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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면접시험을 거쳐 수괴로 임명된 김일성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2014-07-08 13:55


    1953년 3월5일 소련 독재자 스탈린이 사망하자 넉 달 뒤 2년간 끌던 한국전쟁 휴전협상이 타결되었다. 毛澤東(모택동)과 김일성의 호소를 무시하고 전쟁을 계속하도록 시킨 것은 스탈린이었다. 오늘의 한반도 분단, 오늘의 북한 참상엔 스탈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스탈린은 트루먼과 함께 오늘을 사는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외국인이다.
  
   金學俊(김학준) 전 동아일보 회장(전 서울대 교수)이 펴낸 '북한의 역사'(1,2권)는 두 권을 합쳐서 2000페이지나 되는 大作(대작)이다. 東西 냉전이 끝난 후 공개된 문서를 충분히 활용하여 쓴 이 책은 秘話가 많아 흥미진진하다. 1946년 7월에 스탈린이 김일성과 박헌영을 불러 일종의 면접시험을 친 뒤 김일성을 북한정권의 수괴로 선택하는 장면은 李承晩(이승만) 대통령이 왜 김일성을 무시하고 스탈린과 상대하려 하였고 북한을 항상 北傀(북괴)라고 불렀는지를 깨닫게 한다.
  
   金學俊 박사에 따르면, 스탈린은 모스크바로 호출된 두 사람에게 조선반도의 정세, 남조선의 정세, 북조선의 정세를 자세히 물었다고 한다. 김일성은 시험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고 한다. <(소련인) 레베제프는 이 경우에 대비해 이미 金을 꼼꼼하게 준비시켰었다>는 것이다. 스탈린이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를 예측한 뒤 예상 질문들에 관한 대답을 미리 마련했었다는 것이다. 레베제프는 金에게 특히 군사문제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라고 충고했었다고 한다. 그 결과 김일성의 대답은 대체로 충실했다고 한다. 김일성은 특히 “군사 및 전략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가장 완벽하게 내보일 수 있었다”라고 레베제프는 회상했다.
  
   김일성은 스탈린과 소련군에 호의적으로 언급했다고 한다. 그는 스탈린의 배려, 그리고 소련군의 주둔 및 협조가 북한에서 여러 개혁들을 가능하게 했다는 말을 되풀이 함으로써 스탈린의 환심을 사려 했다.
  
   박헌영의 통역을 맡았던 샤브신의 부인 샤브시나의 회상에 따르면, 스탈린의 지시에 대해 朴이 “인민들과 상의를 해봐야 한다"고 대답하자, 스탈린은 그 자리에서 자기 스타일대로 “인민이라니? 인민이야 땅을 가는 사람들이잖소. 결정은 우리가 해야지”라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본문이미지
1950년 8월 15일자 해방일보.스탈린의 얼굴을 김일성보다 상석인 오른쪽에 배치한 편집이 눈에 띈다. 해방일보는 1945년 9월 19일 조선공산당중앙위원회가 사장 겸 주간 권오직(權五稷), 편집장 조일명(趙一明)의 명의로 서울 소공동에서 B4판 2면으로 창간한 극좌익지.조선공산당은 당시 가장 매우 귀한 시설이었던 서울 소공동 소재의 고노자와인쇄소(近澤印刷所)를 접수해 이 신문을 찍고, 인쇄소 이름을 조선정판사(朝鮮精版社)라 고치고, 그 인쇄시설을 이용하여 당시 통용되던 화폐인 조선은행권을 몰래 찍어 공산당 자금으로 사용했다.이것이 이른바 ‘공산당의 위조지폐사건’ 혹은 ‘정판사사건’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미군정당국은 1946년 5월 18일 조선정판사를 폐쇄하는 동시에 거기에서 찍어내던 『해방일보』의 발행정지처분을 내렸다.
 
 

      '북한의 역사'는 이렇게 썼다.
   <스탈린은 자신의 별장으로 김일성과 박헌영의 일행을 초청해 연회를 베푼 뒤 朴을 모스크바에 며칠 머물게 해 기업소들과 공장들을 견학시키라고 지시했다. 스탈린의 통역들의 회상에 따르면, 金은 “무서운 지도자”라는 인상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중급의 黨(당)간부처럼 보였으며, “아첨하는 어조로” 말했을 뿐만 아니라 내내 스탈린에게 동의하곤 했다. 당시 그들에 따르면, 김은 긴장해 있었고 언제라도 스탈린의 명령을 따를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으며 스탈린은 김이 마음에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탈린은 김일성을 제자처럼 대하면서 강의하고 지시했다. 통역들에 따르면, “스탈린은 군사에 관한 깊은 지식으로 김을 감동시키면서 戰爭史(전쟁사)로부터 예들을 자주 인용했다. […] 김은 진심에서 우러난 감격과 환희를 나타내며 입을 벌린 채 그것을 들었다.”
   레베제프에 따르면, “스탈린은 김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김은 열광적인 단어를 그치지 않고 반복했다. […] ‘어린 지도자’는 스탈린의 손에 의해서 그가 차지한 ‘영웅’의 권위가 ‘커다란 지도자’의 작은 손짓만으로도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분명히 이해했다.>
  
   여러 증언들을 종합하면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아부하였고, 박헌영은 깐깐한 자세였던 듯하다. 김일성은 생전에 黃長燁(황장엽) 비서에게 자신이 스탈린에게 불려가 시험을 잘 쳐서 박헌영을 누르고 지도자로 뽑혔다고 자랑하더라고 한다.
   한편 李承晩 대통령은 1954년 미국을 방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 미국측이 韓日(한일)수교를 압박하자 '내가 살아 있는 한 수교는 없다'고 잘라 말하였다. 화가 난 아이젠하워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회의장을 나가자 李 대통령은 그의 등을 향하여 '저런 고얀 X이 있나, 저런'이라고 호통을 쳤다. 미국 대통령에게 호통 친 한국 대통령과 소련 독재자에게 아부한 북한 지도자의 차이가 오늘의 남북한 차이이다. 
   
  
등록일 : 2014-07-08 13:55   |  수정일 : 2014-07-0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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