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사진=조선일보DB

내년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차기 대통령의 과제에 관해 밝힌 보고서가 나왔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동아시아연구원(EAI) 대선 특별 논평 시리즈의 첫 번째 보고서로 작성한 '한국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차기 대통령의 과제'.

최장집 교수는 차기 대통령에게 주어질 최대 유산으로 '민주주의 후퇴(democratic backsliding)'를 꼽았다. 최 교수는 촛불 시위 이후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과 역사청산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시위'에 '혁명'이라는 정치적 옷을 입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정권 과제 달성을 위해 국가 권력의 비대화와 개인의 자유 축소, 양극화 심화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차기 대통령이 현 정부의 실패를 냉정히 성찰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을 제안했다.

최 교수는 현 정부가 역사청산을 진행하며 한국 역사의 다층성과 복합성을 간과하고 한국 사회를 '권위주의 세력과 비권위주의 세력',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보수와 진보', '분단에 책임이 있는 자와 없는 자', '민족주의자와 반민족주의자' 등으로 단순화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한국 사회는 필연적으로 깊이 분열될 수밖에 없게 됐고 편 가르기 행태(양극화)가 정치갈등과 정치경쟁을 지배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개혁자'와 '개혁 대상', '아(我)'와 '피아(彼我)'라는 분류, 양분화 작업 또한 계속됐다면서 개혁자가 도덕적인 평가자와 심판자로서 정당성을 주창하고 있는 동안, 사회 한편에서는 '내로남불'이라는 풍자적 말이 심판자들의 도덕적 진실성과 권위는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임을 표현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런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는 문재인 정부의 운동론적이고 민중주의적(populist)인 민주주의관을 통해 뒷받침됐다며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응하는 직접민주주의를 장려하면서, 운동의 관점에서 '민주적 시민 대 기득권자'의 구도를 중심축으로 해, 제도권 정치에 대한 혐오, 정당정치와 선거로 선출된 정치인·입법자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이를 실현하고 선도할 수 있는 사람을 '깨어있는 시민' '개념 시민' '민주 시민' 등으로 호명하고 있다며 한 개인이 인간의 사적, 공적 생활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와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은 곧 정치 참여로 온 사회를 정치화한다는 '과도한 정치화'(over-politiciztion)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문 정부가 던진 특정한 민주주의관과 그에 기반한 개혁 과제 추진은 양극화와 더불어 국가 권력의 확대라는 중요한 문제를 환기시켰다고 했다. 대통령으로 권력이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관행은 제1공화국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됐고, 문 정부 집권 중 한층 더 강화됐다며 국가의 수장으로서 대통령 권력의 확장과 정당의 활동 공간으로서의 입법권과 사법권의 취약성은 삼권분립을 약화화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차기 대통령은 자유주의 정신과 법의 지배를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엘 지브라트가 쓴 '민주주의는 어떻게 붕괴되나'(2018) 책을 인용해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자 법으로 명기되지 않은 두 가지의 권력 행사의 규범으로 '자제'와 '관용'의 중요성을 제시했다.

저자는 대통령은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작동하도록 사법부와 입법부에 대한 권력 행사를 자제하고 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며 청와대 권력을 내각으로 이양해 스스로 축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정수석실의 폐지는 이런 노력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대통령과 경쟁 관계에 있는 정당과 비판세력들을 관용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했다. 정당의 자율성, 특히 강력한 대통령 권력을 향유하는 집권 여당이 대통령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최 교수는 제한적 국가(limited state)를 실현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유주의의 뿌리를 더 튼튼히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게 바로 새로이 선출될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한다고 조언하며 글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