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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해진 북한, 당 중앙위 전원회의의 역할은?

글 | 선수현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2019-04-12 10:28

북한이 4월 9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 10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11일 최고인민회의를 연이어 개최했다. 북한이 주요 회의를 연달아 개최하는 것은 주요 결정사항이 있는 경우로 이례적 일이다.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채택한 2013년에도 3월 31일 전원회의를 열고 다음날 최고인민회의를 진행했다.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노선을 제시한 2018년에는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를 소집하고 9일 뒤인 20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이중 눈여겨 볼 대목은 전원회의다. 북한은 노동당 중심의 체제로 가장 중요한 결정은 당대회에서 이뤄진다. 북한은 1945년 10월 10일 첫 당대회를 열었다. 이날은 당 창건일(일명 쌍십절)로 기념할 만큼 북한에서는 중요한 날이다. 가장 최근에 열린 당대회는 2016년 5월 6일 제7차 당대회다. 1980년 10월 10일 제6차 당대회 이후 36년 만이다. 

북한의 당대회는 노동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당규약상 5년마다 열게 돼 있다. 중국 공산당 역시 5년마다 당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당대회가 열리지 않는 시기, 모든 사업을 관장하며 최고지도기관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다. 북한의 노동당 규약에 의하면 당 중앙위원회는 1년에 한 번 이상 전원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전원회의는 주요 문제들을 토의·결정하고 정치국과 정치국 상무위원회 등의 주요 인사를 담당하기도 한다.
 
김일성 시대에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정상적으로 개최했다. 주체사상의 주요 내용인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 유일사상체계 확립 등이 모두 김일성 시대 전원회의에서 제기된 사안이다. 전원회의가 개최되지 않을 때는 중앙위 정치국과 상무위원회에서 의사결정을 담당했다.
 
1994년 김일성 사후 본격적인 김정일 시대에는 당대회가 열리지 않았다. 전원회의도 드물었다. 1993년 12월 8일 전원회의를 개최한 뒤, 17년 만인 2010년 9월 28일 열렸을 정도다. 이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하는 주요 결정이 내려졌다. 김정일 시대에 당대회·전원회의가 잘 열리지 않은 이유는 김정일이 집단적 토론보다 보고를 듣고 직접 결정을 내리는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이란 시각, 당시 북한 경제사정의 어려움이 작용했기 때문이란 분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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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를 주재했다고 11일 보도했다. 사진=뉴시스.

김정은 시대는 당의 기틀을 잡는 데 주력했다. 2016년 제7차 당대회를 36년 만에 개최했고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역시 부활시켰다. 김정은 시대 들어 열린 전원회의는 올해까지 총 다섯 차례. 2013년 3월 31일 열린 제6기 23차 전원회의는 북한의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선포한 자리였다. 여기서 제6기 23차 회의란 제6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23번째 열린 회의를 뜻한다. 

이후 2016년 5월 6일 제7기 1차, 2017년 10월 7일 2차, 2018년 4월 20일 열린 3차 회의까지 진행됐다. 3차 전원회의는 대내외의 큰 이목을 끌었다.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노선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이를 기점으로 북한은 경제에 집중할 뜻을 밝히며 국제사회의 제재를 해제하기 위해 한국, 미국, 중국 등과 정상회담을 진행하는 외교전략을 구사했다.
 
4월 10일 전원회의에서 북한이 전한 메시지는?

그리고 1년 만에 당 중앙위원회 제7기 4차 전원회의가 4월 10일 열렸다. 전원회의를 주재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혁명발전과 사회주의 건설의 근본요구로부터 당 중앙은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사회주의 강국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정치 노선이라는 것을 재천명하게 된다”며 경제발전 노선의 중심이 ‘자력갱생’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조건과 실정에 맞고 우리의 힘과 기술, 자원에 의거한 자립적 민족경제에 토대하여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전진시켜 나감으로써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되어 오판하는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어야 한다”면서 ‘노딜’로 끝난 하노이 정상회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을 것. 다만 이 이상 미국을 도발할 수 있는 강경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 우리시각으로 12일 새벽에 열릴 예정인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시그널이기도 했다. 김정은 시대에 다섯 번째 열린 전원회의 역시 정책 방향이 달린 메시지를 대내외에 전한 셈이다.

한편 4월 10일 한 매체는 ‘조선노동당 전원회의’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정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우선 “당대회는 1946년 8월 처음으로 열린 뒤 2019년 4월 현재까지 모두 7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북한의 제1차 당대회는 1946년 10월 10일 열렸다. 1948년 8월 처음 열린 건 최고인민회의다. “6차 당대회가 1979년 12월 10~12일에 열렸다”는 대목도 있다. 6차 당대회는 1980년 10월 10일 열렸으므로 역시 잘못된 사실이다.
등록일 : 2019-04-12 10:28   |  수정일 : 2019-04-1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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