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자유민주주의 수호 집회. 사진=조선일보DB

최근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 후퇴의 조짐이 나타나는 가운데, 한국의 사례를 들어 민주주의의 회복력 강화를 위한 실천 과제를 제시한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달 13일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발표한 동아시아연구원(EAI) 이슈브리핑 보고서 '민주주의 후퇴와 회복력: 한국의 경험'.

강원택 교수는 보고서에서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비교적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민주적 공고화를 이뤄왔다"며 "한국의 민주화에서 핵심적 요소는 절차적 민주주의 확립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1987년 민주화를 시민의 참여로 이뤄낸 것처럼 민주적 공고화 과정에서도 시민의 역할이 중요했다"며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 제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거나 정치적 반응성이 크게 낮아질 때는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제도권 정치를 압박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민주주의의 '위기 징후'라고 할 만한 현상이 목도되고 있다"며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했거나 권위주의 체제에 가깝게 변모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민주주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려할 만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87년 체제'의 핵심인 절차적 민주주의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다며 2012년 대선 관련 '국정원 댓글 사건', 2017년 대선 관련 '드루킹 사건', 2020년 총선 관련 '선거 개표 부정 의혹' 등을 예로 들었다. 

강 교수는 "선거의 공정성과 관련된 의구심이나 개입의 문제가 잇달아 발생하는 것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기반을 해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했다. 이어 "선거 과정의 진실성 시비는 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해 감사원, 검찰 등 '심판 기관'의 중립성이나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 제기와도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이 외에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사건과 법령 제정, 정파적 양극화 현상, 대통령과 중앙정부로의 권력 집중 등도 민주주의의 위기 요소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이런 상황을 '민주주의의 붕괴' 혹은 '근본적인 후퇴'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며,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징후'는 시민의 참여와 제도의 작동 때문에 그 스스로 복원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1997년 외환위기,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도,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민주주의 체제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정치·경제적 위기 상황은 몇 차례 발생했지만 이런 위기는 모두 정치 제도를 통해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위기 징후'나 '민주주의 질의 하락'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민주주의는 상당한 회복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원택 교수는 "한국의 경험 속에서 볼 때,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정권 교체의 가능성과 같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이라며 민주주의의 회복력 강화를 위한 다음 3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 지역주의에 기초한 거대 양당의 카르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례성 높은 선거 제도로의 개혁이 필요하다. 비례성의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는 형태로 제도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계층, 성, 지위, 학력, 직업, 출신 등의 기준에서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되지 않도록 균형 있는 대표성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권력을 감시하는 심판자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강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선관위, 감사원과 같은 행정 기구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이 매우 중요하다. 장기적으로 개헌 과정을 통해 대통령은 행정 수반의 지위로 되돌리고, 대법원에서의 법관 추천 회의의 부활처럼 각 제도적 기관이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확립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의 마련이 필요하다. 

아울러 '제왕적'이라고까지 불리는 대통령 중심 체제의 해체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의 행정 부서와 서울에 집중된 행정적, 재정적 권한을 과감하게 지방에 이양하는 지방 분권의 실현 또한 중요하다.

셋째, 민주주의의 가치를 습득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시민 의식을 일깨우고 가르치는 시민 교육 역시 민주주의의 복원력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전개 과정에서 그동안 강조돼 온 것은 자유보다는 민주주의 측면이었다. 개인의 자유, 다름에 대한 인정, 관용과 배려, 다양성의 존중과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에 대한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