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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2차대전 죽음의 혈투장! 벨기에 아르덴느 숲

1944년 12월 16일, 히틀러는 독일로 진격하는 연합군에게 대규모의 기습공격을 가하게 된다. 예상치 않은 독일군의 역습으로 미군들은 곧 큰 혼란에 빠졌다.
특히 독일군 공격로의 목젖과 같은 위치에 있는 작은 도시 바스토뉴에서 미 제101공수사단을 포함한 17,000여명의 미군이 독일군 3개 사단 45,000 명에게 포위를 당했다. 동계장비를 지급받지 못한 미군들은 폭설로 인해 30cm 이상 쌓인 눈 속에서 혹독한 영하의 날씨와 차가운 바람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에게는 방한화도, 털양말도, 긴 내복도 없었고 게다가 불을 피우는 것도 금지였다. 끊어진 보급으로 인하여 미군병사들은 각종 질병과 부상으로 끔찍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글 | 신종태 육군지상전연구소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4-24 오전 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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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느(Ardennes) 삼림에서 반복되는 죽음의 혈투
 
독일의 트리어(Trier)룩셈부르그(Luxembourg)프랑스의 론그위(Longwy), 스당(Sedan)까지는 현재 철도가 놓여있어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 만에 도달할 수 있다. 자동차를 이용한다면 독일에서 출발하여 룩셈부르그와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스당의 뮤즈(Meuse)강에 이르는 양호한 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바로 이 곳이 19405, 독일군의 프랑스 침공로였던 벨기에의 아르덴느 삼림이며 지역내에는 급류인 뮤즈강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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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아르덴느 숲 전경
 
 아울러 벨기에의 시골도시 바스토뉴(Bastogne)도 아르덴느 고원에 있으며 194412, 연합군을 향한 마지막 독일군 공세작전이었던 발지(Bulge)전투도 이곳에서 벌어졌다. 잘 알려진 전쟁영화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울부짖는 흰독수리부대마크로 유명한 미 제101공정사단 506연대 이지중대(Easy Company)도 바스토뉴에서 독일군에게 포위된 채 수주일 동안 혈투를 벌렸다. 깎아지른 절벽, 계곡사이의 교량, 좁은 산길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전차나 차량 통행은 불가능할 듯이 보였다. 그러나 히틀러는 바로 이런 상식을 깨고 잘 훈련된 독일의 기갑군단을 이곳 아르덴느 숲속으로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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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에게 포위된 참호속의 미군

 1940510일 새벽 아르덴느 삼림 위를 프랑스 공군중위 호디는 정찰비행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달빛에 반사되어 희게 빛나는 도로를 따라 검은 뱀처럼 굼실굼실 움직이는 긴 띠를 발견했다. 엄격한 등화관제 아래에 있는 독일군 기갑군단 소속의 긴 차량행렬이었다. 호디 중위는 사령부로 즉시 보고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럴 리가 없다. 날이 밝으면 다시 한번 확인하라!”는 지시뿐이었다. 결국 벨기에 아르덴느 삼림지대는 기갑부대의 통과가 불가능할 것이다라는 상식을 깬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 초기작전 성공으로 벨기에·네덜란드·프랑스군의 항복을 받고 전쟁승리를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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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 독일군 동계복장
 
혹독한 추위와 끊어진 전장 보급.그러나 그들은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46개월 전, 독일군들은 아르덴느 삼림지대의 바스토뉴 부근을 신명나게 통과했다. 바로 그 곳에서 19441216, 히틀러는 또다시 반전을 기대하며 독일로 진격하는 연합군에게 대규모의 기습공격을 가하게 된다. 예상치 않은 독일군의 역습으로 미군들은 곧 큰 혼란에 빠졌다. 특히 독일군 공격로의 목젖과 같은 위치에 있는 작은 도시 바스토뉴에서 미 제101공수사단을 포함한 17,000여명의 미군이 독일군 3개 사단 45,000 명에게 포위를 당했다. 동계장비를 지급받지 못한 미군들은 폭설로 인해 30cm 이상 쌓인 눈 속에서 혹독한 영하의 날씨와 차가운 바람에 시달려야 했다. 그들에게는 방한화도, 털양말도, 긴 내복도 없었고 게다가 불을 피우는 것도 금지였다. 끊어진 보급으로 인하여 미군병사들은 각종 질병과 부상으로 끔찍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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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위된 상황에서 이동 중인 미군장병
 
 여러 질병들 중에서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인한 참호구강염(Trench Mouth)에 걸린 병사들은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다. 잇몸에서 고름이 배어 나왔으며 잇몸이 너무 약해져서 혀로 밀면 이빨이 슬슬 움직일 정도였다. 또한 포탄 파편에 맞아 배가 터진 병사는 흘러나온 자신의 내장 일부를 손으로 받쳐 들고 나머지는 흙바닥에 질질 끌고 다니며 비명을 질렸지만 응급처치만 한 후 그대로 방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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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병을 치료중인 미군 의무병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미군들은 결코 독일군에게 항복하지 않았다. 포위된 지 약 1주일 후인 1222, 독일군 지휘관은 병사 4명에게 백기를 들려서 미군 메콜리프 장군에게 보냈다. ‘명예로운 항복을 택함으로써, 전멸위기에 봉착한 미국병사들의 목숨을 구하라!’라는 전갈이었다.
 
 매콜리프의 답장은 ‘Nuts(꺼져! 닥쳐!)’ 였다. 결국 1226일 새벽, 패튼의 제4기갑사단이 독일군의 포위망을 짓뭉개고 바스토뉴에 포위된 미군진지에 도착해 그들을 구출했다. 이곳 아르덴느 숲속에서 영웅적인 전투를 했던 바로 101공정사단 506연대는 6여년 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한반도로 파견되어 공산군을 격파하는데도 유감없이 그들의 용맹성을 발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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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의 야전 취사장

아르덴느 고원 곳곳에 전사적지 기념관 산재
 
 벨기에의 아르덴느 산림에는 곳곳에 크고 작은 전쟁기념관들이 산재해 있다.
 바스토뉴에서 멀지않은 룩셈부르크 디키르시(Diekirch) 군사박물관의 전시물 절반이 발지전투에 관련된 기록물과 전투장비들이다. 2차 대전 말기에 패퇴하던 독일군이 마지막으로 약 30만 명의 병력, 1,000여 대의 전차·장갑차, 각종 화포 1,000여 문을 투입하여 아르덴느의 신화를 다시 한번 창조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오늘날 밋밋한 유럽평원을 벗어나 많은 여행객들이 아름다운 경관과 맑은 계곡물이 넘쳐흐르는 이곳 아르덴느 고원을 찾아와서 캠핑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그 광활한 산림 속에는 전장터에서 산화한 수십만의 젊은 영혼들이 아직도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구천에 떠돌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여행객들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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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서 악전고투 중인 미군 병사

 
칼럼니스트 사진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등록일 : 2014-04-24 오전 9:15:00   |  수정일 : 2014-04-2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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