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시리즈 공약’ 등 평등의 이념으로, 가난과 억압의 세월을 타파하고자 두 번째 대권(大權)에 도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잠룡(潛龍). 바로 이재명(李在明) 경기지사의 이야기다. 사진=조선일보DB

“고참들은 시간만 나면 어린 공원들을 무작위로 지목해 내기 권투를 시켰다. 나는 구타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대편 동료를 쓰러뜨려야만 했다. 강압에 못 이겨 친한 동료를 적으로 삼아 싸워야만 했던 것이다. 이길 때도 있었고 질 때도 있었다. 지면 선배들에게 또 얻어터져야 했고, 이기면 죄책감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웬만한 구타나 얼차려에도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던 나였지만, 코피를 줄줄 흘리며 쓰러져 있는 동료 앞에서는 그예 눈물이 쏟아지곤 했다. 이기건 지건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가 남는 야만적인 시간들이었다.”(《이재명은 합니다》, P.16~17)

‘맞지 않기 위해 쓰러뜨려야 했다.’ 그토록 ‘야만적(野蠻的)’인 시간을 감내하고 살아왔기 때문일까. 정치인으로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그의 야망 깊숙이에는 시대에 저항하는 독기(毒氣)가 서려 있는 듯하다. ‘사이다’라는 한때 그의 별칭 속에도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사회 전반의 적폐(積弊)를 일소하겠다는 도전자의 의지가 담겨 있다. ‘기본 시리즈 공약’ 등 평등의 이념으로, 가난과 억압의 세월을 타파하고자 두 번째 대권(大權)에 도전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잠룡(潛龍). 바로 이재명(李在明) 경기지사의 이야기다. 

그는 과연 여권 내 비문(非文)·비주류라는 한계를 딛고 여권의 단일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마침내 야당의 ‘정권 교체론’을 꺾고 차기 대통령으로서 ‘기본이 갖춰진 시대’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조선펍》의 대선 특집 기획 ‘책으로 본 대선주자 탐구’ 여섯 번째 시간. 오늘은 《이재명은 합니다》(이재명, 위즈덤하우스, 2017)와 《이재명의 굽은 팔》(이재명·서해성, 김영사, 2017)이라는 두 권의 자서전을 통해, 세상과 불화(不和)했던 이 지사의 생애를 살펴보고 그의 도전 정신과 대권 야망을 심층 탐구해본다. 

火田民집 9남매 일곱째 아이, 12살에 공장 노동자가 되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의 유년 시절은 암울했다. 1964년 경북 안동 청량산 자락의 가난한 화전민(火田民) 집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이 지사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인해 어릴 적부터 생계 전선에 섰다. 초등학교 졸업 후인 만 12살 때 고무 공장에서 소년공(少年工)으로 첫 노동을 시작했다. 어느 날엔 고무를 가는 기계의 동력 벨트에 손가락이 휘감겨 피범벅이 되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다친 그에게 돌아온 것은 뒤통수를 때리는 공장 사장의 매질과 임금 체불이었다.

“손가락을 다쳤을 때 사장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그는 나더러 조심하지 않고 일했다면서 기계를 버리게 되었다고 짜증을 냈다. ‘기계 값이 얼만데!’ 소년공의 목숨값이 기곗값보다 차라리 쌌던 시대였다. 다들 알다시피 치료받는 기간에는 월급의 70퍼센트를 줘야 핳는데 나는 품삯을 받지 못했다. 그런 법이 있다는 걸 안 건 까마득히 뒷날이다.”(《이재명의 굽은 팔》, P.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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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사의 유년 및 학창 시절 사진들. 사진=이재명 경기도지사 공식 홈페이지 캡처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는 쇠가죽을 절단하는 프레스에 팔뚝이 찍혔다. 이후 기형으로 자라난 왼팔 때문에 6급 장애 판정을 받고 군대도 면제받았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힌 건 공장 선임들의 무자비한 구타였다. “아주냉동 공장은 매질이 일상이었다. 군복 입은 선임 노동자가 아침에 출근을 할 때마다 군기를 잡는다고 줄을 세워놓고 한 판씩 때렸다. 퇴근할 때도 까닭 없이 몽둥이찜을 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소년공들끼리 싸움을 시켰다. 삼계국민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하던 모습과 똑같았다. 낮에는 문이 잠기고, 아침저녁으로 맞는 공장을 나는 그만 다녔으면 싶었다.”(《이재명의 굽은 팔》, P. 54)

아버지는 시장 청소부, 어머니와 여동생은 화장실 지킴이

이재명 못지않게 그의 일가 또한 가난에 허덕여 허드렛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갔다. 아버지는 고물상 일과 함께 가게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시장통의 청소부 노릇을 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시장 화장실을 지키며 돈을 받았다. 소변은 10원, 대변 20원이었다. 이재명은 책에서 “사춘기 여동생은 소녀의 손으로 오줌 값을 받고 화장지를 쥐여 줘야 했다. 우리 집 여인들은 욕스러운 일은 다 했다”며 “우리 식구는 (경기도 성남의) 상대원시장에 의지해서 먹고살았다. 밥에서 쓰레기까지”라고 회고했다.

양식이 없는 춘궁기(春窮期)에는 배가 고팠다. 그때 어린 이재명은 뒷산의 진보랏빛 참꽃을 한 움큼 따서 배를 채웠다. 시간만 나면 친구들과 참꽃을 따러 다니는 게 일이었다. 이재명은 책에서 “그때만 해도 나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공장에 갇혀 있던 내게 그 아름다운 맛있는 꽃은 그리움, 그리고 눈물이었다”고 말한다.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자유를 빼앗긴 채 공장 생활을 이어나가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렇게 살 순 없잖아.’ 참꽃이 마음껏 뒷산을 수놓듯이 나도 자유로운 삶을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이재명은 합니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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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책에서 “그때만 해도 나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공장에 갇혀 있던 내게 그 아름다운 맛있는 (참)꽃은 그리움, 그리고 눈물이었다”고 말한다. 사진=조선일보DB

어린 생을 비관해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했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간 이재명은 이후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굽은 팔의 소년공’인 자신의 처지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부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일같이 겨우 풀칠하며 단칸방에 모여 사는 가족들에게 이재명의 공부 의지는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하는 그에게 아버지는 모진 소리만 해댔다. “그깟 공부 따위 해서 뭐 해? 잠 좀 자자, 잠 좀!” 시장과 공단에서 잡역부로 일했던 그의 아버지는 일 대신 공부에 전념하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피나는 노력으로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 검정고시까지 패스한 이재명에게 아버지는 살가운 격려의 말 한 번 해준 적이 없었다. 

배 채워주던 참꽃은 눈물...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습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 마음 하나로 독하게 공부를 해나갔다... 아버지는 합격증을 받아들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수고했다’ ‘잘했다’는 말 따위는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최소한 고개 정도는 끄덕여줄 수도 있지 않은가. 나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 공단 거리를 걷고 또 걸으며 울분을 삭였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방바닥에 합격증이 갈기갈기 찢어진 채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받은 합격증인데...’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그렇게 켜켜이 쌓여갔다.”(《이재명은 합니다》 P.32)

그러나 아버지는 그렇게 명민한 아들을 속으로 대견스럽게 여겼다. 친척들 앞에서 중앙대 법대에 진학한 이재명을 자랑하기도 했고, 신림동 고시원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그의 월세 몇 달 치를 보내주기도 했다. 이재명은 임종 직전 아버지의 말 없는 두 줄기 눈물을 보고 그 모든 증오를 내려놓았다. “아버지, 사실은 제가 잘되기를 바라셨죠? 모른 척하면서도 저를 쭉 지켜봐주신 거죠? 제가 마음 단단히 먹고 살아가기를 바라신 거죠?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은 그 큰 과거의 아픈 벽을 허물고 화해했다... 비록 오랫동안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증오심은 오히려 불과 물과 망치가 되어 나를 담금질해온 셈이었다. 덕분에 내 의지는 강철같이 단단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이 거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진정한 토양을 내게 길러준 것이다.”(《이재명은 합니다》, P.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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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3일 경기지사에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아내 김혜경씨, 원혜영 전 민주당 의원이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선거사무소에서 맞잡은 손을 높이 들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이재명의 독서 목록

청년 이재명은 사법고시 합격을 목표로 삼은 법학도였다. 그 시절, 그는 법전(法典)과 더불어 다른 분야의 책들도 섭렵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삼국지》 《수호지》에 각종 동화와 세계명작을 탐독한 그였다. 운동권 필독서인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 사회과학 서적부터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윤흥길의 《완장》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고은의 연작시집 《만인보》 등 문학작품까지 읽곤 했다. 이재명은 책에서 “문학은 정녕 나를 나로 있게 하는, 망가진 세상을 인간으로 품게 하는, 패배와 굴욕에서조차 빛을 찾아내는 지혜요, 등대”라고 표현했다.

2017년 이재명 인물 연구 기사를 보도한 《시사저널》은 “대학 시절 이재명에게 강한 충격을 준 두 가지가 있다면 1980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과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이었다”며 “이재명은 ‘5월 광주는 나의 사회의식을 비로소 단련시켰다. 광주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한낱 개가 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광주는 나의 구원이었고 스승이었고 내 사회의식의 뿌리였다. 나를 바꿔 놓았다’고 말한다”고 기록했다.

노무현 강연 듣고 인권변호사의 길로

사법고시 합격 후 사법연수원 교육을 받던 시절, 이재명은 한 부산 출신 인권변호사의 강연을 듣게 됐다. 그는 책에서 “열정과 진심이 묻어나는 뜨거운 강연이었다. 나를 포함해 선후배 연수생들은 강연 내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며 “그 강사의 이름은 노무현이었다”고 술회했다. 노무현의 강연에 감명받은 그는 이후 흔한 판검사 대신 인권변호사의 길을 꿈꾸게 됐다. “그분은 강연을 통해 나를 움직이게 했을 뿐 아니라 인권변호사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는 위안을 주었다. 인권변호사로서 격렬하게 사회운동을 하면서도 세 끼 굶지 않고 거뜬히 살았던 본인의 진솔한 체험담이 나에게 용기가 되었다. 나는 공장 노동자로서 청소년기를 보낸 성남에 변호사 사무실을 내기로 마음먹었다.”(《이재명은 합니다》,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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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에 나온 당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이 웃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이재명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방화범(放火犯)’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건 야유가 아니라 내가 그들의 말에 불타버릴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서 내뱉는 최고의 상찬이었다. 두 사람은 한 개 불씨로 대지를 태울 수 있는 기상과 의로움이 넘쳐났다... 나에게는 노선이 있다. 바로 인간의 노선이다. 인간보다 더 살아있는 노선은 없다. 그 노선의 이름이 김대중이고 노무현이다. 인간 이재명이 그 노선에 서 있음을 나는 부인하고 싶지 않다.”(《이재명의 굽은 팔》, P.223·226)

무상 복지와 시민 소통에 주력하다

이재명은 이후 경기 성남을 중심으로 민변과 참여연대 등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2004년에는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를 지냈고, 2004년부터 2005년까지 국가청렴위원회 성남부정부패신고센터소장으로 일했다. 이와 관련 지난달 1일 자 《서울경제》 인물연구 기사 ‘비주류 흙수저에서 與 대권 유력주자까지... 이재명이 걸어온 길’의 한 대목을 옮긴다.

〈이 지사는 ‘성남시민모임’을 창립해 이끌며 2000년 분당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의혹을 제기하며 주목을 받았다. 2002년 파크뷰 특혜분양사건 당시에는 당시 성남시장과의 전화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가 공무원자격사칭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04년 성남 구시가지의 대형 병원들이 문을 닫으면서 의료 공백이 심각해지자 직접 시장이 돼 시립의료원을 만들겠노라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성남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2005년 8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투신했으나 첫 도전인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2007년 노사모에서 ‘미키루크’로 잘 알려진 이상호 전 민주당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으로부터 영입돼 정동영 대선후보 지지자 모임인 ‘정통들’을 함께 이끌었다.〉

이재명은 2008년 총선 낙선 고배 끝에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 지자체장으로 정계에 등판한다. 2014년 재선에 성공한 뒤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 진출했고, 이듬해 경기지사로 당선돼 오늘날 다시 대권 후보로 거듭났다. 성남시장 시절 그는 ‘무상 복지’와 ‘시민 소통’에 역점을 두고 시정(市政)을 폈다. 《이재명은 합니다》에 따르면, 이재명은 2016년부터 200억 원 가까운 예산을 확보해 3대 무상 복지 정책을 시행했다. 청년 배당 113억 원, 무상 산후조리 56억 원, 무상 교복 지원 25억 원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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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22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나온 이재명 성남시장이 발언대에서 답변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시민들과의 약속 그리고 설득

그는 책에서 “다만 정부가 강제하는 페널티 때문에 무상 복지 예산 194억 원 가운데 절반 수준인 98억3500만 원을 우선 지급하고, 나머지 95억6500만 원은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에서 승소할 경우 수혜자에게 지급하겠다고 시민들과 약속했다”며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무상복지사업에 대한 법적 검토와 시민 의견 수렴을 거쳐 다양한 복지사업 정책을 펼쳐왔다. 이것은 100만 시민 앞에서 선언한 공약이기에 중앙정부의 부당한 강압이나 재정 페널티 부과 위협이 있다고 해서 파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재명은 성남시장 취임 당시 청사(廳舍) 9층에 있던 집무실을 2층으로 옮겼다. 민원인의 호소를 경청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누구든 자유롭게 시장실을 방문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었다”며 “1층에서 구태여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아도 계단을 통해 시장실로 들어올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실 개방 이후 수차례의 집단 농성 사태가 빚어졌지만 나는 법에 저촉되는 일에는 일체 타협하지 않았다. 그러자 시장실을 점거하던 집단 민원들이 점점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말끔하게 사라지게 되었다. 선의를 갖고 민원을 제기해오는 시민들에게는 현행법상 안 되는 이유를 조목조목 열거해가며 충분히 납득할 때까지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아울러 현재 상황에서 실현 가능한 현실적인 방안들을 설명해주었다. 이따금 공감한다며 박수를 보내오는 시민들도 있었고, 뒤늦게나마 알게 되어 고맙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분들도 있었다.”(《이재명은 합니다》, P.77)

불독·싸움닭에서 작살·사이다까지

이재명의 별칭은 다양하다. 변호사 개업 때는 ‘이재명 변호사’라는 의미에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이변을 일으켰다’ 해서 ‘이변(異變)’이라고 불렸다. 변호사로서 쟁점 사안을 맡게 될 때면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고 해서 ‘불독’ ‘싸움닭’으로 통했다. 그는 책에서 “‘김어준의 파파이스’라는 인터넷 방송에 출연했을 때 ‘만약 대통령이 되면 제일 먼저 뭘 하겠느냐’는 질문에 ‘작살부터 내야죠’라고 대답했더니 금세 ‘작살’이란 별명이 붙었다”며 “또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다 보니 일부 커뮤니티에서 내가 주장하는 것이 시원하다며 ‘사이다’란 별명을 붙여주었다”고 말했다.

이재명은 지난달 ‘KBS’와의 인터뷰에서 ‘19대 대선 때도 도전했는데 그때와 지금의 이재명, 달라진 점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과거에는 모난 돌이었다면 지금은 큰 강까지 굴러 굴러 오면서 좀 반들반들한 호박돌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다만 돌이라고 하는 본질, 제가 지향하는 또 만들고 싶은 세상에 대한 목표, 이런 건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내일신문》 인터뷰에서는 “국민들께서 저에게 갖는 기대는 분명하다.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약속을 지켰고 구체적인 실적과 성과를 냈다는 점”이라며 “공약이행률 95%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계곡·하천 불법시설 정비 사업을 통해 증명한 것처럼 용기와 추진력을 통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국민의 삶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꿈꾸는 새로운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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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지사는 “책에서 세월이 흘러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또 하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누구도 억울하지 않은, 희망이 살아 숨 쉬는 공정한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꿈”이라고 말했다. 사진=조선일보DB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꿈, ‘억울함 없는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꿈

“만 15세의 나이로 나는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촉수 낮은 전구 아래 앉아 검정고시 공부를 했다. 그때 나의 꿈은 단지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애초에 꿈을 꾸지 않았거나, 중도에 포기했더라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포기하는 순간 삶을 내주어야 하는 그런 꿈을 꾸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꿈이란 생존과 똑같은 가치와 무게를 지닌다.

세월이 흘러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또 하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누구도 억울하지 않은, 희망이 살아 숨 쉬는 공정한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꿈이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 나는 이 또한 포기할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안다. 대한민국의 생존과 똑같은 가치와 무게를 지닌 꿈이기 때문이다.”(《이재명은 합니다》 P.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