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세균 전 총리. 사진=조선일보DB

정세균 전 국무총리. 그는 6선 의원에 장관, 당대표, 국회의장에 이어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다. 정치인으로서 대통령 빼곤 다 해본 셈이다. 국회의장은 퇴임 후 정계 은퇴를 하는 것이 관례이나 국무총리에 이어 최근 대선 출마까지 선언했다. 

정 전 총리가 대통령 자리에 도전하며 이루고자 하는 꿈은 무엇일까? 2000년부터 2018년까지 정세균의 보좌관으로 일했던 고병국 서울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정 전 총리에 관해 쓴 책 《법 만드는 청소부》 (이불, 2021)와 올해 4월 출간한 정 전 총리의 에세이집 《수상록》 (이소노미아, 2021)을 통해 정 전 총리의 정치 인생과 비전에 대해 알아봤다.

《법 만드는 청소부》에서 고 의원은 정치인으로서 정 전 총리의 꿈이 '세상을 바꾸는 전깃불이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가 전라북도 진안의 고향집에서 전기를 처음 구경한 것은, 1976년 군대에서 첫 휴가를 받아 나올 때였다고 한다. 경북 안동에서 출발하여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고향 마을에 도착한 그는, 집집마다 환하게 빛나던 '전깃불'의 충격과 환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오죽하면 정치인으로서 앞으로의 다짐을 묻는 질문에 '세상을 바꾸는 전깃불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을까〉  (《법 만드는 청소부》 p.100)

정 전 총리는 에세이집 《수상록》에서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인의 일이라며, 지금 우리 세대보다 미래 세대가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비전이라고 밝혔다.  

〈정치란 기본적으로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렵고 힘든 국민들의 민생을 챙겨주고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시켜주는 것이 정치인 것이지요. 굉장히 심해진 양극화 현상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 이걸 어떻게 해소해서 다같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중략)
국회의장과 국무총리까지 한 정치인이다 보니 누군가 제게 '앞으로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라고 미래의 비전을 물을 수도 있겠지요. 우리 미래 세대가 지금 우리 세대보다 더 잘사는 나라, 이것이 정세균의 정치입니다.〉 (《수상록》 p.247~248)

그는 정치 지망생이나 젊은 정치인을 향해 "내가 세상을 더 좋게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정치는 아무나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사명감을 갖고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명감이나 소명 의식이 없으면 정치를 하는 일이 굉장히 힘들고 성과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출세 수단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 같아요. 차라리 다른 곳에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좋은 일을 하는 게 낫습니다. 왜냐하면 정치는 품삯이 안 나오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정치인은 365일 일하는 직업이고, 가성비가 낮은 업종이에요. 어려서 정치인이 돼야겠다고 다짐해서 결국 정치인이 되었는데 막상 해보니깐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어요. 절대적으로 일이 끝이 없어요. 물론 안 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하려고 하면 일은 항상 있고 계속 생겼으니까요. 나중에는 어느 CEO가 나보다 일을 많이 할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내가 세상을 더 좋게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부족하고 능력도 떨어지는 사람들을 내가 도와야겠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남을 위해 헌신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중요합니다. 타인에 대한 헌신보다는 이기적인 마음과 이해 관계에 밝으면 점점 정치하는 게 괴로울 거예요.〉 (《수상록》 p.69~70)

정세균5.jpg
▲ 《수상록》 (왼쪽)과 《법 만드는 청소부》 표지.

정 전 총리는 1995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제안을 받고 정치에 입문해 27년 간 정치인의 길을 걸어왔다. 그가 처음 진지하게 정치인의 꿈을 품었던 시기는 초등학교 때였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해 벼슬을 했던 5대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며 "너는 커서 큰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가르쳤다. 어린 정세균은 1960년 제5대 민의원 선거 벽보를 접하며 "나도 언젠가 저런 벽보에 나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정세균은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정치인의 길을 준비해 나간다.

〈어린 나이에 국회에 진출하는 목표를 세운 그는 그 목표를 위하여 필요한 일들을 하나하나 실천하기 시작한다. 정치가로서의 연설을 잘하려면? 그는 웅변을 배우고 웅변 대회에 나가 여러 번 입상을 한다. 정치가의 기본 자질인 리더십을 익히려면? 고등학교, 대학교 때 학생회장 선거에 도전, 당선된다. 남들보다 더 넓은 시야의 정치가가 되려면? 종합무역상사에 들어간 그는 오랜 시간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읽고 나라 경제를 이해하는 전문가가 된다. 마치 '정치가'라는 하나의 탑을 완성하기 위하여 정성스럽게 벽돌을 쌓아올리듯, 그는 그렇게 걸어왔다.〉 (《법 만드는 청소부》 p.18)

1995년 정치에 입문할 당시 정 전 총리에게 약속돼 있던 대기업 사장의 자리를 마다하고 정치인의 길을 택한 일화는 유명하다.

〈1995년 재차 들어온 러브콜을 그는 흔쾌히 받아들인다. 드디어 첫 번째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하기로 결심한 그는 쌍용그룹 김석원 회장에게 자신의 거취를 밝히려고 찾아간다. 그의 결심을 다 들은 회장은 그를 붙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서두르지 말고 사장까지 하고 나서 가면 더 좋지 않으냐, 서둘러 갈 필요가 있느냐." 회장의 만류는 일리가 있었다. 사장은 이미 예약된 자리였고, 회사에서 누릴 걸 다 누린 뒤에 도전하다고 해도 너무 늦은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회장님의 만류를 완곡히 뿌리치며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국회는 다른 분야에서 역할을 다 하고, 용도가 끝난 사람들이 가서 되는 곳이 아닙니다.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확보한 다음에 거기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일을 그만두고 가는 곳이지요. 국회에서 뜻을 펼치고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가야하는 곳입니다. 내가 회사에서 할 일 다 하고 더 이상 이룰 게 없을 때 국회에 가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있는 기회를 내가 버리고 도전하는 게 온당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기회를 버리고 도전을 택하는 것, 그게 정치를 하려고 하는 지망생의 바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소신을 다 들은 회장도 더는 잡아둘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의 앞날을 응원해 주었다.〉 (《법 만드는 청소부》 p.44~46)

정세균이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초선 의원으로 의정 활동을 시작한 뒤 얼마 안 있어 그의 청렴성을 입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한보그룹 국회청문회의 증인으로 나온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 우리가 제공한 정치자금을 거부한 유일한 사람이 정세균 의원이라고 밝혔던 것이다. 정 전 총리는 《수상록》에서 당시 상황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1996년도 초선 의원 시절의 일입니다. 당시 국회 재경위원회에서 국정감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모 대학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한보 그룹의 임원인 선배였습니다. "이게 틀림없이 무언가의 청탁이 있는가 보다"고 생각했지요. 그래도 정치인의 귀는 열려 있어야 하고 가려 만날 때도 아니어서 일단 만나기로 했습니다. 팔래스 호텔에서 만났습니다. 만나서 한보 그룹에 얽힌 자기들 사정을 설명하길래 그 설명을 들었지요. "잘 들었습니다"하고 나오려는데 종합선물세트 박스를 주는 것입니다. 보통은 아이들 과자가 들어 있습니다. 내가 과자를 받을 나이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사양했지요. 극구 사양을 했는데도 계속 강권하길래, "만약 내가 이걸 받으면 무엇이든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강요하지 말아주십시오"라고 말하면서 뿌리치고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중략)
그 후 한보 사태가 터지고 한보 그룹 국회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정태수 회장이 증인으로 참석했어요. 의원들이 정태수 회장에게 누구에게 로비를 했느냐고 물었지요. 정태수 회장은 많은 사람한테 로비를 했고 불법정치자금도 줬다고 답하면서 말했습니다. "누구한테 줬는지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리가 제공한 자금을 거부한 사람은 한 명 있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세균입니다."〉 (《수상록》 p.29~31)

입법부 수장(국회의장)과 행정부 2인자(국무총리)를 넘어 행정부 수장 자리에 도전하는 정 전 총리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그는 국민을 위해 어떤 리더십을 발휘하게 될까? 그는 이른바 '접시론'이라 이름 붙인 '적극행정론'을 내세운 바 있다. 손님 접대를 위해 일하다가 접시를 깨는 건 괜찮아도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쌓여서는 안 된다는 게 '접시론'의 핵심이다. 공직사회가 민생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산자부 장관을 그만둔 후에 장관의 경험을 담은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 《나의 접시에는 먼지가 끼지 않는다》 (다우, 2007). 무슨 의미일까? 그의 산자부 장관 취임사를 읽어보면 그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나는 힘센 장관이 아니라 힘 있게 일하는 장관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히고 "일하다가 접시를 깬 사람은 용서하겠지만, 접시에 먼지가 낀 사람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흔히 '복지부동'이라 일컫는 행위를 그는 '먼지 낀 접시'로 표현한 것이다.

이 취임사는 결코 직원들만을 향한 경고만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향한 다짐이기도 했다. 그는 취임식을 마치자마자 반월·시화 공단에 들러 수출 기업의 애로사항을 점검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10분 단위로 일정을 소화하면서 산업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밤마다 팩스 보고서를 읽느라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자신 스스로 접시에 먼지가 낄 틈 없이 열심히 뛰었던 것이다.

결국, 그의 이런 노력은 소중한 결실로 이어졌다. 그의 재임 시 고유가, 환율, 원자재 가격 급등의 3중고를 극복하고 한국 경제는 '수출, 3000억 달러', '외국인 투자 110억 달러'라는 성과를 거두었고, 미래의 먹거리라 할 차세대 성장 동력을 선정하였으며, 대통령과 함께 네 차례나 해외 순방을 하면서 과거 십수년에 버금가는 자원 외교의 성과를 거두었다〉 (《법 만드는 청소부》 p.96~97)

정세균3.jpg
▲ 지난 12일 오후 제20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들이 경기 파주시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정책 라이브 커머스 '슬기로운 후보생활 (더민: 정책마켓)'에 참석했다. 사진=조선일보DB

정 전 총리가 차기 대통령이 돼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선 민주당 경선 통과가 당면 과제이자 난관 중 하나이다. 그의 지지율은 당내 경쟁자 중 5위에 머물고 있다. 지난 11일 여론조사업체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7~9일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민주당 대선후보 지지도는 이재명 지사 27.9%, 이낙연 전 대표 23.1%,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5.1%, 박용진 의원 4.8%, 정세균 전 국무총리 3.4%, 김두관 의원 1.5% 순이었다. '없음'은 30.4%, '잘 모름·무응답' 3.8%로 집계됐다.

다만, 정 전 총리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당시 오세훈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후보와의 대결에서 자신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하게 나오던 여론조사 결과를 뒤집고 대승을 거둔 바 있다. 그는 '선거계의 조용한 제왕'으로도 불린다. 경선 통과 후 출마한 모든 선거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는 20대 총선에서 현장 분위기를 통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고 했다. 정 전 총리는 당내 경선을 앞둔 현재 당원들과 국민들의 민심을 어떻게 예측하고 있을까.  

〈선거 후에 많은 사람이 내게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겼냐고. 진짜로 이길 줄 알았냐고. 2012년 총선에서 홍사덕 후보와 상대할 때, 나는 개표 결과를 기다리며 '당선소감문'과 '낙선소감문'을 함께 준비했다. 결과를 진짜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6년에 나는 '당선소감문'만 준비했다. 그의 말대로 표심은 현장에 있고, 나 또한 현장에 있었다.〉 (《법 만드는 청소부》 p.146) 

그는 자신의 에세이집에 은퇴 후 계획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다. 좋은 정치인을 양성하는 정치 학교를 열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 그의 또 하나의 꿈이다.

〈은퇴를 하면 '선생님'을 해보고 싶어요. 정식 학교는 아니고 인재를 양성하는 사설 학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보람을 느끼면서 잘할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우리 정치는 품위가 너무 없습니다. 마치 양아치 세상과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낌을 주는 게 우리 정치판입니다. 염치도 체념도 인정머리도 아무덧도 없는 판이거든요. 아마 깡패 집단 빼놓고 정치인보다 말을 험하게 하는 집단이 없을 거예요. 깡패 집단도 욕이나 좀 하지 남의 마음을 후벼 파고 모욕하고 뒤집어씌우고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정치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정치인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처신하고 말하느냐에 따라 사회가 달라져요. 그래서 다음 세대를 위해 좋은 정치인을 양성하는 정치 학교를 열어보고 싶은 것이지요. 정치인의 말부터 시작해서 정치인의 행동과 태도까지 교육하는 커리큘럼을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정책과 실력까지 포함해서요.〉 (《수상록》 p.67~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