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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참혹한 독가스전의 현장, 벨기에 이프러 전장터!

벨기에는 유럽 강대국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위치한 국가. 강대국간의 국익이 충돌하면 항상 약소국인 벨기에가 가장 먼저 전장터로 변했다. 흡사 중국과 일본이 충돌하면 억울하게도 한반도가 전장터로 변한 것 처럼. 특히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가장 참혹한 전쟁피해를 입은 국가가 바로 중립국 벨기에였다. 따라서 유럽지역의 전사적지가 빼곡히 밀집된 곳이 바로 이 지역이다. 그 역사적 현장을 답사한 결과를 사진자료와 함께 차례로 수록해 본다.

글 | 신종태 육군지상전연구소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2-12 오전 9:30:00

참혹한 독가스전의 현장, 벨기에 이프러 전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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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독가스공격을 당한 벨기에군의 처참한 모습

 
수시로 전장터로 변한
유럽의 중심부 벨기에의 비애
 
  벨기에는 대부분의 국토가 평원이며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 네델란드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인구 1,000만 명, 국토는 3.3Km²에 불과하여 우리나라 경상남북도 정도의 크기를 가진 작은 국가이다. 주변 강대국에 둘러 싸여있는 벨기에는 역사적으로 항상 중립을 표명하여 왔지만 1, 2차 대전 간 전쟁의 참화에 가장 먼저 휩싸이는 비운을 가졌다. 유명한 나폴레옹의 월터루 전장터 외에도 숱한 유럽의 전사적지가 대부분 벨기에에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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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뤄셀의 군사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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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 전시물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독일 군대가 국경을 넘어 쏱아져 들어왔다. 독일은 벨기에가 중립국이니만큼 반격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불굴의 벨기에인들은 국왕 알베르(Albert) 1세의 지휘 아래 용맹하게 싸웠다. 왕 자신도 꿋꿋하게 최전선에서 장병들을 이끌었다. 그들은 충분한 시간을 벌어 영국군이 서부 해안에 상륙할 수 있도록 도왔다. 결국 수십만 명의 병사들이 이프러(Ypres) 주변의 플랑드르(Flanders) 평원에서 전사했다. 그 중 수만 명은 대규모로 진행된 처참한 독가스전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플랑드르 벌판은 피로 얼룩진 진흙탕이 되었고 역사가 깃든 도시 이프르는 폐허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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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국민들의 피난길(1차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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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러 시내의 1차세계대전 전몰자 추모비
 
▶ 이프러(Ypres)의 독가스전  인간의 잔인성을 그대로 드러내
 
 1914년 8월, 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독일의 서부전선은 쌍방 간의 치열한 진지 공방전이 전개되면서 기관총과 중포, 박격포, 철조망, 지뢰가 대량으로 투입되었다. 공격부대는 이러한 실상무기 앞에서 전진을 주저하게 되었고 막대한 인원 손실만 초래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독일군과 연합군 진지는 모두 강력한 요새지로 보강되었다. 
1915년 4월 18일, 독일군은 드디어 전선교착 타개를 위하여 최초로 영국군에게 염소가스 공격을 감행한다. 독일군의 가스통은 철제 강판으로 만들어 내부에는 고농도의 염소가스를 고압으로 충전하였다. 적진지 근처에서 풍향을 고려하여 밸브를 열면 염소가 기화하면서 독가스를 뿜어내도록 설계했다. 
 
  낙하산형 신호탄이 전선 상공에 터지면서 영국군 전방에 약 6Km 폭으로 독가스가 기습적으로 살포되었다. 갑자기 질식성 독가스가 몰아닥치자 영국군 진지는 형언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참호내의 병사들은 손수건을 얼굴에 갖다 댈 사이도 없이 가스는 계속 밀려왔다. 많은 영국군이 목과 가슴을 쥐어 뜯으며 순식간에 쓰러졌고 일부 병사들은 참호 밖으로 뛰쳐나가 무조건 달렸지만 불과 몇 걸음 가지 못해 맥없이 쓰러졌다. 독일군 공격부대는 총알 한방 쏘지 않고 영국군 진지 종심 4Km를 간단하게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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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러전선의 영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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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러 지역 주민들의 조잡한 방독면
 
대비하지 않았던 독가스전
가용한 응급책은 다 동원
 
염소가스의 냄새는 파인애플과 후추를 섞어놓은 것 같았고, 겨자가스(phosgene)는 썩은 생선 냄새와 같은 불쾌한 악취를 풍겼다. 하지만 모두 무서운 살상력을 발휘했다. 이와 같은 독가스에 오염된 일부 병사들은 12시간이 되기까지는 분명하게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도 하였으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피부가 썩기 시작했다. 온 몸에 물집이 생기면서 눈에 극단적인 통증이 왔고 욕지기와 구토가 시작되었다.
 
  더욱 나빴던 것은 독가스가 기관지의 점막을 벗겨냈다는 점이다. 그 고통은 거의 참을 수 없는 지경이었고, 결국 환자들을 침대에 묶어놓아야 했다. 프랑스군의 최초 대응책은 군의관들을 파리로 급파하여 징발할 수 있는 여성용 생리대를 전부 가져 오는 것 이었다. 즉 오줌을 적신 탈지면으로 병사들의 코와 입을 가리고 생리대로 얼굴을 싸도록 했다. 오줌의 암모니아가 염소를 중화시키는데 다소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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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에 방치된 전사자들의 시신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즉각적인 연합군의 보복 독가스전 
 
국제사회는 독일의 야만적인 독가스 사용에 대해 규탄했고 영․프랑스군은 즉각적으로 보복수단을 강구했다. 즉 프랑스는 후방의 모든 부녀자들을 동원하여 조잡한 급조 방호구를 만들어 단 이틀 만에 전군에 보급시켰다. 영국군 또한 1915년 9월 25일 독일군 진지에 대한 대규모 독가스 공격을 감행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라는 복수의 논리에 따라 1차 대전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무제한 국가 총력전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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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허로 변한 이프러 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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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시 등장한 관측용 비행선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독일군의 히틀러 상병이 이 전쟁에서 독가스에 중독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훗날 그는 독일의 독재자로 변신하여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패전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당시 독일은 상당량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독가스전의 참혹함을 직접 체험한 히틀러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용지시를 내리지 못했다. 물론 연합군의 강력한 응징보복을 히틀러는 두려워했다. 현재 100여년 전의 염소가스보다 흴씬 더 강한 독성을 가진 화학무기를 북한은 약 5,000톤이나 보유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1차 대전 이후에도 세계의 여러 전장에서 수차례 일어났던 이런 참혹한 화학전의 실상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이프르의 인 플랑드르 필드 박물관(In Flanders Fields Museum)내부에는 전쟁 발발배경부터 1918년 11월 종전까지의 과정과 영국군·벨기에군의 열악한 참호생활 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종전 후의 이프르시 전경은 흡사 깨진 어금니처럼 처참하게 파괴된 건물잔해들만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이프르 시내를 걷다보면 모든 건물들이 수백 년 전의 건축양식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더구나 골목길의 반질반질한 자연석 보드블록은 고전미를 더해준다. 전쟁 후 벨기에 정부와 시민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거의 완벽하게 대부분의 건물들을 전쟁전의 건물양식으로 재건축하여 이프르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칼럼니스트 사진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등록일 : 2014-02-12 오전 9:30:00   |  수정일 : 2014-02-2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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