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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단 하루도 빠지지 않은 80년간의 전몰용사 추모행사

벨기에 이프러시의 전몰용사추모관(Last Post)

매일 저녁 8시 벨기에 이프르시 전역에는 요란한 소방서 사이렌이 울린다. 라스트포스트(Last Post) 기념관이 있는 중심 거리는 일제히 모든 차량이 멈춘다. 이 사이렌은 1차 대전시 이프르 전선에서 숨진 25만 명의 연합군 전몰장병들을 위한 추모행사를 알리는 신호이다. 1928년 이프르 시민들의 성금으로 건축한 무명용사 기념관 앞에서 이 행사는 처음 시작되었다. 그 후 단 하루도 이 행사는 빠지지 않았다. 심지어 2차대전 중 독일군이 벨기에를 점령했을 때는 영국의 병영에서 이 추모행사가 계속 진행되었다.

글 | 신종태 육군지상전연구소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3-18 오전 9:04:00

매일 저녁 8시 벨기에 이프르시 전역에는 요란한 소방서의 사이렌이 울린다. 라스트포스트(Last Post) 기념관이 있는 중심 거리는 일제히 모든 차량이 멈춘다. 이 사이렌은 1차 대전시 이프르 전선에서 숨진 25만 명의 연합군 전몰장병들을 위한 추모행사를 알리는 신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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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이프르 시민들의 성금으로 건축한 무명용사 기념관 앞에서 이 행사는 처음 시작되었다.
 “군목기도, 추모시 낭송, 1분간 묵념, 추모곡 연주, 벨기에 애국가 합창····”. 80여 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진행되어 온 시민단체 주관의 전통의식이다. 매일 저녁 반복되는 교통통제로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이 추모행사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시민은 단 한사람도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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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1940년 6월, 2차 대전시 독일군은 이곳을 점령하자마자 이 의식을 중지시켰다. 그 즉시 영국의 브록우드 병영(Brookwood Barracks)에서 매일같이 동일한 시간에 이프르 전몰용사 추모행사는 계속되었다.
 1944년 9월, 이 도시를 연합군이 해방시키자마자 그 날 저녁 당장 이 장엄한 추모의식은 라스트포스트 기념관 앞에서 재개된다. 이와 같은 전통으로 54,896 명의 무명용사 명단이 빼곡이 적혀있는 라스트포스트(Last Post) 기념관은 수많은 유럽 관광객들과 참전용사 후손들이 끊이지 않고 모여드는 벨기에 제일의 관광명소로 일찍이 자리잡았다(www.lastpost.be 참조).
 
만약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만 명의 UN군 전몰장병들을 위한 비슷한 형태의 추모행사를 매일 저녁 개최한다면 우리 국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무엇이 전쟁터의 병사들을  용감하게 만드는가?
 
인류의 전쟁사에 있어서 잔인하고 참혹하지 않았던 전장터는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다. 피와 살이 튀기고 금방 옆에서 농담을 주고받던 전우가 순식간에 처참한 시체로 변하는 것을 다반사로 보아야하는 전장터의 병사들이 받는 심리적 스트레스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수시로 적군과 총검을 맞대며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상대의 목숨을 빼앗아야만 하는 말단 병사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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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러 전선의 영국군

그러나 의외로 1차 대전시 서부전선에서 생활했던 영국군의 경우에는 무척이나 과묵하고 인내심이 강했다. 당시 중대장이었던 캠벨 대위는 이렇게 말했다.
 
 “중대원들은 명랑하다. 비가 오든, 추운 밤이든, 배가 고프고 지쳤든, 지금 당장 진흙과 물속에 잠겨있든 그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쾌활하다. 힘든 시기에 그들은 놀라운 자질과 능력을 보여준다. 진흙 속에서도 웃고, 물속에서도 마냥 농담을 주고받는다. 가끔씩 중대원들에게 ‘춥지 않나?’, ‘옷이 젖지 않았나?’라고 물으면 언제나 그들은 ‘춥지 않습니다’ ‘별로 안 젖었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대답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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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속의 병사들(개스전 대비 마스크 착용)
 
끈끈한 전우애, 신뢰받는 지휘관, 자기 부대 자부심이 병사들의 버팀목
 
이프르 전선에서 네 아이를 둔 영국군 병사가 독일군 저격병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그 순간 켐벨 대위 중대원들은 분노로 오열했고 그들은 복수의 기회를 노리며 개인 참호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전우에게 죽음을 안긴 독일군을 개인적인 적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적을 죽이겠다며 독일군 진지 습격작전에 중대원들은 앞 다투어 지원했다. 동료들에게 필요할 경우 자신의 마지막 담배, 마지막 먹을 것, 심지어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던지는 그것이 참호속의 전우애였던 것이다. 이렇게 잔혹하고 타락한 삶에서 유일하게 고결한 것은 오직 전우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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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서의 야전생활 환경
 
또한 지휘관이 소임을 감당할 능력만 있다면 휘하 부하들은 어디서고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많은 경우에 병사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부상당한 장교, 심지어 시신까지도 무인지대에서 회수해 왔다. 병사들과 똑같은 위험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장교들은 모두 이렇게 깊은 존경을 받았다. 결국 전·평시 군간부의 중요성이 이런 실전 상황에서 여실히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군대에서 연대의식, 곧 소속 부대에 대한 최고의 자부심과 충성심도 병사들의 전투의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군 장교회식 석상의 토론에서 훈련, 리더쉅, 무기성능 등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은 많았지만 “장병들의 연대에 대한 자부심이 유능한 전투 부대로 유지해주는 강력한 요소”라는 점은 모두가 동의했다. 특히 병사들의 경우 사단 범위를 벗어나 다른 부대에서 근무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부대의 전통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있었다.
 
▶쏟아지는 비속에서 자전거를 완벽하게 수리해준 이프르의 노인부부
 
교외 전적지를 돌아보고 시내로 들어올 즈음에 짓궂은 가랑비가 더 강하게 쏟아졌다. 급한 마음에 자전거 속도를 더 높였고 자동차들을 피하기 위하여 인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아뿔사!” 성급한 핸들조작으로 앞바퀴가 인도의 턱에 걸리며 자전거가 넘어지고 말았다. 길 가던 행인들이 몰려왔고 절뚝거리며 겨우 자전거를 일으켜 세웠다. 창피한 마음에 얼른 자전거를 끌고 가려는데 수많은 톱니 위에 체인이 뒤엉키어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떻게 조치할 방법이 없다. 최선의 방안은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어깨에 메고 호텔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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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러시에서의 자전거 여행
 
물끄러미 사고현장을 쳐다보던 어떤 노인부부가 자전거를 낚아채더니 거꾸로 뒤집어 놓고 기어에서 빠진 체인을 능숙한 솜씨로 정리한다. 할아버지의 손은 새까만 기름으로 뒤범벅이 되었고 할머니는 우산을 받쳐 들고 계신다. 체인이 벗겨진 경우 자전거를 뒤집어 놓고 수리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감사하다는 말과 손수건을 꺼내어 할아버지의 손을 닦아드리는 것 뿐 이었다. 자전거를 완벽하게 고친 그 부부는 빙긋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가셨다. 6.25전쟁 때 아무 조건없이 우리를 도와준 벨기에 군인들처럼 말없이 여행객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신 그 어르신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칼럼니스트 사진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등록일 : 2014-03-18 오전 9:04:00   |  수정일 : 2014-03-1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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