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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4년 동안 축성한 벨기에 요새! 단 하루만에 무너지다

1940년 5월 10일 04:30분! 벨기에 에반에말 공격의 독일군 공수부대 벤첼(Wenzel) 원사는 글라이더가 요새 지붕에 착륙하자마자 글라이더의 내벽을 군화발로 힘껏 걷어찼다. 우지끈하며 글라이더의 벽이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대원들은 볼록 솟은 관측소와 화포진지 벙커를 향해 돌진했다.

사실 이 날을 위해 벤첼 원사와 80여명의 부하들은 1939년 9월, 폴란드와의 전쟁이 끝난 후 부터 거의 7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요새의 화포포상 및 관측소와 똑같은 모형을 만들어 두고 맹훈련을 반복했다. 마지막에는 에반에말 요새지형과 흡사한 독일의 스톨베르그(Stolberg)에서 실탄사격과 실제폭탄을 사용하는 예행연습까지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다

글 | 신종태 육군지상전연구소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4-14 오전 9:16:00

 194051004:30! 벨기에 에반에말 공격의 독일군 공수부대 벤첼(Wenzel) 원사는 글라이더가 요새 지붕에 착륙하자마자 글라이더의 내벽을 군화발로 힘껏 걷어찼다. 우지끈하며 글라이더의 벽이 떨어져 나감과 동시에 대원들은 볼록 솟은 관측소와 화포진지 벙커를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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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특수폭약에 뚫린 벨기에 요새 모습
 
▶죽음의 사신이 하늘에서 올 줄을 아무도 몰랐다 
 
 사실 이 날을 위해 벤첼 원사와 80여명의 부하들은 19399, 폴란드와의 전쟁이 끝난 후 부터 거의 7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요새의 화포포상 및 관측소와 똑같은 모형을 만들어 두고 맹훈련을 반복했다. 마지막에는 에반에말 요새지형과 흡사한 독일의 스톨베르그(Stolberg)에서 실탄사격과 실제폭탄을 사용하는 예행연습까지 완벽하게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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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포상 위에 구멍을 뚫어 화염을 집어넣다
 
 작전에 참가하는 공수부대원들은 독일청년들 중 가장 우수한 자질을 갖춘 최정예 인원들로 엄선되었다. 이들의 존재는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졌고 훈련기간 중 외부연락은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본의 아니게 여자 친구와 헤어진 장병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작전용 글라이더는 분해되어 엄격한 도로통제가 이루어진 가운데 심야에 수백 대의 포장트럭으로 발진기지인 괼른 비행장으로 운반되었다. 심지어 비행기지 사령관조차도 이 특수작전에 참가하는 공수부대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더구나 에반에말 요새건설에 참여한 독일회사로부터 지하 설계도면을 입수하여 독일군은 이미 내부구조까지 훤히 알고 있었다. 따라서 작전요원들은 눈을 감고도 요새내부로 통하는 통풍구나 총안구, 하수구등을 남김없이 찾아낼 수 있었고 이 작전을 위해 독일육군 병기국은 특수폭탄까지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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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최고의 전사 공수부대원 모습
 
 벨기에군도 나름대로 전쟁전야에 완벽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독일군이 어떤 방향으로 오더라도 집중포화를 퍼부을 수 있도록 모든 화포진지는 명령만 기다렸다. 그러나 모든 방향들 중에는 공중으로부터의 공격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요새지대의 벨기에군은 알베르 운하 건너편의 독일군 공격을 기다리는 사이에 죽음의 사신들이 자신들의 머리위에 천천히 내려앉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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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글라이드 공격을 예측 못한 벨기에 요새진지

복잡한 지휘체계, 통신수단 미비...멍터구리 요새로 변한 에반에말
 
 작전 당일 새벽에 11대의 글라이더가 요새지대에 착륙을 시도했으나 결국 9대만 목표지역에 도달했다. 그와 동시에 수십 대의 글라이더에 탑승한 300 여명의 독일군들이 알베르 운하상의 교량 점령을 위해 주변 강둑과 평원지대에 기습적으로 착륙했다. 특히 에반에말 요새지대 상단부에 개미떼처럼 달라붙은 독일 공수부대원들은 구멍이란 구멍에는 특수폭탄을 쑤셔 박았고, 신형 성형작약탄도 강철로 만들어진 진지 돔이나 벙커 벽에 수십 개나 설치하였다.
 
 지휘자 벤첼 원사의 신호에 맞추어 요새지붕 위에서 수차례의 동시 폭파를 시작했다. 환기구에서 폭발한 폭탄은 요새내부로 무시무시한 화염과 함께 엄청난 유독성 매연을 불어 넣었다. Km나 뻗쳐있는 긴 지하통로를 따라 시뻘건 화염이 휩쓸고 지나갔고 이 폭발에서 이미 수백 명의 벨기에군은 숯덩이가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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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에말 요새 앞 알베르운하를 건너가는 독일 공수부대원
 
 화염방사기를 멘 대원들은 기관총 사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벙커 총안구로 달려 나갔다. 화염방사기의 불길이 총안구에 닿는 순간 화염은 저절로 벙커내부로 빨려 들어갔다. 처참한 벨기에군의 비명소리와 함께 끝까지 저항하던 기관총좌는 하나 둘씩 침묵했다.
 
 더구나 벨기에군의 일부 화포는 포탄발사 순간에 외부관측용 잠망경에 주변 먼지와 흙덩이가 달라붙어 더 이상 조준사격이 불가능했다. 일부 용감한 병사들이 요새 밖으로 나가 오물제거를 시도했지만 곧바로 독일군에게 사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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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위의 견고한 벨기에군 화포 포상 전경
 
 또한 요새 내·외부간의 통신미비로 갱도내의 전투지휘소에서는 전반적인 상황파악에 상당한 애를 먹었다. 결국 실전 상황에서의 요새기능을 철저하게 점검하지 못했던 1,200 여명의 벨기에 요새 수비군은 불과 36시간 만에 정예 독일 공수부대원 80여명에게 항복하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요새지대 위의 평원 뒤늧게 옥수수밭으로 변하다
 
 갱도 내부에는 다양한 격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흡사 한국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하상가의 구조와 비슷하다. 특히 갱도 안에서의 화포사격시 소음처리를 위해 지하 수십m 깊이의 쌍굴을 뚫어 과학적으로 포격음를 분산시키는 시설도 완비되어 있었다. 독일군이 내부 침투를 위해 폭파했다는 시뻘겋게 녹쓴 지하철문은 부서진 채 방치되어 있다.
 
 안내자 설명에 의하면 벨기에군은 갱도 내부전투를 전혀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병사들의 무장도 빈약하였다. 예를 들면 1개 화포를 운용하는 10여명의 병사들 중 포반장 정도만 총기를 소지했고 나머지는 비무장이었다. 설마 독일군이 요새내부로 들어올 수 있다고 상상한 벨기에 군인은 아무도 없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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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 성공 후 히틀러가 직접 방문하여 공수부대원을 격려했다
 
 내부관람을 마치고 요새지붕인 산등성이로 올라갔다. 의외로 폭이 대략 2Km 내외 정도 되는 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다. 또한 볼록 솟은 관측소와 벙커형 화포진지들이 띄엄띄엄 산재해 있었다. 경항공기나 글라이더가 착륙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다. 현재는 초원지대의 대부분이 옥수수 밭으로 변해 있다.
 
 1940년대 당시 독일군의 강습착륙 작전가능성을 벨기에군 중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착안했더라면 거부대책은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초원지대에 축구장 대신 옥수수나 채소를 재배하는 경작지로 만들거나 지뢰지대 몇 곳만 설치하였더라도 글라이더의 안전한 착륙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지금에서야 새삼 요새지대의 지붕 절반을 옥수수 밭으로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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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적지에서 현장 체험학습 중인 벨기에 청소년

 
 
칼럼니스트 사진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등록일 : 2014-04-14 오전 9:16:00   |  수정일 : 2014-04-1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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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용  ( 2014-04-15 )  답글보이기 찬성 : 12 반대 : 11
우리국군은 전부이분처럼생각하고있어서 전혀 전방의참호를 증축할생각을아니하시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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