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 기념 연설. 사진=대통령 기록관

오늘(23일) 별세한 전두환(90) 전(前) 대통령은 12·12사태, 5·18광주 민주화운동 등과 관련해 '독재자'라 불리며 비판받았다. 그동안 그의 공(功)보다는 과(過)에 집중된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혹자들이 말하듯 그의 재임기는 한국 역사의 암흑기였을까?  2013년 9월 월간지 《한국논단》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평가' 사설은 전두환 시대를 다른 관점에서 평가했다.

저자 이동유씨는 사설에서 "독재자의 정의(定義)는 장기 집권이다. 헌법을 마음대로 고쳐서 물러나지 않으면서 인권 탄압을 자행하는 사람을 독재자라고 본다"며 전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적 통치를 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독재자'로는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전 대통령은 장기 집권이 가능하던 헌법을 고쳐 대통령의 임기를 7년 단임으로 설정하고 그 약속을 지켰다"며 "그는 더구나 국민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자 이를 막으려 하다가 몰리게 되니 6·29선언을 결단해 이를 수용했다"고 전했다.

또한 "전 전 대통령을 독재자로 규정하려고 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이 되는 것이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 교체의 선례를 남긴 사람'이란 대목"이라며 "한 국가가 민주주의인가 독재인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선거를 통해서 평화적 정권교체를 하고 있는가의 여부"라고 밝혔다.

유럽에선 영국이 1688년의 명예혁명을 통해 평화적 정권 교체의 전통을 확립했다. 미국은 1776년 건국 시부터 이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프랑스는 1871년 보불(普佛)전쟁에 져서 나폴레옹 3세 황제가 쫓겨난 뒤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정권 교체기에 들어갔다. 독일과 일본은 1945년 패전 이후부터 선거를 통한 권력 교체가 가능한 나라가 됐다. 스페인은 철권 통치자 프랑코가 죽은 2년 뒤인 1977년부터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구(舊)소련과 동구권 나라들은 1989년경부터 이 시기로 들어갔다.

저자는 "한국에선 1988년 전두환 퇴임으로부터 이 전통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사설은 전두환 시대의 경제 성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제5공화국 관련 경제정보
박정희 정권 마지막 해(1979년)와 전두환 정권 마지막 해(1988년)의 비교표

1. 1979년 1인당 GNP: 1546달러
2. 1988년 1인당 GNP: 3728달러
3. 1980년대 경제성장률: 연평균 10.1%로서 200여 개 국가 중 1위
4. 1979년 수출 147억 달러, 수입 191억 달러, 경상수지 적자 41억5100만 달러
5. 1988년 수출 600억 달러, 수입 525억 달러, 경상수지 흑자 138억 달러
6. 1979년 국민저축률: 25%
7. 1988년 국민저축률: 34%
8. 1979년 도매 물가상승률: 20%, 1980년은 44%
9. 1983-87년 도매 물가상승률: 연평균 2.7%
10. 1988년 채권과 채무: 외채 320억 달러, 대외자산 253억 달러, 1989년에 순채무국으로 전환.
11. 전화대수: 1982년 300만 대에서 1988년 1000만대 돌파.
12. 소득격차: 1980년에 지니계수가 0.39, 1988년엔 0.34로 축소(수치가 낮아지면 격차가 줄었다는 뜻임).

전두환 정부는 연평균 10.1%로 당시 세계 1위의 고도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이 기간 국민소득은 2.3배로 늘었고 무역적자 구조는 흑자로 바뀌었다. 두 자리 수의 물가상승률은 2%대로 안정됐다. 외채도 크게 줄었고 국민저출률은 일본을 앞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달했다. 또한 통신망 설치와 전자 산업 육성을 국책 사업으로 추진해 1990년대의 인터넷-전자 산업 강국을 예비했다.  

저자는 "이 경제 성장으로 인해 한국 사회에 중산층이 두껍게 등장했다"며 "1980년대 말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약 70%가 됐다. 이들이 민주화의 주력 부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의 온건 성향이 6·29선언으로 나타난 타협적 평화적 민주화의 엔진 역할을 했다"며 "경제 성장이 만든 쿠션이 한국 사회의 바닥에 깔리는 바람에 민주화의 열풍을 견뎌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경제 호황기에 민주화 시위가 절정기를 맞았다는 것은 행운의 타이밍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경제 성공의 공을 전두환 대통령이 아닌 김재익 경제수석한테 모두 돌리려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는 잘못"이라며 "김재익씨를 잘 부린 사람이 전 전 대통령이었고, 김 수석은 1983년 10월에 아웅산 테러로 타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설은 경제 성장은 평화적 민주화와 전 대통령의 단임 실천을 가능케 했고, 동시에 1988년의 서울올림픽을 뒷받침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런 호재로 안보면에서도 대북 우위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끝으로 저자는 전두환 정부의 공과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요청했다.

<전두환 대통령에게는 물론 12·12사태,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등으로 집권한 것과 비자금 모집의 과오가 있다. 이 때문에 그는 2년간 백담사 귀양, 2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이들 과오를 한 쪽으로 놓고 그 반대편에 경제적 성공과 튼튼한 안보, 그리고 단임 실천 및 6·29민주화 선언(직선제 개헌이 핵심)을 놓으면 저울은 어디로 기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