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동길 신고센터장과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은 지난달 29일 제3차 진실규명신청서를 과거사위에 접수했다. 사진=물망초 홈페이지

'대한민국 적대세력에 의한 생명 및 신체 피해 신고센터'(이하 신고센터)가 6·25전쟁 중 무고하게 학살당한 민간인 등의 진실 규명을 위해 제4차 진실규명신청서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원회)에 오는 20일 접수한다.

이날 접수되는 사건은 총 9건이고 내용은 북한 인민군과 좌익세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이 대부분이다. 이하는 신고센터 측이 공개한 신고 주요 사례들이다.

눈에 띄는 사례로 국군징집병 1기생으로 입대했다가 전투 중 중공군 포로가 된 뒤 탈출했고, 다시 거제 포로수용소에 수용됐다가 반공포로로 석방됐으나 월북자로 오인돼 포로 기간을 군 복무기간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은 물론 군 미필로 처리된 것에 대해 진실규명을 요청한 사건이 있다.

6·25전쟁 당일 경기도 포천시 일동면에서 면장을 하던 왕모 씨는 인민군이 침략하자마자 지역 좌익 세력에 의해 학살당한다. 또 법무부에 근무하던 최모 씨는 인민군에게 잡혀 고문당한 후 죽임당하기 직전 구사일생으로 탈출했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퇴로가 끊긴 인민군들은 인민위원회 내무서원들을 선동, 서울 성북구 일대의 민간인들 수십 명을 성북경찰서에 수감한 후, 7명씩 묶어 인근 야산에서 총살로 학살하고 퇴각했다. 이때 포목상을 하던 이모 씨 가족 두 명도 변을 당했다.

전북 임실군과 순창군의 회문산을 거점으로 하는 빨치산들에게 참변을 당한 일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도 있다. 김모 씨의 아버지는 6·25전쟁 전 빨치산들의 민간인 식량 탈취 과정에서 식량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야산으로 끌려가 갖은 폭행을 당했고 후에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또 면장이었던 김모 씨의 할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지역 유지들과 함께 유치장에 감금됐다가 인민군이 퇴각할 때 총살당했다. 이에 김모 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명예 회복과 진실 규명을 위해 신청했다.

사단법인 물망초 산하에 세워진 신고센터는 앞서 8월 18일 10명의 진실규명신청서를 1차로 제출했고, 2차로 9월 1일 7명, 3차로 9월 29일 6명의 진실규명신청서를 과거사위에 접수한 바 있다.

신고센터는 "대한민국 적대세력에 의해 생명 및 신체 피해를 입은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법령 미비를 이유로 그동안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 피해 보상 등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이제부터라도 이에 대한 모든 절차가 성실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