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 전경. 사진=조선일보DB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등 현 집권세력이 ‘청년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 당 대표는 ‘청년 장관직’ 신설을 제안했고, 청와대는 25살 대학생을 청년비서관에 임명했다. 차기 대권주자들도 나름대로 청년 정책을 내놓고 있다. 586 세대의 기득권 폐단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여권(與圈)이 청년의 현실과 역량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재보선 참패’ ‘이준석 현상’ 등으로 뒤늦게나마 집권세력이 위기감을 느끼고 변화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게 흠이다. 청년들에게 정치적 참여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각자의 사정에 맞게 여러 유형의 지원 정책을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더 시급한 문제는 ‘무너진 사회적 가치’의 회복이다. 바로 ‘공정’이다. 청년들은 작금의 우리 사회가 공정하게 경쟁해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없는, 힘 있는 사람들의 ‘나눠 먹기’와 폐쇄적인 ‘담합주의’로 물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심에 집권세력이 있다고 본다. 여권이 통렬한 자기 반성부터 해야 하는 이유다.

‘내로남불’이라는 멸칭(蔑稱)으로 표상되는 586 세대의 기득권 장악과 사다리 걷어차기에 대한 청년들의 분노는 지금도 들불 같다. 앞에선 노동자의 비애가 어떻고 자본주의의 탐욕이 어떻다고 질타하던 이들이 뒤로는 제 일가(一家)의 부정축재(不正蓄財)에 골몰했다. 남의 가족은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여기고, 자기 자식은 용으로 만들어 대대손손 영화를 누리고자 개천을 아스팔트로 메웠던 자들의 실체가 마침내 드러났다. 여권 인사들의 위선과 치부(恥部), 강남좌파의 선민의식(選民意識), 운동권 출신들의 과격하고 독선적인 국정 운영에 대한 비판도 끊이질 않는다. 입시 등 교육 문제부터 주식·부동산·가상화폐 등 재테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에서 ‘계층 이동 가능성’을 단절시킨 집권세력의 술수정치(術數政治)에 환멸을 느낀 것이다. 

오늘날 청년들은 정부의 선심성 자리 나눠주기나 세금 뿌리기를 바란 게 아니다. 민초(民草)가 권력의 주인일진대, 국민의 공복(公僕)에 불과한 집권세력에 어찌 얻어먹기를 바라겠는가. 그저 자기 역량껏 일하고 노력한 만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싶을 뿐이다. 이는 ‘상식의 차원’이다. 지금은 기본이 없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다. ‘이준석 현상’에서 볼 수 있듯, 청년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상식의 회복’과 ‘불공정 사회 개혁’에 반영되는 ‘새로운 리더십의 탄생’을 원했다. ‘당 대표 이준석’은 진보세력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선출된 권력’이다. 세대 교체와 시대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힘’으로 ‘당선’됐다. 길을 잘못 들어도 한참 잘못 든 권력이 아량을 베풀어 마련한 자리에 ‘임명’된 게 아니다. 절대 권세의 위정자(爲政者)가 나이 어린 정치인을 낙점(落點)해서 청와대로 부른다고, 휘황한 장관 자리를 만들어 양명(揚名)에 혈안이 된 아이들을 꼭두각시로 앉혀 놓는다고 청년 세대의 삶이 개선되겠는가.

거듭된 ‘보여주기식 정치’에 청년들의 실망감은 높아진다. 진정성 있는 정책 입안과 근본적 노선 수정이 시급하다. 청년들의 마음을 어설프게 땜질하듯 현혹하는 데만 집중한다면, 여권은 ‘제2의 이준석 현상’을 이루기는커녕 차기 대선에서 민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