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조선일보DB

25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리셋코리아 개헌분과(위원장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6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웹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표집오차 ±3.1%포인트)에서 ‘개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6.5%가 ‘찬성한다’(매우 찬성 18.6%, 대체로 찬성 47.9%)고 응답했다. 세부 주장에서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분산하거나 견제하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답변에 51.8%가 찬성했다. 

이 신문은 “분권(分權)에 대한 요구도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선호하는 정부 형태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꼽은 이가 53.2%로 압도적이었다”고 보도했다. 분권형 대통령제란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절충적인 정부 형태로 ‘국민에 의해 각각 선출된 대통령과 의회가 정책 영역별로 통치하는 정부 형태’를 말한다. 대통령이 통일·외교·국방 분야 국정을 맡고, 총리(수상)는 내정(內政) 전반을 다스리는 통치 구조다. 이때 총리는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받아 임명하거나 또는 국회 자체에서 선출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대통령 권력의 힘을 빼서 총리에게 실어준다는 점에서 ‘권력 분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상기한 대국민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나듯, 학계와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국정의 폐단이 대통령이 막강한 행정 권한을 지니고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해왔다. 이 때문에 청와대 비서들을 중용해 국정의 주체가 돼야 할 내각을 ‘패싱’하고 국무총리는 ‘대독총리’로, 장관은 일개 부처 책임자로 만드는 식의 통치 구조가 고착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대통령이 측근 비서들의 말만 기울이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여론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고, 내각 정부가 아닌 청와대 정부를 운영해 정책 수정이나 궤도 전환 없이 하향식 ‘어명(御命) 정치’만 고집하는 독선적 경향이 짙어졌다는 것.

‘대통령학 권위자’로 불리는 함성득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서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섬앤섬, 2017)에서 “이승만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 제왕적 대통령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안주해 왔다”며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지역주의’와 밀접히 연결돼 비정상적이고 편협한 지역 중심의 정치를 더욱 고착화했다. 그 이유는 대통령에 대한 선호와 정치적 지지가 개인의 자질과 정책보다는 대통령의 출신 지역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2. 국정의 모든 운영권과 권력이 대통령 일인에게 집중되어 정경유착에 따른 부정부패 등과 같은 악순환이 발생할 경향이 높아졌다. ‘권력의 사인화’에 따른 대통령의 친인척 비리 등 권력 남용도 초래했다. 

3. 정당을 포함한 제도 기관, 특히 정보기관, 검찰, 법원, 경찰 등 ‘권력 기관의 사병화 경향’이 매우 높았다. 권력 기관의 사병화는 권력 남용의 가능성을 높였다.

4. 대통령 자신의 신념 또는 의지, 이른바 ‘자신의 복음’이 매우 강했다.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이 활성화되지 못해 국정운영이 독선·독단적으로 흐르는 경향도 매우 높았다. 나아가 이것은 대통령의 비타협적인 정치행태를 심화시켰고 정치적 갈등 해결을 위한 제도적 기관인 국회나 정당의 기능을 경시하면서 ‘정치의 경직성’을 강화시켰다. 이러한 정치 행태는 타협보다는 독선을 강조하게 되어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조장하고 정국 혼란을 초래했다.

5. 제왕적 대통령은 ‘명령자의 역할’에 충실하였고 그 리더십의 핵심은 행정 리더십이다. 이는 주종관계에 기초한 대통령의 개인 카리스마, 계층적 권위 그리고 효율적인 집행을 위한 명령·통제 체제에 충실한 리더십이었다. 명령자로서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이 국정운영 과정에서 야기한 문제점은 하나둘이 아니다.〉

함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리더십 때문에 권력의 주체가 독립운동 세력이든, 군부세력이든, 문민 또는 민주 세력이든 간에 권력을 장악하면 그들은 명령자가 되었다. 권력의 나쁜 속성인 권력의 사인화와 자의적인 권력 행사 등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결국 지금까지 제왕적 대통령은 효율성을 강조하는 행정 리더십에 기초한 명령자의 역할에 충실해왔다. 그들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본질적인 한계와 국정운영 경험의 부족 때문에 좋은 국정운영 결과를 낳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진보학계 원로로 꼽히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에 대해 경고를 보내왔다. 그는 저서 《양손잡이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17)에서 “기존 헌법의 최대 약점은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허용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국가권력을 집행부로 집중시킨다는 것”이라며 “미국 대통령도 갖지 못한 권력, 즉 정부의 주요 인사, 세입 세출과 예산 편성, 행정부에 의한 법안 제출 등 한국의 대통령은 엄청난 권력을 행사해 왔다. 대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등 모든 사법 기구 판사들의 임명권을 가짐으로써(대통령 추천이 3분의 1에 여당 추천 몫 3분의 1을 포함하면 사실상 3분의 2) 대통령은 임기 중에 사법부까지 통제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의 말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삼권분립은 그 내용 면에서도 집행부의 압도적 우위를 보장함으로써 대통령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이 점에서 한국의 대통령 중심제는 대통령의 전제성을 헌법적으로 보장하는 체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병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지난 11일 《국민일보》 칼럼 ‘이런 대통령 계속 뽑아야 하나’에서 “우리나라 16대 대통령은 퇴임 후 검찰 조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7대, 18대 대통령은 지금 몇 년째 감옥에 있고 현직 19대 대통령의 앞날도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며 “20대 대통령은 출범도 하기 전에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이제 제왕적 대통령제를 용도폐기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대한민국은 국가 경쟁력과 신용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 부문에서 일본을 제칠 정도이다. 그런 선진 대한민국을 대통령 한 사람의 수중에 맡긴다는 것은 무모하고 무책임하다”며 “시대에 맞게 권력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당장 대통령제를 없애기 어렵다면 최소한 분권화라도 확실하게 실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인영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1일 《한국경제》 칼럼 ‘삼권분립 강화가 정치개혁이다’에서 “청와대는 미국 역사학자 아서 슐레진저가 1972년 닉슨 행정부의 막강한 권력을 묘사하면서 사용했던 개념인 ‘제왕적 대통령’을 넘어 ‘황제급 대통령’에 가까운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며 “프랑스 대통령이 가진 ‘비상대권’도 갖지 못한 대한민국 대통령을 ‘황제급 대통령’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청와대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실하고 팬덤 정치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임명권이 더해져 무소불위의 ‘청와대 정부’가 됐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김 교수는 “정치권은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 등 정치 개혁에 신중해야 한다. 개악이 될 수 있다”며 “진정 제왕적 대통령제 해소를 위한다면 헌법에서 대통령의 대법원장·대법관 임명, 헌법재판소장·헌법재판관 임명권을 무력화하고 감사원장과 공수처장 임명권을 형해화하며, 두 기관의 정치적 중립을 강화해 삼권분립을 확립하는 제도 개선이 우선이다. 제도 개선에 더해 대선에서 스스로 권력 사용을 절제하는 대통령을 뽑는 일도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