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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세계 최대의 요새! 벨기에의 에반에말을 찾아서

1940년 5월 10일 새벽, 독일군 공수부대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비극의 전투현장 벨기에 에반에말 요새(Fort Eben-Emale)! 답사를 위해 아침 일찍 브루쉘(Brussel)을 출발하여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마스트리히트(Maastricht)역에 도착하였다

글 | 신종태 육군지상전연구소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4-02 오전 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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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에말 요새 입구
 

에반에말에 대한 네덜란드 할아버지의 70년전 기억
 
1940년 5월 10일 새벽, 독일군 공수부대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비극의 전투현장인 벨기에 에반에말 요새(Fort Eben-Emale) 답사를 위해 아침 일찍 브루쉘(Brussel)을 출발하여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 마스트리히트(Maastricht)역에 도착하였다.
 
요새로 가는 길을 주민들에게 물으니 복잡한 버스노선을 알려준다. 시내버스를 타고 다른 정류소로 이동하여 또다시 벨기에행 시외버스를 타야한다. 즉 지형상 벨기에→네덜란드→벨기에(에반에말)로 가야만 되었다. “닥쳐올 일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는 격언을 상기하며 버스를 탔건만 제대로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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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의 알베르 운하 전경(끝부분에 에반에말 요새가 위치함)
 
그러나 낯선 동양인이 계속 “에반에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점잖은 노신사 한 분이 자기 집이 에반에말 요새 길목에 있으니 걱정말고 따라오란다. 천군만마의 원군을 얻은 기분이다. 이 지역은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3개국의 국경이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다.
 
버스종점에 오니 두 사람만 남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 분은 여행 안내자가 되었다. 연세는 80세가 넘어 보였으나 걸음걸이가 너무나 당당하고 힘이 넘쳐 보인다. 젊은 시절 네덜란드 해병대에서 근무하였으며 아주 어렸을 적에 독일군의 에반에말 공격작전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한다. 2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고향 마을 에스덴(Eysden)에서 뮤즈(Meuse)강을 건너 벨기에산 대형 초코렛을 자주 사 먹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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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운하 옆의 아름다운 주택 전경
 
특히 1940년 5월 10일, 자신의 마을 근처에서 많은 독일군들이 몰려와 뮤즈(Meuse)강에 부교를 설치하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했다. 당시 많은 친구들과 강둑에서 군인들의 부교설치 광경을 정말 인상깊게 보았단다. 그러나 강 건너편의 에반에말 요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네덜란드의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고 하였다.
 
▶ 강대국 침공에 대비하는 약소국 벨기에의 몸부림
 
1871년 보불전쟁 결과 승전국 독일제국의 출현에 벨기에를 포함한 유럽의 약소국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틈바구니에서 벨기에는 원하지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자주 휘말렸다.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벨기에가 쌍방의 공격 통로로 이용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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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에말 요새 입구 표지판
 
특히 1887년 벨기에 장군 브리알몬드(Brialmont)는 미래 독일침공을 대비하여 네덜란드와 독일 국경지역에 강력한 방어진지 구축을 정부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국방예산 삭감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브리알몬드 장군은 “전쟁에 대비하여 벨기에가 지금 견고한 요새진지를 만들지 않는다면 곧 국민의 피눈물을 대신 바쳐야 할 것이다.”라고 절규하였다. 결국 그 장군의 예언대로 벨기에는 1914년 독일의 침공으로 수십만의 벨기에 젊은이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전장터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전쟁양상 변화를 읽지 못한 구태의연한 벨기에군
 
1930년대 점증하는 유럽의 전쟁발발 가능성에 대해 벨기에는 에반에말를 포함한 12개의 대형 요새진지를 개축하거나 신설했다. 특히 독일침공을 대비한 에반에말 요새는 인공 장애물 알베르 운하를 끼고 1,200여명의 장병들이 거주하는 단일 규모로서는 세계 최대의 지하진지였다. 
 
이 요새는 1932년에서 1936년까지 약 4년간의 공사를 거쳐 완성하였으며 500명 단위의 포병을 2그룹으로 나누어 1주 단위로 갱도와 외부주둔 교대근무를 했다. 즉 비번포병은 요새로부터 7Km 정도 떨어진 야외병영에 주둔했으며 추가적으로 약 200여명의 기술·행정 지원요원들은 요새입구의 바깥 병영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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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에말 요새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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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내부의 지하통로
 
에반에말 요새에는 사거리 17.5Km의 120mm 화포 2문, 사거리 8Km의 75mm 화포 16문과 많은 기관총 및 대공화기 등의 무기와 지하 50m 아래에 수Km에 달하는 터널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갱도내부에는 전투지휘소, 탄약고, 생활관, 식당, 교회, 병원, 샤워장, 전사자 안치실, 감옥 등 장기간 고립전투가 가능하도록 제반 시설이 완벽히 준비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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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요새내의 장병 생활관
 
그러나 아쉅게도 요새 외곽에는 근접전투를 위한 교통호나 광범위한 철조망, 지뢰지대 등은 구축하지 않았다. 또한 화포운용은 전선부대의 요청에 의해 지원사격이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어 요새 자체의 관측과 사격능력은 많은 제한을 받았다. 더구나 변화하는 전쟁양상에 벨기에군은 둔감하여 공중으로부터의 항공기 강습착륙 대비책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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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상단의 넓은 초원(멀리 포좌가 보임)
 
특히 요새지대의 상단 초원에는 넓은 축구장을 마련하여 갱도근무 장병들의 사기앙양을 위해 운동을 즐기도록 장려하는 실정이었다. 오랫동안 전쟁을 준비해 온 교활한 히틀러가 벨기에군 요새의 이런 약점을 간과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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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공수부대의 요새상단 항공기 강습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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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를 점령한 강인한 독일 공수부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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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현장에서 직접 훈장을 수여했다

에반에말 요새는 벨기에 청소년들의 상무정신 함양 교육장으로 변신
 
2차 대전 후 오랫동안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오던 에반에말 요새는 1988년 1월 15일부터 관광객들에게 내부갱도와 외부지역 전체가 공개되고 있다. 벨기에 재향군인회에서 관리를 맡고 있으며 주출입구 근처에는 70여년 전의 외부 병영막사가 벽에 슝슝 뚫린 총탄자국을 그대로 안고서 아직도 남아있다.
 
특히 이곳은 많은 벨기에 청소년 단체에서 야영을 하며 서바이블 게임을 즐기는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당시에도 많은 청소년들이 엉성한 군복을 입고 포복과 약진자세를 연습하고 있었다. 흡사 오래 전 자신들의 선조들이 이곳에서 독일군에게 당했던 수모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의도적으로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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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교사의 청소년 상무교육(에반에말)
칼럼니스트 사진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등록일 : 2014-04-02 오전 9:30:00   |  수정일 : 2014-04-0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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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원  ( 2014-04-02 )  답글보이기 찬성 : 31 반대 : 4
벨기에 청소년들의 상무정신 함양교육장이라 부럽네 대한민국에서는 좌파적교육감들의 교육관때문에 꿈도 못 꾸겠다
윤영노  ( 2014-04-02 )  답글보이기 찬성 : 3 반대 : 8
벨기에판 마지노선이라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舊일본해군의 전함 야마도, 프랑스의 마지노선과 함께 항공시대의 흐름을 예측하지 못한 대표적인 無用의 건조물.
고세호  ( 2014-04-02 )  답글보이기 찬성 : 6 반대 : 3
적과 대치중임에도 흉물이라는 딱지를 붙여 설악산 기슭의 콘크리트 유개호를 헐어버리는 정신나간 대한민국과는 다르군요.
정계철  ( 2014-04-02 )  답글보이기 찬성 : 5 반대 : 13
칼럼 잘 읽었습니다
다음 방문지는 유럽 어딘가요 ?
동행 가능 한지요?(일체 비용은 각자 부담)
본인은 Frankfurt am Main 거주 동포이며 메일 주소 kcckd@web.de 입니다
      답글보이기  신종태  ( 2014-04-03 )  찬성 : 9 반대 : 16
경험에 의하면 유럽 청소년들이 군사나 전쟁의 문제에 대해 대체로 일반적인 한국인들 보다도 관심이 많은 편 입니다. 그들의 학교교육에 반영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태생적인 성향이 원래 상무적인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전적지 답사간 2차대전의 발발배경, 전쟁경과, 자기 집안 선조들의 참전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유럽 청소년들을 많이 만난 경험이 있습니다.

아쉅게도 한국 청소년들 중 자신의 할아버지, 친척 어른들이 6.25전쟁간 어느 전투에서 어떻게 싸운지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국민들 정서상 "전쟁과 생존의 문제"는 나와는 상관이 없고 다른 누군가가 내 대신 피를 흘려 줄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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