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대통령이 사저에서 피살됐다. 아이티 관련 소식이 큰 뉴스로 보도된 것은 진도 7.0의 지진으로 20만 명 이상이 사망했던 2010년 이후 오랜만이었으나, 지진 이후 더욱 심화된 빈곤과 정치적 혼란에 관한 소식은 종종 전해지고 있었다. 도무지 회복이 요원해 보이는 아이티의 상황을 보았을 때, 아직 알려지지 않은 피살 사건의 구체적 내막과 별도로, 이번 사건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는 '국가' 아이티의 좌절이다.

아이티뿐 아니다. 중미 국가로부터의 소식은 대개 어둡다. 

2021년 중간선거를 앞뒀던 멕시코에서는 선거 전 9개월 동안 88명 이상의 후보가 암살당했다. 영화 '시카리오' 속 카르텔 관련 피비린내 나는 스토리의 현실 확장판이다. 중남미와 미국을 연계하는 이름만큼 거대하고 강력한 카르텔은, 묵인하면 혼돈, 대립하면 전쟁- 답도 없는 현실이다.

살인 범죄울 세계 1위 및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인근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등의 경우를 차치하고라도, 멕시코의 경우는 국경 너머 미국인의 삶을 생각했을 때 더욱 안타깝다. 멕시코와 미국의 다른 삶은 기후 및 문화 등의 차이가 문명 발전의 요인이라는 해석을 무색하게 하기 때문이다. 텍사스와 노갈레스의 예처럼 말이다.  

'텍사스'와 '노갈레스'의 차이 가져온 원인은 뭘까?

텍사스는 원래 멕시코였다. 텍사스는 1836년 중앙집권 강화 관련 개헌에 반발했던 혁명(독립전쟁)을 통해 공화국을 세웠고, 1845년 미합중국에 자발적으로 편입했다. 텍사스의 남다른 자부심과 러시아 경제 규모를 압도하는 부는, 개인 자유를 위해 정부의 크기를 힘껏 제한하는 미국 헌정을 택했던 판단과 성과에 기인한다. 

노갈레스는 절반으로 갈라진 도시이다.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 위에 위치하는 이 독특한 도시는, 남북으로 노갈레스 소노라와 아리조나와 노갈레스로 나뉘고, 양 측 주민의 삶은 상이하다. 미국과의 근접성으로 인해 소노라 노갈레스는 여타 멕시코 도시보다 부유하지만, 역시 미국의 1/3 정도의 소득수준과 열악한 사회경제적 인프라로 인해 주민들은 사소한 혹은 치명적인 고충을 겪고 있다.  

간단하다. 제도이다. 노갈레스는 그곳 사람들과 땅이 행복하며 번영할지 혹은 가난하고 황폐할지의 결정요인은 각 처(處)가 속한 제도임을 보여준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들은 창조적 파괴를 가능케 하는 포용적 제도와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착취적 제도로 설명했고, 덧붙이고 싶은 점은 '성실한 실천' 여부이다.    

성공한 국가의 성실한 실천 요인으로는 사유재산권 확립과 법치 실천, 교육 등이 있다. 핵심은 더디고 힘든 기간이 선행한다는 점이다. 시장이 작동하고 인재가 성장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며, 기존의 착취적 제도와 인습의 잔재 그리고 각종 독재자들이 요소요소에서 발전을 저해한다. 이때가 중요하다. 경제발전과 사회 안정으로의 취약한 단계를 걷는 과정에서,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급진주의가 출현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개인이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견인한다'는 신념이 보편적 가치로 작동하지 않는 한, 많은 경우 급진 노선이 사회를 전복하고 이후 착취적 제도로 귀결된다. 

흑인 노예반란이 프랑스 식민제도를 무너뜨리고 1804년 자유공화국을 건국했던 아이티의 경우는 초반부터 급진 그 자체이다. 미국에 이은 두 번째 독립혁명이자 유례없는 흑인 노예 반란의 성공이었으나, 복잡한 집단 간의 폭력이 난무했던 건국은 이후 자유와 번영을 이뤄내지 못했으며 가난과 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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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다 칼로(가운데)의 남편이자 멕시코의 국민화가인 열렬 사회주의자 디에고 리베로(왼쪽).

넓은 영토와 열정을 가진 멕시코에서 역시, 사회주의 급진노선은 역사의 고비고비에서 모순과 지체가 힘겨웠던 국민의 마음과 삶을 장악했다. 스탈린으로부터 탈출한 트로츠키를 환영해주었던 이는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자 멕시코의 국민화가인 열렬 사회주의자 디에고 리베로이다. 멕시코 대통령궁(국립궁전)이 그의 그림으로 가득한 것은, 사회주의라면 발작적인 반응을 보였던 국경 너머의 미국과 멕시코의 차이이다. 제도의 선택과 실천이 같았다면 서로 간의 우호적 시너지 효과를 통해 지금보다 비슷한 삶을 살았을 두 나라 말이다. 

쿠바 독재타도 시위... 여행자에겐 빈티지한 로망, 현지인에겐 고통인 아바나의 가난

독립 이후 미국과 정치경제 면에서 긴밀하게 연계돼 있었던 쿠바의 예상 가능했던 모습은, 하와이와 푸에르토리코 중간 정도의 지위를 가진 플로리다 풍의 번영이었다. 동료 학생이 '권력에 굶주린 인물이며, 전혀 원칙이 없고, 정치 경력에 도움이 된다 싶으면 어떤 그룹에라도 들어갔을 것'이라 묘사했던 피델 카스트로가, 폭력적 정치투쟁에서 어찌어찌 승리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1959년 권력을 잡은 카스트로가 마르크스주의를 선택한 이후, 쿠바는 미국에서 65km 떨어진 소련의 위성국이 됐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의 독재와 가난이다. 

그 쿠바에서 변혁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다. 아바나와 산티아고 등 쿠바 곳곳에서 혁명 이후 최대규모의 시민이 '영구혁명'을 주장하는 쿠바의 독재체제 타도를 외치고 있다.  

시장경제와 법치가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의 가난과 위험은, 다른 말로 '자유 없음'이다. 많은 세월을 보내며 아직도 자유롭지 않은 중미의 모습은, 국가 실패의 수많은 요인을 극복하고 이곳까지 온 대한민국의 성공을 감탄하게 한다. 또한 비슷한 실수를 적극적으로 해 볼 기회조차 없었던 북한을 생각하게 한다. 

미국과 멕시코 간 일인당 국민소득의 비율은 6.5:1이다. 그 차이로 인한 불법이민의 물결은, 10배에 달하는 남북 간 경제력의 격차가 북한에게 악몽인 이유이다. 쿠바 정부는 시위 확산에 대응하여 전국의 인터넷을 끊었으며, 북한은 '사회주의 수호전' 강화를 위해 '오빠' 등의 한국 말투 사용에 징역형을 처하기로 했다. 자유를 향한 인간의 바람은 너무나도 강력해, 억압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자유와 번영에 적합한 '제도'의 부재가 한없이 아쉬운 중미의 아픔은, 그곳과 이곳 한반도에서 그 제도가 급진주의와 전체주의를 압도하며 확산할 수 있는 날을 고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