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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참호전의 처참한 실상!]참혹했던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 실상

1917년 이프르 전선의 영국군 참전용사 채프먼씨의 증언. “많은 병사들이 쓰려져 죽은 곳에 바로 매장 되었다. 새로운 참호를 파다보면 십중팔구 지표 바로 아래 묻힌 채 썩어가던 상당수의 시신이 발견되곤 했다.
이런 시신과 더불어 참호의 여기저기 버려진 상당량의 음식 찌꺼기를 쥐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쥐들은 엄청나게 컸으며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부상병의 상처를 뜯어먹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쥐의 번식력은 왕성하여 한 쌍의 부부 쥐가 1년에 880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특히 쥐들이 가장 좋아 하는 것은 시체의 눈과 간이었다.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파먹기 위해 쥐들이 뚫어놓은 참호 옹벽상의 작은 구멍들이 발견되는 것은 흔한 현상이었다.”

글 | 신종태 육군지상전연구소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3-04 오전 9:13:00

참혹했던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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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전사한 전적지를 방문한 영국인 후손

 
3대째 이어가는 62고지
개인 전쟁유물 전시관
 
이프르(Ypres) 근교에서 1차 대전의 흔적을 가장 실감나게 보여주는 곳이 62고지 전쟁유물 전시관이다. 주변 지형을 고려시 해발 62m의 고지는 전쟁 당시 전술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 듯 했다. 거미줄 같이 얽혀 있는 시골도로에서 지도에 의존하여 62고지를 찾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더구나 5-6개 정도의 도로가 갈라지는 교차로에서는 어느 방향이 맞는 지 헷갈리기도 했다. 결국 적십자 마크로 미루어 보아 병원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들어가 길을 물었다. 근무 직원이 친절하게 약도까지 그려가며 목적지에 대해 알려 주었다. 병원으로 생각했던 이곳은 시골의 노인 요양원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쾌적한 시설 속에서 여가를 활용하고 있었다. 벨기에 사회복지 시스템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했다.
 
100년전의 전쟁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다
 
마침내 "Hill 62"이라는 대형 간판이 멀리서 눈에 띄었다. 조그마한 목조건물은 펍(Pub)을 겸하고 있었고 인접해서 영국군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외부에는 전쟁 당시의 옛날 화포와 마차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몸집의 전시관 주인이 카운터에 버티고 앉아 있다. 얼핏 보아 몸무게가 140Kg 이상은 충분히 되어 보인다. 별로 크지도 않은 전시관은 시골 벌판에 있었으나 관람객들이 제법 많았다. 입장료가 17,000원 정도이다. 지나치게 비싼 느낌이 들어 주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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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이프러 전적지의 개인전쟁박물관
 
1차 대전이 끝난 직후 자신의 할아버지가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잔해를 발굴하여 이 시설을 만들었고 자신은 현재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곳을 운영한다고 했다. 각종 유적과 전시물 보존을 위해서는 다소 비싼 입장료를 받을 수밖에 없단다. 실내에는 연합군과 독일군 복장, 무기, 각종 생활용품들이 꽉 차 있다. 특히 오랫동안 땅 속에 파묻혀 있다가 발굴된 흔적이 역력한 빨갛게 녹슨 장구류들이 대부분이다. 하루 종일 카운터의 큰 의자에 앉아 돈 버는 즐거움에 푹 빠진 주인은 자신의 몸을 제대로 관리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았다. 속으로 ’저 많은 돈 벌어 언제 쓸 건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건물 외부 62고지에는 약 100여년의 세월이 흘렸음에도 양철판으로 옹벽을 보강한 긴 교통호와 물이 고인 탄흔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너무나 보존이 잘되어 있는 야외 유적지에 대한 의문점을 그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혹시 아무도 보지 않는 야간에 무너진 교통호와 포탄 웅덩이 보수작업을 은밀히 하지 않느냐?”라고. 결단코 그런 일은 없었으며 이 유적들이 1차 대전 당시의 야외 참호선 그대로의 원형이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진실 여부를 떠나 과거의 참혹한 전장현장을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전해주고자하는 대를 잇는 전시관 주인의 가풍이 존경스럽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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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 그대로 재현된 1차대전시의 교통호
 
고착된 전선, 지루한 참호전에서 병사들의 열악한 야전 생활
 
북해의 수면보다 다소 지세가 낮은 이곳 플랑드르 평원은 땅을 60-90cm만 파고 들어가도 예외 없이 물이 솟아 나온다. 전선의 참호생활은 물과 진흙에 맞서 벌리는 끝나지 않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영국군은 진흙과 끊임없이 무너져 내리는 참호에 맞서 투쟁을 벌렸다. 그러나 결국 참호의 나머지 부분은 모래주머니로 두껍게 벽을 쌓아 축조하였으며 잦은 비는 참호 속의 병사들을 더욱 괴롭혔다.
 
물에 홍건이 젖은 군화 속의 양말을 자주 갈아 신을 수 없는 병사들에게 필연적으로 찾아 온 질병은 바로 “참호족(Trench foot)"이였다. 증상은 동상과 아주 흡사했고, 처음에는 동상으로 오인되기도 했다. 발의 신경이 마비되면서 피부가 빨갛거나 파란색으로 변했다. 심한 경우에는 괴저가 생기기도 했다. 이럴 때에는 발가락이나 발 전체를 절단해야만 했다. 전쟁 중에 영국군은 74,711명이 참호족 혹은 동상으로 프랑스 병원에 수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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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속에서 전사한 처참한 병사의 모습

 처참한 전선의 참호생활을 기록한 참전용사 일기장
 
1917년 이프르 전선의 영국군 참전용사 채프먼씨의 증언록이다. “우리는 원시인으로 전락했다. 세수는 물론 면도도 못했다. 생리적 욕구는 가까이 있는 가장 깊은 포탄 구멍에서 되는대로 처리했다. 어쩌다가 금속제 양동이가 지급되기도 했다. 양동이가 가득 차면 야간에 참호 밖으로 기어나가 내용물을 버리곤 하였다. 배설물처리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임시 처리한 전사자들의 시신이었다. 많은 병사들이 쓰려져 죽은 곳에 바로 매장 되었다. 새로운 참호를 파다보면 십중팔구 지표 바로 아래 묻힌 채 썩어가던 상당수의 시신이 발견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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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했던 최전선의 환경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이런 시신과 더불어 참호의 여기저기 버려진 상당량의 음식 찌꺼기를 쥐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쥐들은 엄청나게 컸으며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부상병의 상처를 뜯어먹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쥐의 번식력은 왕성하여 한 쌍의 부부 쥐가 1년에 880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특히 쥐들이 가장 좋아 하는 것은 시체의 눈과 간이었다.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파먹기 위해 쥐들이 뚫어놓은 참호 옹벽상의 작은 구멍들이 발견되는 것은 흔한 현상이었다.”
60여년 전, 한국전쟁 당시 야전에서 적과 장기간 대치했던 많은 참전용사들의 증언도 위의 내용과 비슷하다. 만약 현재의 휴전선에서 이와 같은 유사 상황이 생긴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만 할 것인가?
 
내팽게쳐 있는 독일군 묘비
패전국 군인은 죽어서도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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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지에 방치된 독일군의 비석을 쳐다보는 관람객

야외 전시장 답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내팽게쳐져 있는 돌비석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여행객을 만났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독일군 병사들의 비석들이란다. 어떻게 이곳에 독일군 비석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인근 지역의 깨끗한 정원에서 정성스럽게 관리되고 있는 영국군 묘비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끼가 잔뜩 끼어있는 패전국 군인들의 묘비들은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힐 수도 있는 오솔길 옆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다. 전쟁에서 진 군인들은 죽어서도 서럽다. 결국 역사는 승자의 손으로 기록되고 만약 어쩔 수 없이 어떤 국가가 전쟁을 치루어야 한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전사한 군인들조차도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칼럼니스트 사진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등록일 : 2014-03-04 오전 9:13:00   |  수정일 : 2014-03-0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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