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새끼는 '공아지'?
 
國語 이야기 세번째로, 오늘은 우리 언어에 뿌리 깊은 흔적을 남긴 말 중에 ‘아지’라는 단어를 한번 살펴보려고 합니다. 학문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저 개인 주장이 대부분이므로, 다른 견해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에는 ‘아지’라는 말이 들어갑니다. 심지어 돼지라는 단어에도 ‘도(돋)+아지’ → 도야지 → 돼지란 말이 되어 ‘아지’란 말이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고양이’ 새끼는 왜 ‘공아지’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저는 한때 고양이가 중요한 가축이 아닌 관계로 우리 조상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문제의 해답은 역시 시골 말의 흔적에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시골 노인들이 고양이를 쫓으면서 “요! 괴지”하면서 소리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고양이의 옛말은 ‘괴(猫:묘)’라고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고양이도 ‘괴+아지’가 되어 괴아지 → 괴지로 변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조상이 고양이 새끼에도 ‘아지’란 말을 붙였던 흔적을 찾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참고로 어른들은 개를 쫓을 때는 “요! 가지(강아지)”라고 하는데 ‘괴지’와 제대로 짝을 이루는 말입니다.
 
아마 어느 시점에선가 귀여운 ‘고양이’란 말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고양이를 ‘괴지’라고 부르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참고로 고양이란 말은 괴 → 괴이 → 굉이(괴이) → 괭이→ 고넁이(고양이) 등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고, 살쾡이도 결국 같은 부류인데 ‘살고양이’란 말까지 오기 전에 형태가 굳어졌다고 봅니다.
  
‘까치 설날’과 ‘아저씨’의 언어적 상관 관계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해마다 설날이 되면 이 노래가 들립니다. 여기서 ‘까치’란 하늘을 나는 그 까치가 아닙니다. 이때의 ‘까치’는 ‘아지’라는 말이 변형된 것입니다. ‘아지’는 ‘작은 것’을 뜻하는 우리 옛말입니다. 그러니까 ‘까치 설날’은 ‘작은 설날’이란 말로 설 바로 전날이 됩니다. 지금 ‘아지’란 말은 송아지, 강아지, 망아지란 말 등에 옛 뜻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현대 우리말에서 ‘아지’란 말의 흔적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것이 가족의 호칭입니다. 경상도 등지에서는 삼촌 혹은 삼촌 뻘 되는 사람을 ‘아재’라고 부릅니다. 아재는 요즘의 ‘아저씨’란 말과 같습니다. ‘아재’는 또 다른 말로 ‘아재비(아자비)’라고도 합니다. 옛날 옥편에서 삼촌을 뜻하는 叔(숙)자를 찾아보면 ‘아재비 숙’이라고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아재비는 글자 그대로 ‘아지+아비(아버지)’가 되어 ‘작은 아버지’라는 뜻이 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아재’, ‘아재비’, ‘아저씨’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친형제를 일컫는 말이었다가 그 호칭 범위가 점점 확장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아저씨’란 말은 아버지 친형제에게는 잘 쓰지 않는 호칭이 되었습니다.
 
국어 사전에서 ‘아저씨’에 대한 정의를 찾아보면 ‘아버지 친형제를 제외한 아버지 항렬의 남자를 일컫는 말’이라고 설명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아재’말을 아버지의 친형제에게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모든 형제를 ‘아재’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주로 아주 나이 어린 막내 삼촌에게 ‘아재’라고 합니다(물론 요즘은 ‘삼촌’이라는 한자말로 많이 부른다).
 
비록 일부 지역에서 그것도 아주 제한적이긴 하지만 ‘아재’가 아버지의 친형제를 칭하는 말로 실제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아저씨라는 말의 유래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국어 사전은 ‘아재나 아재비는 아저씨의 낮춤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재’나 ‘아재비’란 말이 삼촌 뻘 되는 모든 친척 남자를 칭하는 말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좀 더 격식을 차린 ‘아저씨’란 말이 등장했고, 이후 아저씨란 말이 자연스럽게 ‘아재’나 ‘아재비’보다 높임말의 형태로 자리를 잡지 않았나 추정됩니다.
 
'오라버니'와 '아버지'의 공통점
 
계속해서 ‘아저씨’를 살펴보겠습니다.
북한 일부 지역에서는 아저씨를 ‘아주바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아주바이’의 ‘바이’는 아재비의 ‘비’처럼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아주바이’는 ‘아지+아바이(아버지)’가 되어 역시 ‘작은 아버지’란 말이 됩니다. 참고로 ‘아바이’라는 말은 현재 경북과 북한 함경도 지역에서 ‘아버지’의 다른 말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이처럼 별 인연이 없을 것 같은 경북과 함경도에서 ‘아버지’를 ‘아바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두 지역 간에 어떤 인구 이동 경로가 숨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경북 일부 지역에서 ‘아바이’란 말은 자식들이 직접 자기 아버지 면전에서는 쓸 수 없고, 주로 결혼한 여자가 제 3자에게 자기 남편을 이야기 할 경우 사용합니다.
 
오빠를 높이는 말은 ‘오라버니’이고, 낮추는 말은 ‘오라비’입니다. 경북 일부 지역에서는 오빠를 ‘올바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라버니, 오라비, 올바이란 말에도 아버지를 뜻하는 ‘아비’, ‘아바이’란 말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밖에 ‘할아버지’ ‘할배’라는 말에도 ‘아바이’ 혹은 ‘아비’란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줌마’에서도 발견되는 ‘아지’의 흔적
 
아지란 말과 ‘아주머니’의 관계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아주머니를 일컫는 말은 ‘아줌마’, ‘아지매’, ‘아주마이’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란 말의 공통 형태는 ‘아지+어머니’로 결국 ‘작은 어머니’란 됩니다. 아저씨란 말이 탄생한 것과 똑같은 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상도와 일부 지역에서는 할머니를 ‘할매’라고 부릅니다. 이때 할매의 ‘매’와 아지매의 ‘매’, 아주마이의 ‘마이’ 등은 모두 ‘어머니’란 뜻입니다. 경상 북도 일부 지역에서는 어머니를 ‘어마이(어머니의 낮춤말)’ 혹은 더 줄여서 ‘어매’ 라고도 합니다. 따라서 아지매는 ‘아지+어매’, 아주마이는 ‘아지+어마이’가 되고 ‘할매’는 ‘한+어매, 어마이’가 되므로 결국 ‘마이’와 ‘매’는 ‘어머니’란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할매’, ‘아지매’ 등에 따라붙는 ‘매’는 일본 열도로 건너가서 ‘여자:め’를 가리키는 말로 뜻이 확장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결국 일본에서 ‘여자’를 뜻하는 ‘め’라는 말은 결국 우리의 어머니를 칭하는 말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최근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대륙 한국어’와 ‘열도 한국어’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
 
경상도 등지의 사투리에서 여자를 칭하는 말에 ‘매’라는 말이 들어간다고 해서 “‘매’라는 말이 곧 여자를 뜻하는 경상도 고어(古語)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학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식의 결론 도출은 결과론적인 해석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수 세기를 지나는 동안 아지매, 할매, 어매처럼 형태가 굳어진 유사 단어를 모아 놓고 ‘매’라는 공통점을 발견한 후,“‘매’는 곧 여자를 뜻한다”고 거꾸로 해석하는 오류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매’(め)라는 말이 여자를 뜻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매’라는 말은 뜻의 확장 현상이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예를들면 어머니를 칭하는 ‘엄마’, ‘어마이’, ‘어매’ 등의 말이 다른 말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변형되고 축약된 형태(매)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지, ‘여자’라는 의미로 그 뜻이 확장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사라지고 있는 지방 말은 우리말의 어원이나 원형을 살펴볼 수 있는 단서를 많이 제공합니다.
 
유구하게 이어지는 말의 흔적
 
찾아보면 아지란 말의 흔적은 의외로 많은 곳에 숨어 있습니다.
저는 ‘나뭇가지’의 ‘가지’도 아지란 말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나무의 옛말은 ‘나모’, 혹은 ‘남(ㄱ)’입니다. 용비어천가에 ‘뿌리 깊은 남근 바람에 아니 뮐쎄(흔들린다)’라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따라서 15세기 당시에는 ‘나무를 하러 가다’는 ‘남글(낭글) 하러 가다’라고 했음이 분명합니다.
 
나뭇가지란 말은 처음에는 ‘남(ㄱ)+아지’나 ‘나모+아지’라는 형태에서 시작됐을 것입니다. ‘남글하러 가다’ 처럼 나무란 단어에는 ‘ㄱ’ 발음이 강하게 살아남습니다. 따라서 뒤따라오는 ‘아지’란 말이 자연스럽게 ‘가지’로 발음이 되었을 것입니다.
 
용비어천가를 보면 나뭇가지의 ‘가지’만 발음할 때는 ‘갖’이라는 발음이 살아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발음을 근거로 ‘아지’란 말의 더 오래된 발음을 추정해 보면 ‘앚(혹은 앗)’이라고 발음되었을 확률이 높습니다(注-남(ㄱ)+앚(이)→ 남갓지(아지) → 남가지). 이때 ‘앚(앗)’은 ‘작다’란 뜻으로 옛날에는 ‘아사 아들(작은 아들)’, ‘아사 누이(누이 동생)’ 등이란 말로 쓰였다고 합니다(注- 여기서 ‘아사’라는 발음까지 옛날 그대로라는 의미는 아님).
 
이처럼 ‘앚(앗)’이란 발음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다른 단어와 활용하여 쓰인 예가 있는데도 굳이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갖(=가지)’이란 단어에서 ‘앚(아)’이란 발음을 꺼내 온 것은 ‘갖’이란 단어에 ‘아지’와 ‘앚(앗)’의 형태가 동시에 녹아 있어 두 단어가 한 뿌리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첩을 ‘시앗’이라고 합니다. 이때 ‘앗’은 ‘작다’란 뜻일 수도 있지만 ‘뭔가 생산한다’는 뜻도 가졌다고 봅니다(‘앗’을 처를 뜻하는 ‘갓’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학자도 있음). 결국 ‘아지’ 혹은 ‘앚(앗)’은 ‘작다’란 뜻 외에도 ‘뭔가 시작하는 것’, ‘뭔가 태어나는 것’, 혹은 ‘새끼’란 뜻을 다 포함 하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생명의 탄생이나 시작과 관계있는 ‘알’과 ‘아기’, ‘암놈’ 등의 단어도 ‘앚(앗)’혹은 ‘아지’란 말이 관여하면서 탄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