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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유럽’ 블라디보스토크를 가다

⊙ 비행기 타고 2시간만 가면 만날 수 있는 ‘이국적인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 한국 관광객들로 붐비지만 볼거리 등 부족
⊙ 우수리스크엔 ‘연해주 독립운동의 代父’ 최재형, ‘헤이그 특사’ 이상설의 자취 남아 있어

글 | 박희석 기자 2019-03-28 09:47

블라디보스토크 중심가에 있는 ‘극동 소비에트 정권 전사 광장’이다.
  지난 2월 26일~3월 3일,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고 불리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왔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2시간가량이면 닿는 이곳엔 슬라브계(系) 백인들이 우리와 전혀 다른 양식으로 지은 건물에서 그들만의 생활양식에 따라 살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확실히 이국적인 도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럽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고 표현하는 건 어폐가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중심가엔 과거에 지어진 유럽식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자세히 보면 분위기는 유럽의 여느 도시와 다르다. 푸른 하늘, 고풍(古風)스러운 건물, 노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는 현지인 등 유럽 도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풍경’이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없다. 무뚝뚝한 러시아인 특유의 찡그린 표정, 옛 소련 시절 건축물과 각종 선전용 동상, 미세먼지로 가득한 잿빛 하늘은 우리가 아는 유럽과 거리가 멀다. 도로를 가득 메운 ‘노후 경유차’들이 내뿜는 매연을 맡고 있으면, 중국이나 동남아에 온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다. 블라디보스토크는 ‘가까운 유럽’이 아닌, ‘가까운 러시아 도시’일 뿐이다.
 
 
  뒷골목 식당보다 못한 ‘블라디보스토크 맛집’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당시 낮 평균기온은 12~14℃였지만, 바다는 꽁꽁 얼어 있었다.
  연해주(沿海州) 주도(州都)인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시작점이자 러시아 지역의 관문이다. 러시아 극동함대 사령부가 주둔하는 군항(軍港)이면서 연해주 최대 어업기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현재 국내에서 인기 있는 여행지로 부상(浮上)하고 있다. 여행 목적일 경우 2014년 1월부터 ‘무사증 입국(60일 이내)’이 가능해졌고, 직항 여객기 취항 횟수도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 블라디보스토크 시내는 한국인들에게 점령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수 방문지로 꼽히는 ‘아르바트 거리’ 등 주요 관광지는 한국인들로 넘쳐난다.
 
  이 같은 한국인 관광객 증가엔 여행 프로그램의 역할이 컸다. 주(駐)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 의하면,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연해주를 찾는 외국인 국적에 ‘한국’이 압도적으로 많다. ‘현지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들은 몰려드는 한국인 때문에 ‘특수’를 누린다. 해외 체류 시 되도록 국내 블로거들이 ‘맛집’이라고 선전하는 식당을 피하려고 했지만, 호기심에 ‘수○○’이란 중앙아시아 음식점에 들렀다. 식당 안은 온통 한국인이었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몰려드는 한국인 관광객 때문에 오지 않는 것일까.
 
  한국인 관광객들은 같은 블로거의 게시물을 봤는지, 샤슬릭(중앙아시아식 고기 꼬치구이)과 치즈가 들어간 빵 등을 시켰다. 역시 그들과 비슷하게 음식을 주문해서 맛을 봤다. 지난해 키르기스스탄 출장 때 먹은 샤슬릭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없었다. 동대문시장 부근 뒷골목에 있는 러시아 식당보다도 수준이 떨어졌다. 현지 분위기를 느끼며 ‘진짜 러시아 음식’을 먹고 싶다면, 국내 블로거들이 추천하는 식당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물론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이자 조언일 뿐이다.
 
 
  5000원에 발레 공연 관람
 
러시아의 대표적인 발레·오페라 공연장인 마린스키의 연해주 분관에서는 국내와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한 가격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는 짧다. 크림전쟁(1853~1856) 패배 후 ‘흑해 함대 배치권’을 잃은 제정(帝政)러시아가 동방으로 눈을 돌리고 나서 건설된 도시가 블라디보스토크다. 제정러시아는 원동의 항구도시를 키우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훗날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황제가 되는 니콜라이 2세는 황태자 시절인 1891년, 동아시아 여행을 하던 중 시베리아횡단철도 착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했다. 당시 그의 행적은 항구 인근 ‘니콜라이 개선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니콜라이 개선문’ 인근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해군 함정 4척을 격침했던 S-56 잠수함을 개조한 박물관, 러시아 해군의 참전 기념비, ‘영원의 불’이 있다.
 
주말에는 ‘극동 소비에트 정권 전사 광장’에서 현지 수산물과 채소, 치즈, 꿀 등을 파는 장이 열린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무명(無名)용사 동상이 있는 ‘극동 소비에트 정권 전사 광장’이 있다. 광장에선 주말마다 수산물, 채소, 치즈, 꿀 등 지역 특산품을 파는 장이 선다. 광장에서 도보로 5분 정도 이동하면 총연장 9298km에 달하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시작점인 블라디보스토크역이 있다. 이를 제외하면, 블라디보스토크엔 외국인의 흥미를 끄는 관광지가 별로 없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지대의 고도가 낮아 해발고도 214m에 불과한 ‘독수리 전망대’에 오르면 시내 전경을 살필 수 있지만, 현재 이곳은 4월까지 보수공사를 하므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대신 독수리 전망대 바로 앞, 푸니쿨라 정류장 인근에서 금각교를 비롯한 블라디보스토크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서 금각교를 건너면 ‘러시아 대표 공연장’ 마린스키의 연해주 분관이 나온다. 마린스키 연해주 분관에선 오페라, 발레, 협주 등 다양한 공연이 개최된다. 한국보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수준 높은 러시아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안 좋은 자리이긴 하지만, 우리 돈으로 50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발레 공연을 봤다.
 
 
  항일독립운동 근거지 新韓村
 
우수리스크 도라 공원 안에 있는 발해 유적 ‘龜趺’다. 우수리스크 일대는 발해 15부 중 率賓府였다. 당시 솔빈부의 말은 당나라 절도사들이 서로 사들이려던, 발해의 주력 수출품이었다.
  연해주에 한인(韓人)이 살기 시작한 건 1863년이다. 당시 조선인 13가구가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 포시에트로 최초 이주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1914년, 당시 연해주 한인은 6만3000명에 달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한인촌인 ‘신한촌(新韓村)’이 건설됐다.
 
  한인 사회를 바탕으로 1911년엔 독립군 양성을 목표로 한 ‘권업회(勸業會)’가 창설됐다. 1914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 광복군 정부(대통령 이상설, 부통령 이동휘)’가 수립된다. 1919년 일제의 시베리아 침략에 맞서 연해주 한인들은 최초의 임시정부인 ‘대한국민회의(대통령 손병희, 부통령 박영효, 국무총리 이승만)’를 설립했다.
 
  이 같은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은 우수리스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10km가량 떨어진 연해주 제2의 도시 우수리스크는, 인구 14만명에 불과한 소도시지만 우리와 ‘인연’이 깊은 고장이라 방문해볼 만하다. 우수리스크엔 ‘연해주 항일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崔在亨)의 가옥이 있다. 최재형은 그 활동상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다가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들어서 자주 언급되는 독립운동가다.
 
 
  안중근의 후원자 최재형
 
최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재조명되고 있는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원 안)의 가옥이 우수리스크에 있다. 최재형은 1920년 일제의 시베리아 출병 때 체포돼 처형됐다.
  1860년, 함경도 경원에서 노비와 기생의 자식으로 태어난 최재형은 9세 때 부모와 함께 연해주로 가서 러시아에 귀화했다. 형편상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최재형은 10대 초반부터 상선 선원 생활을 하며 견문을 넓히고, 러시아어를 익혔다. 이후 그는 러시아군 통역관, 군납업자로 일하며 큰 부(富)를 쌓았고, 노우키에프스크 한인 마을 도헌(都憲·면장)이 됐다.
 
  당시 최재형은 도헌 연봉 3000루블을 은행에 예금해 그 이자로 매년 한인 학생 1명을 페테르부르크로 보내 공부하게 했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후 군인들이 노우키에프스크로 모이자 이들에게 군자금과 군량을 제공해 의병활동을 지원했다. 1909년엔 직접 의병장으로 나서 일본군과 싸우며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같은 해, 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사살’도 지원했다. 안중근이 순국 한 뒤에는 그 유족을 돌봐줬다.
 
  최재형은 1910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간되던 한인신문 《대동공보(大東共報)》가 재정난에 빠져 폐간되자 이를 인수해, 항일정신을 고취하고 일제의 만행을 고발했다. 1919년엔 상해임시정부에서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임했지만 사양하고 우수리스크에 살며 항일운동을 지속했다. 그는 1920년 시베리아에 출병한 일본군에게 체포돼 처형됐다.
 
 
  ‘헤이그 특사’ 이상설의 자취
 
우수리스크엔 ‘이상설 유허비’ ‘홍범도 기념비’ ‘안중근 기념비’ 등 항일독립운동에 몸바친 애국지사들의 흔적들이 있다.
  우수리스크 군청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고려인 문화센터’에는 2015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옮겨온 ‘안중근 기념비’가 있다. 원래 블라디보스토크주립 의과대 앞에 세워져 있던 이 비석은, 2012년 말 철거돼 방치돼 있다가 2014년 8월 우수리스크로 이전·설치됐다. ‘봉오동·청산리전투(1920)’의 주인공인 홍범도(洪範圖)를 기리는 비석도 있다.
 
  우수리스크 군청에서 남쪽으로 5km가량 이동하면 ‘헤이그 특사’이자 연해주 항일운동의 중추던 이상설(李相卨)의 유허비(遺墟碑)가 있다. 이상설은 1917년, 48세에 생을 마감하면서 “독립된 조국이 아니면 그곳에 내 시신도 들여놓지 않겠다”며 사후 유해를 화장해 쑤이펀(綏芬)강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월간조선 2019년 4월호
등록일 : 2019-03-28 09:47   |  수정일 : 2019-03-28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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