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조선일보DB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국무총리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우리나라 학교 교육 연구를 하며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쳤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쉽게 말해서 우리나라 학교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교육 성취는 어떻게 평가할지를 연구하는 곳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시험을 지난 수십 년 동안 해온 것과 같이 종이 시험지 형태의 오지선다형 객관식 찍기가 아니라 영어 말하기, 영어 쓰기를 포함하는 인터넷 기반 영어 시험 개발에 참여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남한과 북한 영어 교육과정과 영어 교과서 연구, 더 나아가 남북한 통합 영어 교육과정 개발, 고등학교 영어1 교과서 검정심사, 초·중등교사임용시험, 초·중·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등에 참여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고교학점제 도입을 위한 연구에 참여했다.

8년 동안 전국에 있는 수백 명의 현직 초·중·고등학교 교사를 비롯해 교수들과 협업했고, 수십 개의 연구과제와 사업을 하며 내린 결론은 우리나라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교육에 관한 치열한 논쟁은 필요하지만, 교육이 정치에 휘둘리면 우리나라의 보다 나은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7일부터 교육플랫폼인 '서울런'을 정식 운영한다. '서울런'은 서울(Seoul)과 배움(Learn)을 합쳐 만든 말이다. 핵심은 학교 밖 교육콘텐츠 업체의 콘텐츠를 저소득층 초·중·고등학생, 학교 밖 청소년, 다문화가정 청소년 등 총 11만 명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예상대로 '사교육 조장'이라는 비난과 '계층 간 교육격차 해소'라는 칭찬이 함께 쏟아져 나왔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청소년에서 그치지 않고, 청년과 모든 시민으로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다. 

2014년 '북한이탈고등학생 영어학습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연구 책임자를 하며, 국내에 있는 북한이탈청소년(중학생, 고등학생), 북한이탈대학생, 북한이탈주민 등을 면담했다. 특히 일반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북한이탈고등학생의 수업 관찰과 면담을 하며 학교에서 모의고사 문제를 해설해주지 않고 중간고사에 상당수를 그대로 출제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학교 시험에 나오는 모의고사 문제는 학원에서 풀어주는데, 그 북한이탈고등학생은 부모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학원비를 달라는 얘기를 못 하고, 결과적으로 중간고사 절반에 해당하는 모의고사 문제는 못 푼다고 했다. 학원에서 이미 모의고사 문제를 풀고 온 다른 학생과 달리 그 북한이탈고등학생은 구조적으로 성적이 올라갈 수 없는 것이다. 비단 이 북한이탈고등학생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운 저소득층 초·중·고등학생, 학교 밖 청소년, 다문화가정 청소년 등의 현실이다. 10여 년전 얘기이고, 코로나19 상황으로 교육 격차가 보다 심각해진 상황에서 오세훈표 교육플랫폼 '서울런'이 필요한 이유다.

한편, 오세훈표 교육플랫폼 '서울런'을 조심스럽게 보는 이유도 있다. 교과서 개발업체(출판사)는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교과용 도서 개발을 위한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에 충실히 따라 교과서를 개발한다. 따라서 5개 출판사든, 10개 출판사든 검정심사에 합격한 교과서는 대부분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엄격한 검정심사를 거치며 헌법 및 관련 법령의 준수, 교육의 중립성 유지, 지식재산권 관련 법령 준수, 교육과정의 구현 및 목표 진술, 내용의 선정 및 조직, 표기와 인용의 정확성 등을 확인한다. 즉, 정치가 개입하지 않는 한 이런 엄격한 검정심사를 통해 학생들에게 비교육적인 내용을 일차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 

그동안 EBSe의 초등학생에게 영어 교과서 기반 멀티콘텐츠 개발 및 보급 심사,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교육콘텐츠 내용심사,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K-MOOC) 내용심사, 학점은행제 학습과정단위 평가 인정심사 등 다양한 심사를 했다. 교육부가 대상이 초등학생이든 성인이든 최소한의 내용심사를 통해 질관리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오세훈표 교육플랫폼 '서울런'은 메가스터디를 비롯한 유명 사교육업체의 교육콘텐츠를 기존 회원에게 제공하는 것과 동일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서울시는 "초·중·고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콘텐츠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때 그 '양질'이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 가장 효과적으로 성적 올리는 기술을 '양질'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 학생들일수록 아직 가치관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고, 학교 밖에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 동원된 다양한 기교와 기술이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 보편타당한 가치를 존중하는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지 않는 이유다. 

오세훈표 교육플랫폼 '서울런'이 교육적으로 엄격한 검증을 하지 않은 기존 사교육업체의 교육콘텐츠를 저소득층 초·중·고등학생, 학교 밖 청소년, 다문화가정 청소년 등 총 11만 명에게 제공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 교수학습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학원에서 사용하는 방식을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최소한의 전문가 심사라도 해서 '양질'의 교육콘텐츠를 제공할 것인지. 중장기적으로 평생교육 플랫폼 완성을 목표로 추진하는 이 실험이 성공할지 나도 진심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