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쌀 예외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조항의 포함

원래 UR은 우루과이 푼타델에스테(PDE 1986년 9월 15∼19일)에서 시작하여 캐나다 몬트리올 중간평가각료회의(1988년 12월 4∼9일)를 거쳐 벨기에 브뤼셀 각료회의(1990년 12월 3∼7일)에서 끝나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푼타델에스테(PDE) 선언에는 농업부문 무역의 폭넓은 자유화(greater liberalization)를 목표로 한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그 다음해부터 주요국들은 자국의 의사를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먼저 미국은 1987. 7. 6.에 모든 무역정책의 10년 내 완전철폐(Zero Opion)를 주장하는 획기적인 안을 제시하였다. 즉 모든 농산물의 관세를 10년에 걸쳐 0%로 하는 것으로 수입국인 우리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다. 여기에 케언즈그룹(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브라질, 태국 등 14개국)도 비슷한 안을 제시(1988.10.)하였다. 

이에 대하여 EC는 보호 항목의 재조정, 가격 지지의 인하 등 보수적 제안을 하고 일본(1987.7)도 보호정책의 점진적, 균형 있는 완화를 제시하고, 특히 쌀을 의식한 기초식량은 수입제한을 강구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특히 미국제안의 완전철폐(Zero Opion)의 심각성을 인식한 한국도 1988년 10월 처음으로 대규모 대표단(이병석 2차관보외 5명)을 구성하여 한국이 개도국임을 강조하고 식량안보문제를 고려하여 점진적인 자유화 추진을 강조하는 제안을 하였다.

특히 미국은 1988년 10월 모든 수입 장벽 철폐에 대한 구체적 방안으로 관세화(Tariffication)라는 획기적인 제안을 하였다. 다시 말하면 국내가격과 국제가격의 차이를 %로 환산하여 관세로 전환한다는 안(예:국내가격 400, 국제가격 100의 경우 차이가 되는 300%가 관세가 됨)으로 제안하여 이에 대하여 EC, 북구는 유보입장을 내고 일본은 반대 입장을 제시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이 관세화는 UR 농산물 협상에서 공식 안으로 채택되어 그동안 수입을 제한하였던 모든 농산물이 관세로 전환되었다. 특히 미국은 이미 사전에 주요국의 일부품목에 이 안으로 관세율을 시산(예:일본의 쌀 700%, EC의 버터 165%, 캐나다의 체다치즈 228% 등)한 것으로 보아 치밀한 사전준비를 한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예정된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중간평가 각료회의(1988년 12월 4일∼12월 9일)는 미국·EC의 대립으로 결렬되었다. 즉 P.D.E선언의 농업부문 협상목표인 「Greater Liberalization」의 해석을 놓고 두 강대국의 의견이 다른데서 비롯되었다. 미국은 「완전자유화」를 의미한다고 보고 EC는 「단계적으로 낮춘다.」는 뜻으로 해석하여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말았다.

결국 1989년 4월(4.5∼4.8) 제네바의 고위급회의(TNC)에서 최종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농업부문에서 미국과 EC가 조금씩 양보하여 “상당 수준 점진적 감축(Substantial Progressive Reduction)”으로 합의함으로 협상의 동력을 얻게 되었다. 미국은 “상당 수준(Substantial)”을 얻고, EC는 “점진적(Progressive)”을 얻어 양국의 체면을 세운 결과였다. 그러나 미국과 EC가 합의하여야만 결정된다는 나쁜 선례를 남겨 UR이 끝날 때까지 두 협상 주역의 합의가 관례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 회의에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항이 결과 합의문에 포함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쌀의 예외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식량안보에 관한 농업의 비교역적 관심사항(Non Trade Concerns)이 본문에 포함된 것이다. 물론 이는 그동안 회의를 통하여 일본, 스위스, 한국, 오스트리아 등이 강하게 주장한 내용이었다.

중간평가합의문 NTC 조항

 Participants recognize that factors other than trade policy are taken into account in the conduct of their agricultural policies. In the negotiations to achieve the long-term objective, account will be taken of proposals aimed at addressing participants concerns such as food security

 

그러면 이와 같이 우리가 협상 내내 쌀의 예외 근거로 주장한 이 문장은 어떻게 합의문에 들어 갈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당시 우리는 개도국으로 이와 같이 중요한 문장을 넣을 만큼 강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다만 그런 문장이 나오면 강력한 지지의사를 표현하는 정도였다. 

필자는 항상 이 문장이 들어간 경위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있었다. 다만 그 문장 포함에 일본의 역할이 큰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해  그간 필자와 잘 알고 지내던 와세다 대학 선임연구원으로 있는 하야시 마사노리 박사(필자가 농림부 국제국장 때 그는 일본 농림성 국제부장 역임)에게 문의하여 받은 회신(A Memoire on the birth of NTC, 2021.1.15.)에서 그 전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 의하면 중간평가 합의문 결정을 위한 1989년 4월(4.5∼4.8)회의 직전 던켈 GATT 사무총장이 제네바 주재 일본 하타노 대사를 초치하여 일본의 식량안보 관련 문안 포함 주장에 대하여 미국의 강한 반대를 고려하여 삭제를 요청하자 동 대사는 일본의 반대에 의한 또 다른 실패 책임을 우려하여 삭제에 동의하고 이를 본부에 전달하였다. 이 결과를 전화로 보고 받은 농림성 시와꾸지로 경제국장은 곧바로 외무성으로 달려가 구니히로 경제담당 특별대사와 사토경제국장에게 강력 항의하여 외무대신 명의의 긴급지시를 제네바에 보내 하타노 대사가 다시 던켈 총장에게 달려가 동 문장의 포함을 강력 요청하여 이가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이 문안에 대하여 본회의(1989년 4월 5∼8일)에서 일본, 스위스, 한국대표단(조규일 2차관보 외 2인)의 강력한 지지 발언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 중간평가 합의문 조항은 UR협상 내내 한국, 일본이 쌀 문제예외를 주장하는 근거로 이용되었으며 결국 93년 12월 15일 끝난 UR협상에서 한국(10년 유예, 1%∼4% 수입허용)과 일본(6년 유예, 4%∼8% 수입허용)의 쌀 예외를 얻어 내는데 기여하였다. 

다자협상에서 중요한 문장 하나와 단어 하나가 가져오는 결과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필자는 실제 1995년 7월 4일 사뽀로 APEC 고위급회의에서 “in”과 “during” 단어 하나 바꾸는 것으로 미국, 홍콩 등과 밤새 다툰 경험도 그런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