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책 표지 캡처

계간(季刊) 종합문예지 《문예바다》(대표 백시종)의 도서출판 브랜드 ‘문예바다’가 서정시선집(抒情詩選集)을 기획했다. 우리네 시단(詩壇)의 정통 서정시인(抒情詩人)들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시집 시리즈로, 단정한 디자인과 아담한 포켓형으로 제작돼 작가와 독자들 사이에서 ‘읽기에 편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문예바다 서정시선집 시리즈는 원로시인 이수익의 《그리운 악마》를 시작으로, 두 번째가 강인한의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 세 번째가 조창환의 《황량한 황홀》로 이어진다. 4~5번 시리즈인 한영옥의 《사랑에 관한, 짧은》과 윤석산의 《반달은 반쪽인가》도 근간(近刊)될 예정이다.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수익은 한국 정통 서정시의 맥을 현대적인 호흡과 맥박으로 되살려낸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힌다. 사랑과 슬픔이라는 전통적인 삶의 서정을 바탕으로 일상의 사소한 사물과 생물에 대한 애정, 그리운 사람에 대한 갈망을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게 노래했다. 《그리운 악마》는 그동안 펴낸 열두 권의 시집들 중 서정시의 정수(精髓)들인 57편을 엄선해 담아냈다.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강인한은 그동안 출간한 시집 11권에서 54편을 가려 뽑아 《당신의 연애는 몇 시인가요》를 묶었다. ‘목숨을 걸고 시를 쓴다’는 치열한 정신과 불길을 단련하는 각오로 시를 써온 저자의 짧고도 강렬한 시론(詩論)이 실린 시집이다. 강인한은 평소 “시는 언어의 보석이다. 그 속에서 빛나는 것은 시인의 영혼”이라는 지론(持論)을 지키며 시를 쓰고 있다.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조창환은 이번 시선집 《황량한 황홀》에서 “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세상에 관한 기록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과는 다른 세상이 있음을 확신하는 태도, 그 다른 세상에 대한 꿈꾸기와 열망과 동경이 초월에 대한 감수성”이라는 시론을 펼쳤다. “시 쓰는 일은 물고기가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마음과 같다”는 순수한 시세계를 보여준다. 세 권의 시집에 실린 대표작 1편씩을 소개한다.

1. 이수익 - 골목길


네가 사라져 버린 좁은 그 골목에

일 년이 가도 십 년이 가도 변치 못할

기념비 같은 내 사랑,

나타날까 봐

처연하게 온몸에 비를 맞으면서 기다리고 있는

이 마음

벙어리 같은, 치욕 같은, 몸부림 같은 내 사랑

그 골목길 끝에서

울고 있네


2. 강인한 - 어떤 사랑 이야기


스무 살 무렵

내 사랑은 설레는 금빛 노을이었다.

비가 내리고

눈이 쌓이고

서른 살 무렵

내 사랑은 희미한 꿈결 속을 뒤척이는

가랑잎이었다.

속절없는 바람이 불고

바람 위에 매운바람이 불고

인제 사랑은

삶보다 어렵고 한갓 쓸쓸할 뿐,

어느 쓰라린 어둠 속

한 덩이 빛나는 슬픔으로

내 사랑은 운석(隕石)처럼 묻혀 있을까.


3. 조창환 - 은어


반짝 빛난 것이 비늘이었던가

수양버들 그늘 사이 봄빛이었던가

섬진강 물길에는 봄 벚꽃 잎 하르르 쏟아지고

은어 떼는 흰 나비처럼 자유롭다

백자 항아리에 매화 그늘 비치듯

강물을 끌어안은 은어 떼가 얼비친다

한때 불이었고, 한때 바람이었고

한때 그리움이었고, 한때 사랑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한 천년쯤 저쪽에 있는

헬리콥터 자국 같은

은어 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