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12월 22일 오후,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대법원에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 나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충청 지역 대표 정치인인 이완구(李完九) 전 국무총리가 14일 향년 71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2012년부터 혈액암 일종인 ‘다발성 골수증’으로 투병하다 최근 골수 이식을 받았지만 병환(病患)이 재발해 위중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 전 총리는 1950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양정고와 성균관대 행정학과, 미시간주립대 대학원 형사정책학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74년 제15회 행정고시 합격으로 공직(公職) 생활을 시작한 그는 홍성군청·경제기획원 사무관을 거쳐 홍성경찰서장, 충북·충남경찰청장, 경기대 행정대학원 교수 등을 지냈다. 

1996년 제15대 국회에 입성해 신한국당 대표 비서실장 및 원내부총무로 일한 뒤 고(故) 김종필 전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연합에 투신, 사무총장 대행과 대변인 및 원내총무 등 당내 요직을 두루 거쳤다.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뒤 2006년에는 지방선거에서 제35대 충남지사로 부임했다. 2009년 당시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행정수도 수정안 추진에 반발, “충남도민의 소망을 지켜내지 못했다”며 정치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지사직에서 중도 사퇴하기도 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3선 고지’를 노렸지만 그해 초 다발성 골수종 발병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이듬해 병마를 이겨내고 지역구인 충남 부여·청양군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승리해 정계에 복귀했다. 이후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근혜 정부 두 번째 국무총리를 지내는 등 양명가도(揚名街道)를 달리며 충청대망론을 실현할 ‘포스트 JP’로 부상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친박(親朴) 핵심 인사로 꼽혀 ‘박(朴) 정부 실세’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2015년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극단 선택을 한 뒤 남긴 메모,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총리 취임 69일 만에 낙마(落馬)하는 불운(不運)을 겪었다. 2013년 재보선 당시 부여 선거사무소로 찾아온 성 전 회장으로부터 현금 3000만 원이 든 쇼핑백을 건네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 해당 의혹으로 곤욕을 치른 이 전 총리는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서야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전 총리는 《월간조선》 2018년 8월호 인터뷰에서 논란 당시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목숨이란 표현을 쓴 것은 확신 때문이었다. 확신이 없으면 그런 얘기 못 한다”며 “그거는(그것은) 나의 성격, 캐릭터인데 지사(직)도 던져버렸지 않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성완종 전 회장이 2015년 4월 9일 숨진 채 발견됐는데 그해 3월 22일 전화 통화를 했다. 저는 ‘억울한 일이 있으면 수사기관에 잘 얘기하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며 “드라이하게, 좀 전화를 냉랭하게 받았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그때 좀 더 따뜻한 말로, 위로의 말을 건넸더라면 아마 이런 일이 안 벌어졌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연민의 정이 들어 마음이 몹시 아프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는 본인의 정치적 스승인 ‘JP’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DJ와 YS는 자기를 추종하는 정치 세력들이 사후에든 생전에든 있었지만 JP 사람, JP 인맥은 없었어요. 그것이 3김(金) 중 유일하게 대통령을 지내지 못한 이유일지도 몰라요. 그분은 전형적인 충청도 정치인이셨죠. 모자라지 않고 과하지도 않고 부족함이 없고, 좋고 싫은 것도 나타내지 않는, 내가 아는 JP는 정이 많은 분이셨고 풍류를 즐길 줄 알고 위트와 유머가 넘쳤어요. 심지어 정적(政敵)에 대해서도 미움이나 악의를 품지 않았어요. JP에게는 충청도 양반의 점잖음이 있으면서 관용이 넘쳤어요. JP가 집권했다면 아마도 정치가 지금처럼 각박하지 않고 대화와 양보, 타협의 문화로 조금은 훈훈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전 총리는 당시 인터뷰에서 충청대망론과 관련해 “왜 전들 대권 생각이 없겠나”라면서도 “충청대망론은 충청도 사람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 상처받고 좌절한 충청도 사람에게 용기를 주자고 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충청도는 기본적으로 어떤 선거든 특정 정치세력 또는 후보에게 60% 이상의 몰표를 잘 안 준다. 그렇다고 충청 민심을 간단히 봐선 안 된다”며 “충청도 사람들은 참을 때까지 참다 안 되면 터진다. 내가 ‘JP 키즈’라는 말과 결부시켜 충청대망론을 꺼낸 것은 좌절하고 실망한 충청인을 어루만져 주기 위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후 이 전 총리는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충남지사 및 21대 총선 후보 등으로 거론돼왔으나 정계 일선에서 물러나 정치적 조언만 건네주는 당 원로로 머물렀다. 그는 작년 총선을 앞두고 “세대 교체와 함께 인재 충원의 기회를 열어주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편 14일 오후 고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에서는 애도의 목소리와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지역과 나라를 위해 경험과 경륜을 펼치실 충분한 나이인데 병마로 유명을 달리하신 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민선 4기 충남 도정을 이끄셨던 선배님이자, 국무총리로서 국정을 책임지셨던 이완구 전 총리의 명복을 빈다”고 했다. 국민의힘 충남도당위원장 이명수 의원은 “대학과 행시, 공직의 선배이신 이완구 총리님, 늘 선공후사(先公後私) 마음과 충청의 기개를 일깨워 주시던 선배님, 다시 뵙지 못해 안타깝다”며 “늘 하시던 나라 걱정, 충청 걱정, 후배 걱정 놓으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늘나라에서 영면하시길 빈다”고 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추억의 남자 이완구가 며칠 전부터 전화를 받지 않더니 홀연히 저 세상으로 떠나 버렸다. 오늘은 너무 슬프고 슬프다”고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저녁 빈소가 차려진 서울성모병원을 찾아 조문할 계획이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오후 8시, 이준석 대표는 오후 9시에 조문한다. 같은 날 차기 충청대망론 기수로 꼽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등 야권 대선주자들도 조문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