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현재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청소년(초중고 재학생 기준)은 약 2200명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남한의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애를 먹거나, 심지어 학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사회 각 분야에서 통일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 탈북 청소년들의 남한 정규학교 학습 실태에 관한 연구는 태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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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영어교육센터 부연구위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영어교육센터 부연구위원 정채관 박사는 최근 탈북 고등학생의 영어학습에 대해 실태조사를 했다. 정 박사는 그 결과를 연구보고서(<북한이탈고등학생 영어학습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탐색>)로 펴냈다. 정 박사는 영국 워릭대학교(University of Warwick)에서 영어교육과 응용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와 연세대에서 남한 학생들의 영어학습 관련 연구를 해왔다.
 
정 박사는 “정부가 통일준비위를 구성하는 등 통일 준비에 착수했지만 한반도 통합의 첫걸음이 될 교육 분야에 대한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현재 우리 고등학교에서 탈북청소년들의 학습 상태를 파악해 이들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모색하는 차원에서 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영어라는 특정 과목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탈북청소년들이 현재 고등학교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과목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우선 조사대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모두 29명의 탈북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면담, 관찰수업 등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정채관 박사와의 일문일답.
 
-이 시점에서 왜 탈북청소년들의 학습 실태조사를 진행했는지요.
 
“세계적 군사ㆍ안보 전략가인 미국의 조지 프리드먼(George Friedman)은 ‘남북통일이 2030년 이전에 이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북한은 정권이 바뀌지 않으면 진화할 수 없는 체제이기 때문에 결국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2030년이면 불과 16년 뒤가 됩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처럼 통일이 10년 안에 이루어질 것으로 내다보는 미국의 석학들도 많습니다. 북한은 내일이라도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나라입니다. 통일이 되면 당장 북한의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는 이에 대한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습니다. 현재 남한의 일반 학교에 다니는 탈북청소년들은 통일 후 교육을 대비한 리트머스시험지와 같습니다. 이들에 대한 학습실태 파악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탈북청소년들의 남한 학교 재학 현황은 어떻습니까.
 
“현재 남한의 초중고(初中高)에 재학 중인 2200여명의 탈북청소년 중 대안교육시설에 다니는 학생은 23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대다수가 남한의 아이들과 섞여서 일반 공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중도탈락률이 무척 높다는 것입니다. 특히 고등학생의 중도탈락률(10%)이 높은데 남한 고등학생의 학업중단율(2%)에 비해 그 정도가 상당히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학업포기는 개인의 교육 기회 상실을 넘어,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의 통합을 어렵게 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확대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과 효과적인 지원은 사회 통합을 위해서도, 통일 이후 교육을 준비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수업에 임하는 자세는 적극적이만, 만족도 낮아
 
-이번 연구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는지요.
 
“이러한 연구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또한 남한 정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탈북청소년(385명)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나마 탈북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서울ㆍ경기권만 한 학교에 한두 명 정도밖에 없기 때문에 이들의 소재를 추적해서 연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담임 선생님도 해당 학생이 탈북 학생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렵게 탈북 고등학생과 접촉이 되어도 당사자가 연구에 협조하지 않으면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다는 점도 연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습니다. 또한 탈북자들에 대한 보안문제도 연구의 걸림돌이었습니다. 이런 여러 현실적인 제약 등으로 서울ㆍ경기도 지역의 재학 중인 탈북 고등학생을 표집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탈북청소년들은 영어를 언제부터 접하는 걸로 조사되었습니까.
 
“개인마다 탈북 과정과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영어를 접하는 시기와 실력이 천차만별입니다. 이미 나이가 제법 들어서 탈북한 학생도 있고, 아주 어려서 탈북한 경우도 있습니다. 남한의 학교에 편입한 탈북청소년의 경우 나이가 보통 남한의 또래 친구들보다 1~2살이 더 많습니다. 상당수 탈북청소년들이 북한을 어린 나이에 떠나왔거나, 북한에 있을 때도 무상 의무 교육이라는 선전과 달리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게 많아 학교에 안 다닌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설문에 응한 62%의 학생은 ‘남한 입국 전 영어를 배운 적이 없다’고 대답했는데, 그 이유가 ‘나이가 어려서’거나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라고 대답했습니다.”
 
-북한의 영어 교육 현황에 대해서 간략한 설명을 부탁합니다.
 
“북한은 교육과정은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소학교 4년, 중학교 6년이 기본 의무교육 과정인데, 중학교 졸업 후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군대에 갑니다. 북한에서도 2008년부터 소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일주일에 1시간씩 가르칩니다. 남한에서 영어를 배우는 목적은 영어로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 시대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기 위함인데 반해, 북한에서는 모든 교과목에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과 주체사상 교육을 우선시합니다. 영어 교과서 역시 이러한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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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고등중학교 영어 교과서.

-북한 영어 교육의 수준은?
 
“출판 전문가들은 북한 영어 교과서의 편집이나 외형은 우리나라 1960~70년대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내용의 수준은 보통 사용하는 어휘를 가지고 판단하는데 전문가인 제가 볼 때 북한 영어 교과서는 보통 수준의 어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보다 수준이 많이 낮다고 할 수 있고, 내용적으로도 우리와 비교하면 부실합니다. 탈북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난 30년간 똑같은 내용의 영어책으로 공부했다고 합니다.”
 
-탈북청소년들은 남한 학교의 영어 수업을 어떻게 느끼고 있던가요.
 
“‘영어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는다’라는 항목에 86%가 긍정적인 답변을 했습니다. 하지만 ‘수업내용의 이해’를 묻는 질문에는 절반에 못 미치는 학생만이 긍정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영어수업의 어려운 점’을 묻는 항목에서는 대부분(82%)의 학생이 ‘영어의 기초가 부족해서 어렵다’는 답변을 선택했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탈북청소년들은 정규 영어수업에 큰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영어수업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수업에 임하는 태도나 영어시험에 대한 인식은 긍정적이라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수업에서 느끼는 만족도는 낮았지만, 수업에 임하는 자세는 적극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수준의 기초영어라면 조금만 노력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지 않나요.
 
“남한 사람들은 탈북 학생들이 우리 민족이고 우리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자란 환경을 놓고 보면 이들은 거의 외국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와 전혀 다른 문화와 이념과 교육과정 속에서 자랐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구결과 특히 영어학습에는 남한 말의 이해 부족과 어휘력 부족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많은 탈북청소년은 남한 말을 익히는 동안 영어학습에 지장을 받고 있었고, 교사들의 말을 낯설어하는 경우가 많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탈북 청소년들의 경우는 더 심각했습니다.”
 
"탈북청소년 지원 시스템 구축 필요"
 
정채관 박사는 “상담을 한 많은 탈북청소년들은 수업에 대한 열의는 있지만, 수업을 이해 못 해서 쫓아오지 못하기 때문에 많이 답답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탈북청소년을 면담한 결과 소위 ‘영포생’(영어포기학생)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재외국민전형을 통해 남한의 고등학생보다 쉽게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 때문에 영어가 중요한 것은 알지만, 해도 안 되니까 그냥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대학에 가봐야 결국 더 힘들어진다는 겁니다. 그나마 고등학교 때까지는 주위의 친구들도 도와주고, 선생님도 도와주지만, 대학에 가면 거의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기 때문에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고 휴학을 하거나 자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정 형편과 학업의 상관관계는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탈북 청소년들의 가정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한 부모 가정도 적지 않았고, 양부모가 있어도 빠듯한 경제 사정으로 자녀의 영어학습을 지원해주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면담을 한 탈북청소년들은 영어학원에 다니고 싶지만, 형편이 되지 않아 다니지 못한다고 대답을 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 연구의 목적 가운데 하나도 이들의 실태를 파악해서 효과적인 지원방법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정 박사는 “탈북청소년들의 영어학습을 위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가 있지만 몰라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며 “영어학습 지원을 위한 중앙 관리 시스템 및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탈북청소년들의 학습 능력 문제는 영어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정부는 탈북청소년을 보안상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방치’와 ‘보안상의 관리’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탈북청소년들은 보안상의 관리라는 이유로 너무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정부가 탈북청소년들의 학습능력 향상을 위한 지원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를 했으면 합니다. 또한 좋은 지원 제도를 만들어 놓고도 홍보가 잘 안 되어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은데, 홍보 방법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더는 보안 탓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실제 통일을 준비하는 자세로 필요한 시스템 구축이 시급합니다.”
 
-그 밖에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현재 서울시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1:1 영어학습 멘토링 프로그램은 매우 우수한 프로그램으로 입증되고 있습니다. 탈북청소년을 위한 영어학습 지원을 위해서는 학습 능력이 비슷한 소수의 학생을 모은 맞춤형 학습 지원이 적합합니다. 다만 개별 교사들이 이 일을 하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온라인 강의를 통해 학생들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선택해서 볼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이를 위해 가정에서 온라인 학습을 위한 컴퓨터, 인터넷, 헤드셋 마련을 위한 지원을 해주면 좋고, 그게 힘들면 방과 후 해당 학교의 컴퓨터실을 이용하도록 하면 더 원활한 지원이 가능합니다. 온라인과 함께 정기적인 오프라임 모임을 병행하면 인성 형성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탈북자 지원이 다문화정책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더군요.
 
“사지(死地)를 탈출해온 탈북 국민을 다문화 가정의 범주에 포함해서 정책을 펴는 것은 어딘가 조금 이상합니다. 그렇잖아도 탈북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다문화 가정을 늘어나기 때문에 탈북자들의 목소리보다 다문화 가정의 목소리가 더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탈북자 지원책이 다문화 가정 지원책보다 뒤로 밀리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탈북청소년의 학습능력 실태 파악과 지원은 당장 남한에 들어와 있는 2000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에 있는 수 백만명의 학생과 통일 후 2세들의 교육 문제로 생각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정채관 박사는 “한편, 이번에 연구하면서 탈북 학생 중에는 폭력적인 학생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남한 학교에서 자기를 무시한 소위 ‘일진’을 폭력으로 제압했다는 탈북 학생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폭력은 남한 학생들이 벌이는 주먹 다툼 수준을 넘어 죽기 살기로 싸우는 심각한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큽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유가 단순히 탈북과정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 경험을 했고, 체제와 교육과정이 다른 남한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학업, 교육관계, 가정생활 등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그것도 그렇지만 북한 체제와 문화 자체가 폭력적이기 때문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북한은 줄기차게 전쟁을 통한 한반도 무력통일을 주장해왔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사상 교육은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문제가 생길 때도 무력, 즉 폭력으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정 박사는 “현재는 남한 학교에 재학 중인 탈북 학생의 수가 적어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통일 후 수백만 명의 북한 학생들과 수백만 명의 남한 학생들이 섞여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상황을 그려보면 학교에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예측하기 힘들다”며 “이 학생들이 학교에 있을 때 학교에서 충분히 보듬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정말 걱정”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정채관 박사는 “현재 북한 학생들과 남한 학생들이 같은 학교에서 공부할 때 어떤 문제가 벌어질지 실질적인 관심이 충분하지 않고 연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우리의 작은 연구가 앞으로 통일을 대비해서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