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을 든 아폴론 신.

백신의 개발과 보급이 코로나 종식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박기철 정치학 박사(육군 중령)는 지난 7일 제주평화연구원 학술지 'JPI PeaceNet'에 게재한 '팬데믹 시대, 국제사회는 왜 협력해야 하는가?' 기고문에서 코로나 종식을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기철 박사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그리스 신화 속 질병의 신 아폴론이 쏜 역병의 화살에 비유하며, 코로나 펜데믹이 가난한 나라들을 3000년 전 트로이 전쟁의 시간으로 돌려놓았다고 우려했다. 이하는 관련 대목이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아폴론은 자신을 섬기는 신관의 딸 크리세이스를 납치한 것에 분노해 그리스인들에게 역병의 화살을 퍼붓었고, 호메로스는 역병으로 사망한 시체들의 화장(火葬) 더미가 끊임없이 타올랐다고 기록했다. 3000년이 지난 오늘, 인도 뉴델리는 쏟아지는 코로나 사망자를 감당할 수 없어 노천 화장장을 운용하고 있으며 장작더미에 시신을 쌓아놓고 집단 화장을 하는 모습을 공공연히 볼 수 있다. 일리아스에 기록된 역병에 고통받는 인류의 모습이 재현된 것이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미미한 존재인 바이러스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류가 도도하게 발전시켜온 공중보건 시스템, 생명 연장을 위한 과학과 의학 기술, 질병 예방을 위한 국가간 공조와 연대를 일순간에 무력화시키면서 가난한 나라들을 트로이 전쟁의 시간으로 돌려놓았다.>

저자는 인류가 팬데믹에 대응하는 방법은 백신 등 의약품을 이용하는 '약물적 개입(PI)'과 '비약물적 개입(NPI)'으로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NPI는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등의 개인 위생관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등을 지칭힌다. 보고서에 따르면 백신을 이용한 PI가 실제 사망자 감소에 기여한 정도는 크지 않고, NPI는 감염 확산을 지연시켜 환자 수를 의료 지원 능력 내에서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PI와 NPI를 총동원해도 팬데믹 종식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인류가 질병을 정복하고 새로운 바이러스를 박멸한다는 표현은 사실상 현실성이 없는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며 "어느 한 국가가 홀로 빗장을 걸어 잠그고 치료약과 백신을 개발해 자국민에 우선적으로 접종하고 거리두기 지침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하더라도 팬데믹 사태를 종식시킬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기철 박사는 이어 코로나 팬데믹 속 국경 폐쇄는 과학적인 이유가 아닌 정치적인 이유에서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중 경쟁을 들었다. 코로나 발생 책임으로 촉발된 미중 갈등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 그룹과 중국과 친중 성향을 보이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대립으로 확대돼 국제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박 박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불평등이 심화됐음을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팬데믹은 인종, 성별, 종교, 문화를 가리지 않고 전파된다는 점에서 평등한 것 같지만 이를 이겨내기 위해 필요한 자원은 매우 불평등하게 분포돼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던 2020년 1월 아프리카 41국이 보유한 산소호흡기는 2000대에 불과했지만, 미국은 17만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병상의 경우 방글라데시는 1만 명당 8개를 보유했는데 이는 미국의 1/4, 유럽연합의 1/8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백신 접종의 경우에도 부유한 국가들과 가난한 국가들 간의 백신 접종 속도의 차이는 최대 25배에 이른다. 세계 인구의 20.5%를 구성하는 가난한 나라 52국의 국민은 전체 백신 중 3.2%밖에 접종받지 못 했지만, 전 세계 인구의 4.3%를 차지하는 미국은 전 세계 백신 분량의 7%를 접종했다. 미국은 지난 9월부터 부스터 샷(세 번째 접종)과 5~11세 어린이에 대한 접종까지 추진 중이다.  

제프리 삭스 콜롬비아대 교수가 79개국 295명의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코로나 팬데믹은 지난 20년간 국제사회가 노력해온 세계 빈곤 감소 추세를 한 순간에 되돌려 놓을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의 87%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소득 불평등이 증가하거나 급등할 것으로 예측했다. 56%는 성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고, 66%는 인종별 불평등이 악화할 것이며, 67%는 국가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저자는 바이러스는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그 이유로 인해 확산하며, 인간 본연의 속성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고 단절하도록 만들지만 인류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답을 찾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은 저자가 결론으로 제시한 해법이다. 

"그 답은 '단절과 분리'가 아닌 '연대와 협력'이다. 국제사회가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하나가 될 때, 아폴론은 역병의 화살을 거둘 것이라는 지혜를 깨달으면서, 이제 우리는 길었던 팬데믹 터널의 출구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