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본인 제공 및 책 표지 캡처

한양대 명예교수 이상호(李尙鎬) 시인이 신작 시집 《국수로 수국 꽃 피우기》(넓은마루)를 펴냈다. 계간 시지(詩誌) 《시와함께》 시인선(詩人選)의 첫 작품인 《국수로 수국 꽃 피우기》는 이 교수의 10번째 시집으로 표제작 ‘국수로 수국 꽃 피우기’를 비롯한 70편의 작품을 담아냈다.

이 교수는 ‘시인의 말’에서 “얄궂게도 정년(停年)을 맞자마자 뜻밖에 코로나로 집지킴이가 되는 바람에 한동안 좀 느슨했던 시혼(詩魂)을 조여 다작(多作)의 행운을 얻었다. 덕분(?)에 이번 시집은 대부분 미발표 신작으로 엮으며, 애초에 꿈꿨던 창작시집 10권을 생각보다 일찍 채우는 기쁨도 누린다”며 “운동선수가 힘 좀 뺄 줄 알 때쯤이면 은퇴 시점에 가깝다고 들었는데, 나도 여태 군말 빼는 일에 서툴다. 시적인 것, 시의 씨앗 한 톨 심는 일이 그토록 힘듦을 새삼 느낀다, 말 욕심을 버리는 일에 더 치열해져야겠다”고 출간의 소회를 밝혔다.

이 교수는 시집 권말(卷末) 부록 ‘나의 시적 편력 – 멋과 맛, 시다운 시를 위한 군소리’에서 “나는 예술로서의 시란 모름지기 읊조리는(노래하는) 맛이 먼저이고 여기에 사유의 깊이가 뒷받침될수록 더욱 좋아진다고 생각한다”며 “시는 시를 이루도록 작용한 시적 묘미를 고려하고 알아채야만 시를 읊조리고 음미하는 궁극적 이유인 즐거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예술이란 예술가의 눈으로 세계와 존재를 바라보고 새로운 경험과 감성을 추구하는 분야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상투성을 뒤엎어야 제구실을 할 수 있다”며 “더 강하게 말하면 모든 창작 과정이 실험적인 의미를 지녀야 한다. 이른바 낯설게 하기로 새로움을 갖지 않으면 개성이 없어 독자의 가슴을 울렁이게 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요컨대 좋은 시, 곧 시다운 시는 서정시 본래의 짧은 형식을 지니면서도 내적으로는 깊은 울림과 산뜻한 맛을 지녀야 한다. 특히 요즘 필요 이상으로 늘어져 도무지 읽을 맛이 안 나고 느낌도 오지 않는 장황한 넋두리 같은 시들이 차고 넘치는 기현상을 지겹게 보면서 자꾸 빨려들어 읊조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우러나는 맛깔스러운 시가 무척 그립다”며 “이제는 시의 우주 속에서 더 자유로이 날도록 상상력의 날개 근육에 살을 붙이는 일에 전념하며 식은땀 대신 구슬땀에 흠뻑 젖고 싶다”고 밝혔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이 교수는 한양대 국어국문학과와 동(同)대학원 및 동국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 한양대 한국언어문학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시인 ‘청록파’ 박목월(朴木月)의 직계제자로 1982년 월간 시지 《심상》 신인상에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금환식》 《그림자도 버리고》 《시간의 자궁 속》 《그리운 아버지》 《웅덩이를 파다》 《아니에요 아버지》 《휘발성》 《마른장마》 《너무 아픈 것은 나를 외면한다》 《국수로 수국 꽃 피우기》 등 10권을 펴냈다. 대한민국문학상, 편운문학상, 한국시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문화관광체육부 장관 표창 등을 받았다. 한국시인협회 감사·사무국장·기획위원장과 계간 시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을 지냈다. 현재 한양대 명예교수와 한국시인협회 이사, 계간 시지 《시와함께》 주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하 신작 시집에 실린 대표작 3편을 소개한다.

1. 국수로 수국 꽃 피우기


가끔 자리를 바꾸어 볼 때가 있다.

네가 이를 악물고 불같이 대들 때

내 자리를 너로 옮겨볼 때가 있지


나를 우겨서 너를 얼릴 수도 있고

나를 버려 너를 녹일 수도 있으니

양쪽이 다 나다울지는 모르겠으나


수국을 뒤집어 국수로 만들기보다

국수를 뒤집어 수국 꽃을 피울 때

우리는 새 아침을 맞을 수 있으리


이런 꿈을 꿀 때가 있지 가끔가다

장미를 꿈꾸는 미장이의 마음으로

고단한 저녁일수록 꿈만 부풀리지


그러니 올 아침은 날짜만 다를 뿐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다른 꿈

국수는 국수이고 수국은 수국이다.


2. 상강


밤도 밤 나름

더 두려운 밤이 오는 날


처마를 찾지 못하는 참새떼

산속 풀숲에 노숙하러 가고


강을 물들이던 노을

몸 씻으러 재를 넘고


나는 노을을 벗고

시린 밤에 맞선다.


얼마 남지 않은 이파리들에

마지막 소금 뿌리는 늦가을


3. 달림의 醜學


불빛으로 날아드는 부나비

불빛으로 달려가는 오징어


뜨거운 꿈이 한순간일 줄

어찌 꿈에라도 알았겠어!


저마다 살기 위해 달리고

달리기 위해 마구 달리고


너나없어 헐떡거리며

어디론가 달려가지만


어느 누가 알겠어?

무턱대고 달리다가


밤마다 쏟아져 나오는 저 불빛들에

오징어나 부나비로 바뀔 줄 졸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