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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를 사랑하는 한 코미디언이 '짜장면'이 아니라, '자장면'이 맞다고 주장하면서 20년 가까이 '짜장면'에 대한 발음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조선DB

언제부턴가 TV아나운서들이 '효과(效果)'라는 발음을 기존에 발음하던 ‘효꽈’가 아닌 된소리를 제거한 ‘효:과’라고 발음하고 있습니다. '관건(關鍵)'이란 단어도 ‘관껀’이 아닌 ‘관:건’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는 ‘조건(條件)’까지 ‘조껀’이 아닌 ‘조:건’으로 발음하더군요.
 
이런 현상은 이미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당시 아나운서들이 왜 지난 수십년 간 ‘효꽈’ ‘관껀’이라고 발음해 오던 것을 갑자기 ‘효:과’, ‘관:건’라고 힘들게 발음할까 궁금했습니다.
 
사전을 이리저리 찾아보기도 하고, 주위에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 의견이 분분했지만, 국어학자들이 “그렇게 발음하는 것이 맞다”고 하니 그런 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효과’를 된소리로 발음하는 것은 일제시대의 영향으로 우리말이 된소리화 되어서 그런 것이니 원래 발음인 ‘효:과’로 하는 것이 맞다는 ‘그럴듯한’ 주장도 실어놓았습니다.
 
실제 임진왜란 이후 단어의 상당수가 된소리화 된 경우가 있습니다. ‘곶’을 ‘꽃’이라고 발음한다든가, ‘걱다’(것다)가 ‘꺾다’로 된소리화 된 것 등이 그 예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된소리 현상은 일제시대와는 상관없이 수백년에 걸쳐 오랜 시간 동안 음이 변하면서 그렇게 된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한자어 우리말인 ‘효과’, ‘관건’을 비롯 ‘성과(成果)’, ‘사건(事件)’, ‘물가(物價)’ 등이나, 순 우리말인 ‘삽질’, ‘김밥’(‘김:밥’이냐 ‘김빱’이냐 논란이 있음) 등에서도 된소리가 나는 것은 임진왜란이나, 일제시대하고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발성의 특성과 의미의 명확한 구별을 위해 된소리가 나오는 것에 불과합니다.
 
표준발음법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갑자기 방송가에서 우리 말의 된소리화 현상을 줄여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더니 뜬금없이 ‘효과’나 ‘관건’ 같은 발음에서 된소리를 제거하기에 이릅니다.
 
이는 현재 국립국어원의 ‘표준 발음법’에서 한자어(漢字語)의 된소리 발음 규칙은 “제6장 제26항‘의 규정을 따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규정에 따르면 <한자어에서 ‘ㄹ’ 받침 뒤에 연결되는 ‘ㄷ, ㅅ, ㅈ’은 된소리로 발음한다>고 되어 있는데 갈등(갈뜽), 발동(발똥), 절도(절또)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효과’나 ‘관건’은 위 경우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된소리로 발음하면 안 된다는 등식이 성립된 것입니다. 실제 국립국어원은 홈페이지 등에서 ‘효과’의 발음에 대한 문의가 들어오면 “‘효과’는 된소리가 날 이유나 환경이 없기 때문에 ‘효:과’가 표준발음이고, 표준발음을 따른 것이 것이 맞다”는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수많은 단어들이 위의 발음 규정을 벗어난다는 데 있습니다. 같은 조건에서도 어떤 한자음은 된소리가 나기도 하고 어떤 한자음은 나지 않기도 합니다. 국어에서 장기(將棋)와 장기(長技:장끼), 광기(光氣)와 광기(狂氣:광끼) 처럼 같은 발음환경 하에서도 규정을 따르지 않는 단어가 너무 많습니다. 따라서 ‘효과’를 ‘효꽈’로 발음하는 게 틀리다면 ‘광기’도 ‘광끼’로 발음하면 틀린 것이 됩니다. 
 
순 우리말의 ‘물고기’는 ‘물꼬기’로 발음되지만, ‘불고기’는 된소리가 없는 그냥 ‘불고기’로 발음됩니다. 물론 이 현상을 ‘표준발음법 28항’의 근거를 들어 복잡하게 설명(기능을 지니는 사이시옷이 있어야 할-휴지가 성립되는- 합성어의 경우에는, 뒤 단어의 첫소리 ‘ㄱ, ㄷ, ㅂ, ㅅ, ㅈ’을 된소리로 발음한다: 例 문고리- 문꼬리)하기도 하지만, 이것도 사실 발음이 그렇게 나는 명확한 근거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같은 발음 환경에서 제각기 다른 소리가 나는 현상이 벌어질까요?
 
國語 발음의 大원칙은 자연스러운 소리
 
여기서는 문제를 ‘효과’와 ‘관건’ 두 단어에만 좁혀 보겠습니다. 저는 ‘효과’와 ‘관건’에서 된소리가 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발음의 편이성과 발성의 자연스러운 현상’ 때문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먼저 눈을 감고 위 두 단어를 ‘아나운서 방식(혹은 일부 국어학자 방식)’과 ‘기존 방식’(대다수 국민이 읽는 방식)으로 열 번씩만 큰 소리로 발음해보시기 바랍니다. 일부 국어학자들의 획일적 주장이 얼마나 무리수를 동반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겁니다.
 
‘효과’나 ‘관건’을 발음할 때, 앞소리가 한번 막혔다가 뒷소리와 곧바로 연결되는 형태를 나타냅니다. 즉, ‘효’라는 발음을 한 후 한번 닫힌 발음이, 혀와 입술의 긴장을 놓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이어지면서 ‘과’라는 발음을 토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엄격히 하면 ‘횩꽈’가 된다).
 
그래야 발음이 물 흐릇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고, 경제적으로 나옵니다. 그러면 자동으로 된소리화가 되어 ‘효꽈’라는 소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현재 아나운서들의 발음 방식대로 된소리를 죽이고 ‘효:과’라고 한번 발음해보시기 바랍니다. ‘효’라고 말한 후 혀의 위치가 있는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바로 뒷소리를 연결해서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혀와 입술 위치를 한번 재조정하여 억지로 ‘과’라는 발음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관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된소리가 제거된 ‘관:건’으로 발음하려면 ‘관’을 발음하고 나서, 혀와 입술의 위치를 바꾼 후 뒷소리 ‘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발음하기가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이렇게 부자연스럽고, 비경제적인 발성은 국어의 발음 특성과 거리가 멉니다. 자연스러운 발성 특성을 무시하고 억지 발음을 내게 되면 말이 ‘턱턱’ 막히게 되고, 자연스러운 발음을 내기가 어려워집니다. 제가 알기로 이처럼 숨 넘어가듯 불편한 억지 발성 원칙은 최소한 국어에는 없습니다.
 
어원을 훼손해가며 '사이시옷'을 둔 것도 결국 발음의 편의를 위한 것
 
‘효과’와 ‘관건’에서 된소리가 나는 두 번째 이유는 발음의 울림현상 및 성조(聲調)와 관계 때문이라고 봅니다(물론 이 역시도 위에서 말한 발성 특성상 발음의 자연스러운 현상의 범위에 속한다.)
 
이는 ‘물고기’와 ‘불고기’가 발성의 환경은 같아 보이지만, 결국 다른 소리가 나는 이유도 설명해 줍니다. 앞소리의 울림현상과 뒤이어 오는 자음(子音)과의 관계, 물과 불을 발음할 때 나는 혀 위치의 미묘한 차이와 성조, ‘ㅁ’과 ‘ㅂ’의 발음상의 차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물고기’는 ‘물꼬기’로 ‘불고기’는 ‘불고기’로 발음하는 것을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효과’를 ‘효:과’로 발음하는 것보다 ‘효꽈’로 발음 하는 것이 더 편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듯,  ‘물고기’도 ‘물꼬기’로 발음하는 것이 발성의 특성상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말에는 발음의 편의를 위해 사이시옷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즉 말을 편하고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어원(語源)을 훼손해 가면서까지 사이시옷을 집어넣는 것이 국어의 한 특징입니다. 마찬가지로 된소리도 말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나타나는 발음의 자연스러운 현상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발음의 원칙 이전에 소리의 발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십 수년 전 국어를 사랑하는 어느 코미디언이 ‘짜장면’이 맞지 않다며 ‘자장면’으로 읽고 발음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아직까지 이 두 발음을 가지고 어느 쪽이 옳으냐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다수 대중이 발음의 편의를 따랐기 때문에 지난 수십년간 '짜장면'이라고 발음해 온 것이고, 그후 아무리 국어연구원에서 '자장면'이 맞다고 해도 지금도 대다수가 '짜장면'으로 발음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이러한 주장이 최근 우리 말의 된소리화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판 없이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닙니다. ‘새차’를 ‘쌔차’라고 한다거나 ‘조금’을 ‘쪼끔’ ‘잘리다’를 ‘짤리다’ 등의 된소리로 발음하는 것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최근에 억지로 된소리로 만든 단어가 아닌 이상, 발음의 편의상 된소리가 날 때는 나도록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온 국민이 편하게 느끼는 발음을, 자연스러운 발성 현상을 거스르면서까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