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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의 못다한 이야기

버킷리스트에 있던 남미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

인간의 삶이란 우연히 같은 배의 승객이 되어 잠시 만났다가 각자 다른 포구에서 내리는 그런 이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 엄상익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2018-02-05 09:03

 남미 대륙을 여행했다. 삶의 버킷 리스트 중에 올려놓은 것 중의 하나였다. 인천에서 미국의 댈러스까지, 거기서 브라질의 사웅파울로까지 거의 30시간을 비행해서 남미 대륙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십여 차례 국내선과 국제선 비행기로 우루과이, 페루, 칠레,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돌아다녔다.
  
  구름이 덮인 안데스산맥의 골짜기에 있는 마을들을 보았다. 젊은 시절 의대에 다니던 체게바라가 남미 골짜기 여행을 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고 그의 평전은 말하고 있었다. 무허가의 붉은 흙벽돌집이 끝없이 펼쳐진 수십만 명의 빈민과 노숙자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공존하는 탁한 폐수가 흐르는 도시를 구경하기도 했다.
  
  산티아고 부근의 작은 항구에서 배를 타고 여러 개의 작은 항구도시를 돌아다녔다. 밤새 배는 나를 낯선 항구도 데려다 주었다. 새벽이 되면 검은 밤하늘에는 영롱한 별들이 쏟아질 듯이 가득차 있었다. 밝은 달이 번들거리는 검은 바다 위에 길게 빛의 띠를 만들고 있었다. 배는 훈김을 내뿜는 태평양의 큰 파도를 올라타기도 하고 마주치기도 하며 남쪽의 땅 끝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석양이 내려앉듯 새벽이면 달도 그렇게 수평선 저쪽으로 점점 스러져갔다.
  
  순간순간 만나는 사람들도 여행 그 자체였다. 같은 배에서 몇 사람의 동행자를 만났다. 정년퇴직을 한 교사부부가 있었다. 그들의 버킷 리스트에 첫 번째로 남미여행을 적었다가 실행하고 있다고 했다. 가장 젊은 이 순간 가장 어려운 코스를 택해야 그들의 꿈인 지구일주 여행을 마치고 죽을 수 있을 것 아니냐고 내게 말해 주었다.
  
  평생을 대학병원 수술실에서 수술을 하던 의사 선생님도 있었다. 젊은 시절 수술실에서 꼬박 열두 시간 이상을 서서 수술에 몰두하던 때도 있었다고 했다. 매일 매일을 가느다란 내시경을 요도에 넣어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전립선을 정교하게 깎아 호두알만한 본래의 모습으로 바꾸는 게 그의 인생이라고 했다. 신경을 잘못 건드리면 하반신이 마비될 수도 있고 자칫하면 성기능이 없어질 수 있는 세심한 손기술이 수반되는 분야라고 했다. 평생을 몰두한 그 수술로 자신은 명의가 됐는데 이제 세상은 그를 ‘정년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무대에서 퇴장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수술의 장인이 되었고 건강도 이상이 없는데 제도적 시스템이 그의 인생에 한 획을 긋는 걸 그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았다.
  
  성공한 사업가도 있었다. 한 달 동안 수염을 깎지 않아 온통 털북숭이가 된 그는 스스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통장에 들어있는 돈과 부동산 외에 자기는 아무것도 없더라는 것이었다. 한번 제대로 휴가를 가서 가족과 즐긴 적도 없고 명절에 쉬어본 적도 없었다는 것이다. 평생을 사업 아이템을 그때그때 앞에 놓고 신경이 곤두서는 선택을 강요당하는 인생이었다고 했다.
  
  행운이 다가와 선택하는 것마다 성공을 하고 돈이 들어왔다고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그게 진정한 성공인지에 대해 강한 회의가 왔고 모든 걸 그냥 놔둔 채 한 달이 넘는 남미여행을 선택해 훌쩍 떠났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스티브 잡스의 유언처럼 사업이나 운전은 남이 대신해 줄 수 있지만 대신 아파주거나 여행하면서 삶이 무엇이라는 걸 알려줄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인간의 삶이란 우연히 같은 배의 승객이 되어 잠시 만났다가 각자 다른 포구에서 내리는 그런 이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아버지와도 이 세상에서 잠시 같이 항해하다가 헤어졌다. 세상 배를 타고 육십오 년 동안 시간의 바다를 흘러오는 도중 수많은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시간의 물결 운명의 조류에 따라 그냥 흘러가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 여행이었다.
  
칼럼니스트 사진

엄상익 변호사


등록일 : 2018-02-05 09:03   |  수정일 : 2018-02-0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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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y Kim  ( 2018-02-06 )  답글보이기 찬성 : 4 반대 : 6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 할 줄 아는데까지 우리는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우리가 젊었을 적에 남을 배려하고 인생을 사랑하는 법을 어른들이 가르쳤다면 하고 생각하니, 이제는 우리가 잊지말고 가르쳐야 할 때가 된것 같습니다. 남미인의 선량한 눈동자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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