공포의 쌍생아’ 홉스
 
홉스의 《리바이어던》표지. 혼돈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를 《성경》에 나오는 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했다.
홉스는 자신을 ‘공포의 쌍생아(雙生兒)’라고 농담 삼아 자주 말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스페인의 무적함대(無敵艦隊)가 쳐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놀란 나머지 홉스를 조산(早産)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1588년 영국 남부 윌트셔주(州)의 맘스베리 부근 웨스트포트 마을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난 홉스는 평생을 그의 농담처럼 공포 속에서 살았고, 공포란 감정이 적잖이 그의 사상을 지배하거나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 공포란 감정은 그의 사상적 영감(靈感)의 원천(源泉)이라는 평이 많다. 인류 사상사 최초로 그가 만들어낸 ‘사회계약론’에는 공포에 공포, 공포에서 벗어나기라는 필사적 명제가 깔려 있다. 홉스를 키운 것은 8할이 공포가 아닐까 싶다.
  
무엇이 그렇게 그를 두려움 속에서 떨게 했을까? 그의 책을 읽어보면 그런 생각이 자주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당시 공포란 감정은 홉스 혼자만이 겪어야 했던 것은 아닌 듯싶다.
  
당시 유럽은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의 여파에 홍역을 앓고 있었다. 신교(新敎)와 구교(舊敎)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우던 때였다. 신교를 믿는 국가, 구교를 믿는 국가가 충돌해 종교전쟁이 100년 가까이 유럽을 흔들고 있었다. 외침(外侵)·분열·살육·공포라는 감정이 온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때였다.
  
종교전쟁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영국은 영국만의 문제가 있었다. 왕당파(王黨派)와 의회파(議會派)로 서로 갈라진 채 싸웠고, 그 싸움은 결국 내전으로 이어졌다. 홉스 당대는 공포는 그저 삶의 조건이자 실존(實存) 자체였을 것이다.
   
〈자연은 그 신체와 정신의 능력 면에서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했다. … 우리가 목적을 달성하는데 갖는 ‘희망의 평등’은 ‘능력의 평등’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므로 만일 어떤 두 사람이 같은 것을 소망하나 그것을 두 사람 모두 향유할 수 없다면, 그들은 적(敵)이 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신의 보존이나 때로는 쾌락이 되기도 하는 그들의 목적 달성 과정에서 서로를 파멸시키거나 굴복시키려고 노력한다. … 이로써 다음과 같은 점이 분명해진다. 즉 인간은 모두를 두렵게 하는 ‘공통의 힘’ 없이 사는 동안에는 전쟁이라 불리는 상태에 있으며 그러한 전쟁은 만인(萬人)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라고 할 만하다.〉 《리바이어던》 13장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1588~1679)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1629년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번역판을 출간하며 지성계에 고개를 내밀었다. 1642년 《시민론》 라틴어본을 출간했다. 1651년 《리바이어던》과 《시민론》을 영어로 출간했다. 최초로 영어로 철학을 시도한 사람, 문제의 인물 그 자체가 되었다. 왕당파와 의회파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하고 불운한 삶을 살다가 번역 일로 생계를 꾸렸다. 그러면서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번역하게 되었다. 늘 세상과 불화(不和)한 불운의 상징이지만, 그는 근대성의 상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홉스의 자연 상태
  
홉스가 말한 사회계약의 전제가 되는 자연 상태에 대한 그의 묘사다. 그가 보기에 자연 상태는 전쟁 상태다. 그때 인간은 아무것도 보장받을 수 없다. 자신이 애써 노동한 결과물부터 안전·생명까지 보장받을 수 없는 사회에서 예술·학문·사상이 있을 수 있을까? 늘 죽음의 공포와 폭력의 위협 앞에서 떨어야 하는데 어떤 것도 꽃피울 수 없다. 그렇기에 홉스는 그때 인간의 삶이란 그저 고독하고 비천하고 잔인하며 단명(短命)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라고 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말로 잘 알려져 있는데, 자연 상태의 모습이란 게 저렇게 끔찍한 상황인가 보다. 항상 전쟁하고 서로가 서로를 언제든 죽이려 덤빈다니 말이다.
  
홉스는 이것을 사회와 국가가 만들어지기 전의 모습이라고 하지만 사실 당대의 모습이 아닐까? 그가 생각했던 시대적 환경을 정말 사실적으로 쓴 게 아닐까 싶은데 묵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국가 이전의 모습, 사회란 게 만들어지기 이전의 모습을 묘사했는데, 홉스처럼 전쟁 상태 그 자체다. 묘사하는 상황의 분위기를 보면 상호 표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사하다.
  
   
묵자가 말하는 太初의 모습
  
《묵자》 상동(尙同)편이 있다. 통치 권력의 기원에 대해서 설명하는 장(章)이다. 아울러 묵자의 인성론(人性論)이 잘 드러나는 장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묵자는 국가가 없기 전의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 세상의 모습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 적나라하게 써 내려간다.
   
〈묵자가 말하였다. 지금 백성들이 처음 생겨 나와 우두머리가 없었던 옛날로 되돌아갔다고 생각해보자. 아마도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주장하는 의(義)가 달라, 한 사람이 있으면 한 가지 의로움이 있게 되고 열 사람이 있으면 열 가지의 의로움이 있게 되고 백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의로움이 있게 되는데, 사람들의 수가 불어날수록 이른바 의로움이라는 것도 비례해서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의는 옳다고 여기고 남의 의는 그르다고 하며 서로가 상대방을 비난하게 된다. 안으로는 부자(父子)나 형제들까지도 서로 원수가 되어 모두 헤어져버리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니, 서로 화합·공생(共生)할 수 없고,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물과 독약으로써 서로를 해친다. 남는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버려두고 돕지 않을 것이며 좋은 도(道)를 숨겨두고 서로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며, 재물이 남아돌아도 서로 나누어 주지 않을 것이다. 천하가 어지러워져 마치 새나 짐승들의 세상과 같이 될 것이다. 천하가 어지러운 것은 백성들에게 천하의 뜻을 통일시킬 수 있는 지도자가 없어서이다. 그래서 천하에서 가장 현명하고 능력 있고 성스러우며 지혜롭고 말 잘하는 사람을 골라서 천자(天子)로 세워 천하의 뜻을 하나로 만드는 일에 종사하게 해야 한다.〉
   
묵자가 말하는 원시시대의 모습이다. 정치권력이 없었을 때 태초(太初)의 인류가 이러했다고 한다. 태초에 정말 인류가 이렇게 살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인데, 묵자는 그렇다고 한다. 당시 정말 격렬하게 싸웠다고 한다. 가족끼리도 봐주는 게 없고, 물과 독약으로 서로 해쳤다고 한다.
  
살벌하게 투쟁하고 쟁탈하는데, 그래서 묵자 자신은 태초의 상황이라 가정한 채 하는 이야기지만, 학자들은 이 장면을 보고 실제 묵자가 살았던 전국(戰國)시대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묵자도 홉스도 정치권력이 부재(不在)하던 시절의 세상의 모습을 말하는데, 각자가 말하는 자연 상태란 것이 어찌 그렇게 닮았는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자연 혹은 자연 상태는 부정적이기만 한 모습인가 보다.
  
   
정치권력 만들기
  
자연, 자연적, 자연상태 혹은 원시(原始)는 사실 두 가지의 상반된 이미지가 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 목가적(牧歌的)이면서 생명력이 넘치는 어떤 이상적(理想的)인 상태로서의 이미지가 있다. 동양에서는 도가(道家) 계열에서 찬미하는 모습이자 상태이다. 기술문명에 비판적인 사람일수록 이런 이미지로서의 자연을 말하며, 때로 현재 사회 대안(代案)의 맥락으로 말하기도 한다. 
  
동양의 도가만이 아니라 서구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 지식인 중에 대표적인 사람으로서 《엔트로피》를 쓴 리프킨(Jeremy Rifkin), 《슬픈 열대》라는 문명비판의 책을 쓴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 Strauss) 등이 있다.
  
이들과 반대로 자연 또는 자연 상태를 야만스럽고 위험한 상태, 동물의 왕국 같은 살벌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칙만이 관철되는 세계로 보는 이미지도 있다. 이런 이미지의 자연을 말한 사람이 바로 홉스와 묵자이다. 문명 이전의 세상은 그저 짐승들이 투쟁하는 공간과 다를 바 없고 야만의 공간이라고 이야기한다.
  
흥미롭게도 이 둘은 이러한 자연 상태를 자신들 정치철학의 주요하고도 독창적인 요소로 삼았다. 다른 사상가들과 구분되는 요소로, 또 자신들 사상에 비중이 큰 요소로 설정했다. 역시나 신기하게도 ‘이러한 자연 상태는 너무도 무서워 못 살겠으니 어떻게든 극복해야 한다’고 똑같이 말했다.
  
두 사람은 극복의 대안으로 역시나 똑같은 것을 제시했다. 정치권력 만들기, 국가 만들기가 바로 그것이다.
  
무엇에 의해서? 바로 사회계약에 의해서!! 인민들 각자의 계약에 의해서 국가권력, 정치권력을 만들어내 자연 상태의 혼란과 무질서를 바로잡고 사람들에게 안락함과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똑같은 대안의 제시, 그리고 더 나아가 계약에 의해서 만들어진 국가권력에 사람들이 절대복종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기까지도 똑같은데…. 자 여기서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인간은 정말 사회적 동물일까? 더 정확히 말해서 묵자와 홉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계약을 통해 국가를 만들어내고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하는데 계약이란 것은 지극히 인위적(人爲的)인 행위이다. 그 계약에 다수(多數)가 참여해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아주 인위적으로 사회를 제조해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생각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사회와 국가는 절대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나 보다.
  
   
사회와 국가는 만들어낸 것이다
  
“국가는 자연의 산물이며 인간은 본성적(本性的)으로 국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zoion politikon)임이 분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사회와 국가는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저 자연적으로 주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자연적으로 본성상 국가란 공동체를 형성하기 마련”이라고 했다. 인간이 왜 국가와 같은 정치공동체(共同體)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가에 대해서 따로 질문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공자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본래 사회 속에서 살기 마련이며 태어나자마자 정치공동체 안에 던져져 누군가의 아버지,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배우자, 누군가의 신하, 누군가의 임금… 이렇게 관계의 장에서 행해야 할 사회적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공자에게 국가는 그저 지극히 자연스러운 질서일 뿐이다. 그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생물일 뿐, 국가 이전의 개인, 혹은 개인들의 국가 만들어내기라는 관념이 그들에게 있을 수 없다.
  
홉스 이전의 유럽, 묵자 이전의 고대(古代) 중국에서는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는 그저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그 국가에서 통치 엘리트들이 행하는 정치가 좋은 정치냐 나쁜 정치냐가 중요했을 뿐이다. 그래서 ‘어떻게 좋은 정치를 할 것인가’만을 논하지, ‘어떻게 국가가 만들어졌고 통치권력이 어쩌다가 생겼는가’를 따지지 않았다.
  
이단자(異端者) 묵자와 홉스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국가의 창설, 국가의 발생에 대해 고민한다. ‘국가란 자연적으로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국가 이전에 사람, 국가 이전에 개인이 있었으며,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국가를 만들어내고 구성시키는데 국가를 왜 만들어내고 정치권력을 만들어내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국가가 해야 할 책무, 그 국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준수해야 할 의무들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보았다. 또 그래야만이 국가와 그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들과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해 제대로 답을 낼 수 있고, 진심으로 책 속의 이상주의가 아니라 현실의 인간을 위한 정치가 행해진다고 보았다. 혼란의 와중에 고통받는 현실의 인간들에게는 안이한 이상주의가 동아줄이 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王權神授說에 활을 겨누다
 
왕권신수설을 주장한 제임스 1세.
자,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사회와 국가의 자연성을 부정하면서 홉스에게서는 주권(主權)·자연권(自然權)이, 묵자에게서는 겸애(兼愛)라는 것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건 차차 설명해나가고 두 가지만 더 말하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선 그들은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도 공격한 사람이다.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와 공자로 대변되는 기존 사회와 전통적 국가관만을 공격한 것이 아니다. 홉스가 《리바이어던》을 낸 이후 비판적 지식인들만이 아니라 왕권파(王權派) 쪽 사람들과 귀족들에게도 괜히 공격을 받은 것이 아니다. 왕이 누리는 절대적 권력의 근거는 무엇일까? 그 신성한 왕의 권력과 힘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일까, 아래에서 올라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계약을 통해 국가와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했던 홉스와 묵자는 둘 다 왕이란 존재 자체를 그들의 사유(思惟)에서 사살(射殺)한 적이 없지만 철저히 아래에서 올라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유가, 특히 맹자(孟子)는 하늘이 천명(天命)을 내리고 그 천명을 왕이 받았다면서 왕권신수설을 주장했다. 묵자의 생각은 달랐다.
  
홉스도 왕권신수설을 부정했다. 신은 인간 세계를 포함한 자연 전체에 질서를 부여하는 존재로 절대적인 숭배의 대상이다? 왕이 가진 권력은 인민이 아니라 세상에 질서를 부여한 신이 준 것이다? 그렇기에 백성들은 왕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 신이 절대권력을 준 군주가 존재하고 군주들에게 인민들은 절대복종해야 한다는데, 그렇게 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세상이 어지러운 것일까? 단순히 백성들이 왕에게 절대복종하지 않아서?
  
“군주제는 신이 명령하는 것이며 왕은 신에게만 책임이 있다. 따라서 왕이 아무리 사악할지라도 국민에게는 비판할 권리가 없다. 즉 왕의 법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 되어 있는 국민은 왕의 심판관이 될 수 없다.”
  
찰스 1세의 아버지 제임스 1세가 한 말이다. 왕권신수설이란 게 뭔지 제대로 알 수 있게 해주는 말이다. 군주는 백성들에게 조금도 책임을 지지 않고 비판할 권리가 인민들에게는 없는 것일까?
  
신이 왕으로 대변되는 국가권력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계약을 통해 국가권력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홉스는 분명히 왕권신수설을 부정한 사람이었다. 신민(臣民)들에게 국왕을 비판할 권리를 허용해야 한다. 더 나아가 저항할 수 있다고 분명히 한 것은 아니지만 계약이라고 하지 않았나? 계약은 조건들로 구성된다. 쌍방이 지키고 수행해야 할 조건들로 구성되고, 한쪽이 조건에 해당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나머지 한쪽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홉스가 저항권(抵抗權)을 말한 것은 아니지만, 계약을 말한 이상 시민들의 저항권이 논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게 틀림없다. 괜히 홉스가 유럽의 근대를 열었다고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정말 중세적(中世的) 질서에 균열을 크게 낸 사람이다.
  
   
묵자, 天子 선출 주장
  
묵자 역시 왕권신수설을 부정한 사람이었다. 국가권력의 기원을 하늘에서 찾고 신비적 장막의 장치로 국왕의 권력을 말하는 유가와 달리 계약을 말했다. 선출을 통해 천자가 탄생되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의 새로운 국가관과 사회권, 국가 창설과 권력의 성립에 대한 이론은 어디까지나 극심한 정치적·사회적 혼란의 시기에 어떻게든 안정과 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묵자가 살던 시대는 춘추시대 말기를 산 공자와 달리 전국시대 초기로, 기존의 모든 질서가 무너지고 형해화(形骸化)되던 시기다. 내전 시기 영국보다 더 살벌한 세상을 살았다.
  
그렇게 혼란스러웠던 시대, 두 사람은 새로운 국가관을 말하면서 인간 사회에 새로운 질서의 축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단순히 전복적(顚覆的) 사유, 이단적 이론이 아니라 어떻게든 시대적 과제를 해내고자 한 사상가들의 치열함을 기억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싶다. 일단 ‘왕권신수설을 공격했다’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했다’ 이 두 가지를 더 이야기하며 홉스와 묵자에 대한 정리를 해본다.
  
아울러 한국 사회는 내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지금, 한국 사회를 보면서 지식인과 ‘먹물’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새로운 가치, 참신하면서 전복적인 사유를 제시하면서 사회통합의 대안과 밑거름이 될 사유를 보여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치열함을 가지고 그런 과정 안에 자신들을 두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음 시간엔 홉스와 묵자의 인간관을 볼 것이다. 둘 다 국가가 있고 인간·개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개인이 있고 난 뒤 사회와 국가가 있다고 했다. ‘국가라는 전제조건에서 정치를 묻고 따지지 말고, 인간이야말로 정치의 조건이니 인간부터 제대로 묻고 따지자’고 한 그들의 생각을 해부해볼 것이다. 그리고 분량이 허락하면 묵자의 겸애 이야기도 해볼까 한다.
등록일 : 2019-07-10 22:14   |  수정일 : 2019-07-1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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