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6월 17일 오전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야, 인마. 질 때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다가 져야지, 이게 뭐냐?”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서울 대광초등학교 답십리 팀과 안암동 팀의 야구 경기. 안암동 팀이 큰 점수 차이로 뒤지면서 승부가 일찍 갈렸다. 팀원들은 무성의하게 경기를 하며 시간만 흐르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석열이는 ‘불같이’ 화를 냈다.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만 해도 석열이와 같은 대광초에 다닌 아이들은 그가 ‘화를 낼 줄 모르는 아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윤석열은 ‘진다’고 하는 결과에 방점을 찍기보다 ‘최선을 다하다가’라는 과정에 방점을 찍은 생각을 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누가 봐도 질 경기라고 해서 누가 봐도 무성의하게 선수들이 임한다면 어떤 팬들이 그 팀을 응원하겠는가? 

윤석열은 지난 2020년 한 해 동안 다수의 선수들과 맞붙어 홀로 경기를 했다. 그것도 아주 형편없는 룰 속에서 말이다. 심판은 불공정했고 반칙을 일삼는 상대 선수들로 인해 질 게 뻔한 경기였다. 공정해야 할 심판과 경기 진행 요원 모두가 일방적으로 상대 팀을 편들고 나서서 윤석열의 퇴장을 명령했지만, 윤석열은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구수한 윤석열》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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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8일 오전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국회 법사위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강골검사(强骨檢事)’. 차기 대선(大選) 정국의 ‘핫 아이콘’으로 떠오른 윤석열(尹錫悅)이라는 인물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사법고시 9수’ 끝에 간절히 바라던 검사가 되고도 첨예한 사안을 놓고 수뇌부와 판판이 맞섰던 그는 어린 시절부터 기백(氣魄)이 남달랐던 모양이다. 결국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권력의 중심에서 떠나간 윤석열. 그는 정세(政勢) 격변의 풍랑이 휘몰아치던 2016년 최순실 사태의 회오리를 타고 특검 수사팀장으로 극적(劇的) 복귀한다. 

보수의 몰락으로 진보에 정권이 넘어가자 ‘서울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승진가도(昇進街道)를 달리며 검사로서 정점을 찍은 그의 칼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금 ‘산 권력’으로 향했다. 2019년 ‘조국 사태’를 거쳐 2020년 ‘추·윤 갈등’에 이르기까지 문(文) 정권에 맞선 윤(尹) 검찰의 권력 수사는 집요하고도 대담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다시 세간에 회자되는 말을 남겼다.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지난 3월 초 그가 끝내 총장직을 내던지면서 한 말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지금 파괴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기 어렵다. 검찰에서의 제 역할은 여기까지다. 제가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 제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다.” 

보수 정부는 물론 진보 정권에서도 ‘절대권력(絶對權力)’과 대립해왔던 반골(反骨) 기질의 강골검사 윤석열. 그런 그가 이제는 대권이라는 여의주를 거머쥐기 위해 제1야당의 잠룡(潛龍)으로 다시 태어났다. 여의도의 백전노장(百戰老將)들을 제치고 야권 후보 지지율 1위의 왕좌(王座)를 지키며 정권 교체의 기치(旗幟)를 치켜든 윤석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오직 “내 페이스대로 간다”는 그의 패기는 대선 정국에서도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어떤 새로운 비전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 것인가. 

《조선펍》의 대선 특집 기획 ‘책으로 본 대선주자 탐구’ 제4편에서는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구수한 윤석열》(김연우, 리딩라이프북스)과 취재와 자료 분석을 바탕으로 한 《별의 순간은 오는가》(천준, 서울문화사)를 통해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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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 표지 캡처

책과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義理 있는 해결사

두 권의 책으로 본 윤 전 총장의 인간적 면모는 다채로웠다. 유년기 때부터 축구·농구·야구부터 스케이트까지 운동감각이 좋아 ‘만능 스포츠맨’으로 불렸고, 타고난 탐독가(耽讀家)에 다변가(多辯家)로 친구들과 모이면 대화를 주도했다. 여덟 번째 고시 낙방에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친구들의 사정을 살피고 어려운 처지를 도와주는 ‘의리 있는 해결사’ 노릇을 자처했다. 기골이 장대한 풍채에서 느껴지듯, 두주불사(斗酒不辭)에 미식(美食) 취향을 지닌 화통한 ‘상남자’의 기질이 있었다. 한편 집에서는 애처가(愛妻家)로 반려동물의 밥까지 직접 챙겨줄 정도로 자상한 성품이 돋보이기도 했다. 술만큼이나 사람 좋아하는 윤 전 총장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한 대목을 옮긴다.

“(석사장교로 3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을 때 석열이가) 면회를 왔어요. 군대 온 녀석과 고시 준비 중인 녀석이 만났으니 술을 퍼마셨죠. 그런데 금방 술이 떨어져서 석열이가 피엑스로 술을 사러 갔죠.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왔는데 술 두 병 중의 한 병은 비었어요. 오다가 마주치는 사람마다 조금씩 따라줬다는 거예요. 술이 한참 고플 시기니 술 떨어진 친구나 오랜만에 반갑게 만난 친구들에게 한 잔씩 나눠준 거죠. 한 병이라도 남겨온 게 다행이었어요.”(《구수한 윤석열》 P.34~35)

《월간중앙》은 2021년 5월호 커버스토리 기사 ‘여의도 빅뱅 블랙홀 윤석열의 行路’에서 “윤 전 총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형님 리더십, 의리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입을 모은다. 후배들과 술친구들을 다 챙기다 보니 고시 장수생(9수)이 될 수밖에 없었을 거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의 한 대목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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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의 윤 전 총장. 사진=윤석열 대선캠프 공식홈페이지 캡처

서울법대 선후배 권영세, 나경원과 친했다

〈이 대목에서 윤 전 총장의 대학(서울대) 선배로 장관을 지낸 구여권 인사의 말을 귀 기울여볼 만하다. “서울 법대 79학번인 윤 전 총장은 같은 과 선배인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77학번), 후배인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82학번) 등과 친했다. 대학 때 윤 전 총장은 권 의원이 주도한 ‘형사법학회 아이리스회’에 가입해서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안다. 나 전 의원 부부와는 검찰총장(2019년 7월)에 임명되기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허물없이 만나 소주잔을 부딪쳤다고 하더라. 나 전 의원 남편인 김재호 판사도 법대 82학번이다.”〉

이처럼 윤 전 총장의 취흥(醉興)은 단지 술기운에서만 비롯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취하기 위해 술에 취하는” 성정(性情)이었다. 사람들에 집중하다 보니 특별한 재주(?)도 생겨났다. 매일 다른 사람들과 모여 술을 마셔도 술자리에서 벌어진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법이 없다는 것. 그날 술자리에 모이게 된 이유, 누가 참석했는지, 주종(酒種)과 안주가 어떤 것이었는지까지 술술 풀어낸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술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으며, 사람마다 어떤 표정과 반응을 보였는지까지 기억해낸다고 한다. 우연히 찾은 지방 선술집에서 주인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 대화를, 서너 달 뒤 다시 찾아가서 되뇌었을 정도라니. 역사·경제 책을 열 쪽만 읽어도 한두 시간 이야기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정도로 화술(話術)도 유려해 술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자주 했다고 한다. 

경제·역사·철학 분야 책 탐독... 술자리 섭렵하는 재담꾼이자 多辯家 

“고시 공부할 때도 잠자리 들기 전에는 항상 역사책들을 읽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함께 산책하면서 십자군 원정, 로스차일드 가문, 비스마르크, 프랑스 혁명 등등 자랑 반 과시 반으로 내가 읽은 책들을 이야기를 하면, 도대체 언제 먼저 읽었는지 이야기를 풀어내요. 단순히 팩트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처럼 커다란 역사적 맥락과 세계사적 의미, 인류문명에 미친 영향까지... 전방위적이고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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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절의 윤 전 총장. 사진=윤석열 대선캠프 공식홈페이지 캡처

“대학교 1학년 때 박우희 교수님이 경제학 개론 수업에서 A+를 받았다고 술만 마시면 자랑을 했어요. 으스대고 과시하는 성격이 아닌데도 말이에요. 석열이랑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경제통계학자이신 아버님 밑에서 자라면서 시장경제원리에 관한 본능적 감을 익혔다는 느낌을 받아요. 거기에 엄청난 독서량이 한몫하는 거죠. 미시·거시 경제는 물론 미국 중앙은행(FRB), 미국 금융제도, 세계 각국의 화폐전쟁 등등 국제경제 분야에 상당한 내공을 쌓았습니다.”(《구수한 윤석열》 P.53~54)

윤 전 총장은 고시 공부를 할 때도 법전(法典)만 달달 외우지 않고 문제적 이슈에 대해 끊임없이 친구들과 토론했다. 책에 나온 정의된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것저것 궁금증이 많아 앉은 자리에서 2~3시간이고 토론에 빠져들었던 것. 공부가 급한 친구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뜰 정도였다고 한다. 그와 가까운 지인은 “20대의 그에게는 도력이 있는 스님의 만행(萬行) 같은 느낌이 있었다. 자기만의 삶을 살아보려고 하는 묘한 인상이 강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의 40년 지기로 알려진 석동현 변호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군사정권 시대, 學內 사복경찰에게 호통을 치다

“일단 달변이면서도 다변이다. 그런데 많은 말을 하는 와중에도 나름 어록이라고 할 만한 구절들이 있다. 그것은 어디에서 읽었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고, 가르쳐준 것을 외운다고 해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사유의 깊이가 있을 때에만 가능한 윤석열 본인만의 언어가 있다.”(《별의 순간은 오는가》 P.82~83)

부당한 처사에 항거하는 윤 전 총장의 결기는 청년 시절부터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군사정부 시절인 1979년 가을의 일이다. 당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었던 그는 캠퍼스를 산책하다 우연히 사복경찰이 한 여학생을 제지하고 즉석에서 검문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엄혹한 시절이었던 만큼 모두가 숨죽여 지나갈 뿐, 그 상황을 제지하고 나서는 학생이 없었다. 그때 윤 전 총장이 경찰에게 대뜸 호통을 쳤다.

“정의감이 폭발했는지 어쨌는지 석열이가 경찰에게 호통을 치는 거예요. ‘당신이 뭔데 이 학생에게 함부로 하느냐. 대학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요. 19살의 대학 1학년에 불과했지만 덩치와 기개가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녀석이니 사복경찰관을 압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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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21일 서울시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의 수사 및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실무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지휘 책임자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나쳐 이동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경찰이 주춤하자 윤 전 총장은 자기보다 선배인 3학년쯤 돼 보이는 여학생에게 ‘빨리 가라’고 했다고 한다. 이어 해당 경찰에게 ‘학교에서 나가라’고 계속 호통을 쳤다는 것. 큰소리가 나자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경찰도 하릴없이 교정을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갑자기 동요를 큰 소리로 부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 보겠네’라는 동요였죠. 정문으로 향하는 큰 도로를 걷던 학생들도 함께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경찰도 막을 수가 없는 거예요. 학생운동가가 아니라 동요니까요.”(《구수한 윤석열》 P.41~42)

고시생 친구에게 도시락 싸주고, 아내 다친 친구의 딸 돌봐주기도

서울법대를 나온 천하의 수재(秀才)라도 같은 시험에 수차례 떨어지면 의기소침하기 마련이다. 윤 전 총장은 대학 졸업 후에도 다른 직업 없이 고시 공부에만 전념했지만, 무려 여덟 번이나 떨어졌다. 인생을 비관하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볼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꽤 낙천적이었던 것 같다. 되레 남들을 챙기는 데 열심이었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육수를 낸 국을 가져와 산책로 벤치에서 친구와 나눠 먹기도 하고,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고시생 친구를 위해 시험 당일 샌드위치와 토마토 주스를 만들어 도시락을 싸주기까지 했다. 

“오지랖이 넓다고 해야 하나? 1990년이었을 거예요. 결혼해서 맞벌이 하는 친구의 와이프가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었어요. 어린 두 딸을 두고 출근해야 하는 친구의 어려움을 알게 된 거죠, 석열이가. 그래서 일요일 저녁 친구 집으로 갔어요. 아내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틀 동안 아이들 밥 챙겨주고 놀아주고, 친구 출근할 수 있도록 도와줬죠. 고시를 바로 앞두고 있었는데도.”(《구수한 윤석열》 P.56)

‘될 때까지 한다’는 남자다운 오기도 있었겠지만, 이처럼 우정을 우선시하는 그만의 ‘긍정적 인생관’이 9수 끝에 합격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 데 큰 힘이 됐을 것이다. 석동현 변호사의 말이다.

“고시가 잘 안 되면 일단 괴롭다. 그런데 윤석열은 여러 번 그런 일을 겪었다.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장수생이 되고 나서 윤석열은 집 근처인 연세대 도서관에서 자주 공부했다. 친구나 후배들의 눈에 띄면 면구스러울 수 있기 때문 아닐까. 그러다가 시험이 임박하면 서울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자기 삶 자체를 사랑하는 자세는 잃지 않았던 것 같다. 늘 긍정적이었다.”(《별의 순간은 오는가》 P.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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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9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팀의 윤석열 수사팀장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9수 끝에 늦깎이 검사... 친화력 좋아 선후배들과 관계 원만

8전 9기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거쳐 대구지검에 초임검사로 발령받을 당시가 1994년, 그의 나이 서른다섯 살 때였다. 당시 대구지검에는 윤 전 총장의 동기 한 명이 고참 평검사로 있었고, 선배 검사로 모셔야 할 대학 후배도 있었다고 한다. 풍채도 크고 나이도 많은 대학 선배가 동기·후배들 밑으로 들어왔으니 서로 불편할 법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고 한다. 당시 대구지검 고참 검사였던 윤 전 총장 동기는 이렇게 회고했다.

“기우였다. 고시 공부 기간이 길다 보니 쌓인 지식이 풍부했고, 달변에 두주불사형이다 보니 친화력도 좋아서 동료 선후배 검사들과의 관계 등 적응이 남달랐다. 몸집도 좀 크고 하다 보니 몇 달 안 가서 말만 초임검사였지, 대구지검 청내에서 아무도 그를 초임으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였다.”(《구수한 윤석열》 P.74~75)

이후 잠시 변호사 생활을 거친 윤 전 총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인 2003년 검사로 복귀했다. 검사에 재임용된 그는 전라남도 정무부지사의 특정 업체 수의계약 지시, 기초단체장 친인척들의 금품 수수 사건 등을 수사하는 등 검사로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대형 사건을 맡게 된다. 바로 당시 안대희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이끄는 ‘불법 대선자금 비리 의혹’ 수사팀에 합류하게 된 것. 당시 평검사였던 윤 전 총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 불렸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비롯해 이상수 전 민주당 사무총장,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 등을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력을 왕성하게 발휘했다. 2019년 12월 16일 자 《중앙일보》 기사 ‘2004년 盧측근 안희정 잡은 윤석열... 요즘 그 얘기 자주한다’에 나온 윤 전 총장 측근의 멘트를 옮긴다.

노무현의 腹心 안희정을 구속시키다

“(윤 전 총장은) 기본적으로 대통령 주변에서 벌어지는 비위 같은 걸 방치하게 되면 결국 대통령에게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근 비리) 단서가 확인됐을 때는 검찰이 제대로 규명하는 게 궁극적으로 국가의 발전이 된다고 본다. 그런 얘기를 저희(검사들)한테도 자주 한다. 2004년 대선자금 수사 때 (노무현 대통령 핵심 측근인) 안희정씨를 구속한 사례를 얘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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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4일 사퇴를 표명한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이후 윤 전 총장은 2006년 현대자동차 비자금 조성 첩보를 갖고 대검 중수부로 돌아왔다. 또래들보다 검사 경력이 비교적 낮은 편이었던 그가 재벌기업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게 된 것. 당시 현대차 비자금 수사팀은 박영수 중수부장, 채동욱 수사기획관, 최재경 중수1과장, 수사검사 윤석열·윤대진으로 구성됐고 6개월 동안 보안 유지를 하며 수사를 준비했다. 그해 3월 말 일요일 아침 7시 30분경 대검 수사팀 40여 명이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와 원효동 현대글로비스, 이천 현대오토넷 사옥을 기습,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2006년 3월 29일 자 ‘MBC’ 보도에 따르면, 현대 관계자들은 압수수색의 이유를 몰라 당황했고 검찰이 비밀금고의 위치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 놀랐다고 한다. 

현대차 수사 당시 정몽구 회장 구속 관철 위해 총장에게 사직서 들고 가기도 

현대차 주요 계열사 압수수색부터 정몽구 회장을 포함한 주요 경영진의 소환 조사까지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남은 문제는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사장의 처벌 수위를 어떻게 정하느냐는 것이었다. 수사팀은 ‘정몽구 구속, 정의선 불구속’을 주장했고, 검찰 지휘부에서는 총장의 고심이 계속되자 ‘정몽구 불구속’ 이야기가 돌았다. 이때 윤 전 총장은 당시 정상명 총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정몽구 구속’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는 “수사 결과를 볼 때, 정 회장은 법대로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총장에게 수사 보고서와 함께 사직서를 함께 제출했다고 한다. 불구속 처리될 경우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각오였다. 결국 2006년 6월 1000억 원대 비자금 조성 및 계열사 공금 횡령 등 혐의로 정몽구 회장은 구속됐다. 

윤 전 총장은 평소 기업 비자금 문제에 대해 동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주식회사는 상장회사다. 일반 주주, 채권자, 종업원이 있고 국가 세금이 투입된다. 오너가 경영권을 가졌다고 회삿돈 빼돌려 사익을 추구한다는 건 중대범죄고, 자본주의 기본을 흔드는 것이다. 용납이 안 되는 거지.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구수한 윤석열》 P.93) 

그는 지난 3월 2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득권의 경제범죄를 파헤치면 검사를 ‘좌파’라 부르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검찰에게 그동안 과오도 있었다. 하지만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나 보수를 표방하는 정부를 가리지 않고 ‘잘못을 저지르면 힘 있는 자도 처벌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진보를 표방한 정권의 권력자나 부패범죄를 수사하면 따라서 그것이 보수인가? 재벌이나 정치인이 형사처벌 받는 것을 상상조차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들이 형사처벌 받는 것을 국민이 직접 목격하기 시작하면서 권위주의가 무너지고 보통 시민의 권리의식이 고양됐다. 이 ‘리걸 스탠더드’가 사회를 진일보하게 만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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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9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대선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윤석열은 설욕형 검사 아닌 설복형 검사

그렇다면 윤 전 총장의 수사 스타일은 어떨까. 정몽구 회장 구속을 강단 있게 추진한 현대차 비자금 수사에서 보듯 왠지 위압적(威壓的)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이는 편견인 듯하다. 《별의 순간은 오는가》는 그의 수사 스타일을 “충분히 조사하고 설복(說伏)시킨다”고 표현한다. 윤 전 총장의 한 측근은 “그는 강력하게 상대를 밀어붙이는 검사가 아니다. 현장에 대해 충분히 데이터를 모은 뒤에 피의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다”고 했다. 그는 “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과 의도를 갖고 있었는지도 충분히 듣는다”고 덧붙였다. 석동현 변호사의 말이다.

“특수수사를 하다 보면, 고통을 못 이긴 피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하지만 윤석열이 직접 담당한 사건에서는 누가 억울하게 죽음을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없다. 그는 설욕형 검사가 아니라 설복형 검사다.”(《별의 순간은 오는가》 P.103)

윤 전 총장의 정치 이념은 ‘자유’라는 단어로 집약된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총장직을 사퇴했고, 국가의 외교 방향에 대해서도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동맹을 다지는 게 외교의 우선”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이 우리 국민 가슴속에 활활 타오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 전 총장의 석사 논문을 지도한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는 《월간조선》 2021년 5월호 인터뷰에서 “윤석열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확실히 신봉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윤 전 총장은 지난 6월 29일 오후 1시경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과 거리 먼 자유주의자

“저는 자유를 굉장히 중시한다. 우리가 인류 역사를 보더라도 자유가 보장된 도시는 번영을 이뤘다. 그리고 강했다. 그러나 자유라는 것은 내 자유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공동체의 다른 시민들의 자유도 함께 중요하고, 그런 연대와 책임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는 헌법정신이고 공공정책에서는 복지로서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성과 상식을 가지고 국가가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으실까 생각한다. 그 안에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별의 순간은 오는가》의 저자 천준 작가는 “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한다. 임명직 출신으로서는 드물게 국체(國體)에 대한 신념이 강하고 그것을 자주 외면적으로 표현한다. 총장 임명 전부터 ‘윤석열은 보수(우파)’라는 말이 법조 기자들 사이에서 자주 떠돌았다”며 “2016년에는 국민의당 공천제의설이 있었지만 그전에는 한나라당 영입제의설도 있었다. 쉽게 말해서 진보·운동권 성향의 더불어민주당과는 사상적으로 거리가 먼 셈”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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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자들에 둘러싸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남자 아이와 주먹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윤석열 대선캠프 공식홈페이지 캡처

윤 전 총장은 지난 7월 12일 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선 자유와 자유민주주의가 뭔지 국민들이 다 함께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공산주의도 민주주의라고 한다. 독일민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하지만 개인이 중시되고 자유가 있다고 볼 수 있겠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런 가치를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국가가 시스템 관리자로서 또는 개입자로서 행동할 때 이 정신을 투철하게 가져야 한다”며 “그래야만 정책 효과도 있고 취약한 사람도 보호할 수 있다. 이 정신을 잃으면 양극화가 더 심해진다”고 덧붙였다. 이어 “민주당 핵심그룹이 개인의 자유를 과연 존중하는 철학적 기반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탄핵의 江 건너고, 배신자 프레임 벗고... ‘내 페이스대로 가겠다’는 尹, 대권 잡을까

윤 전 총장은 과연 내년 대선에서 승기를 잡고 ‘자유대한민국’을 다시금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인가? 명확한 자기 소신과 달리 세간의 평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불의에 맞서는 용기 있는 원칙주의자’이자 ‘강단 있고 믿음직한 대통령감’이라는 찬사부터, ‘박근혜 정권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좌파의 칼잡이’라는 보수 일각의 비난과 ‘자신을 거둬준 문재인 정권을 수렁으로 집어넣을 역적’이라는 배신자 프레임에 이르기까지. 정제되지 못한 언행, 전무(全無)한 국정·의정 경험, 처가(妻家) 비위 의혹 등 기타 문제들도 터져 나오고 있다. 그는 어떻게 이 ‘대권 가시밭길’을 헤쳐나갈 것인가.

“윤석열은 정해진 길로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국정원 수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 적폐수사 등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은 낸 것이었다. 굽이굽이마다 논쟁이 많았고, 비난도 꽤 있었다. ‘임기 1년밖에 남지 않은 대통령에게 과(過)한 벌을 구형했다’는 비판에서부터, ‘문재인 정부와 결탁해 자기 복수를 이루었다’는 극언에 이르기까지, 안 들어본 말이 없는 사람이 윤석열이다. 최근 필자는 측근을 통해 일련의 전적(前績)들이 다시 정치 논쟁이 될 경우 어떻게 대처하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답을 전했다.

‘나는 내 페이스대로 갈 것이다!’

인상 깊은 말이었다.”(《별의 순간은 오는가》 P.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