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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태 교수의 세계 전사적지 답사기

나폴레옹과 프랑스의 영광, 패배, 부활!

글 | 신종태 육군지상전연구소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2014-02-05 오후 1:20:00

 
프랑스 전쟁역사가 담긴
나폴레옹 군사박물관
 
 파리의 중심 에펠탑에서 멀지않은 나폴레옹 군사박물관(앵발리드: Invalides). 이곳에는 프랑스 전쟁관련 각종 전시물과 나폴레옹 1세의 묘소가 있다. 이 박물관은 1670년 루이 14세가 퇴역 상이군인들의 간병을 위해 최초 건축되었다. 건물의 대부분은 현재 군사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으나 지금도 퇴역군인들을 위한 보훈병원으로 일부 시설이 운용되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무기 발달과정이 시대 순으로 전시되어 있다. 또한 나폴레옹의 유럽·아프리카 정복과정, 19세기 대외 식민지전쟁, 12차 세계대전, 현대전쟁 등에 관한 기록사진과 무기류들이 내부를 꽉 채우고 있다. 특히 이곳이 세계적인 명소가 된 이유는 한때 유럽의 황제로 불려졌던 나폴레옹이 안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인물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제외하고 문헌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인물이 나폴레옹이다. 유럽에서 군주제를 종식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고 일반 국민들의 사회적 권리를 혁신적으로 확장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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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중심부에 있는 나폴레옹 군사박물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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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박물관 현장에서 역사수업을 받는 프랑스 학생들

그러나 나폴레옹은 1815년 영국과의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남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폐된다. 그는 18215552세의 나이로 외롭게 그곳에서 숨을 거두게 되지만 영국 정부의 동의를 얻어 18405월에서야 겨우 이곳 앵발리드 돔성당에 안치될 수 있었다. 나폴레옹에 대해 후세 사람들은 다양한 역사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나폴레옹이야말로 자기들의 조국을 세계 강국으로 부상시킨 위대한 조상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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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광장에 전시된 나폴레옹 시대의 화포들

전쟁에서는 비록 패배했지만
처절한 대독항쟁은 계속되었다.
 
194051905:39, 마지노선 라 페르테(La ferte) 지역의 프랑스 제71보병사단 505 장갑벙커 지하 속에서 프랑스군 100 여명이 결사적으로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마침내 독일군 강습공병은 요새의 강철문을 폭파시키고 벙커내부에 강력한 폭탄과 연막탄을 집어넣었다. 곧 이어 일어난 폭발과 화재에 의한 불길은 지하 35m에 있는 탄약고에 옮겨 붙어 대폭발을 일으켰다. 벙커내부는 화염으로 휩싸였고 병사들은 방독면 속으로 들어오는 연기의 고통을 참으며 지휘관의 조치를 기다렸다.
 
  라 페르테 지역대장 부르귀농(Bourguignon) 중위는 갱도탈출을 다급하게 상급부대에 요청했다. 그러나 상급 지휘관은 끝까지 진지를 고수하라는 단호한 명령을 내렸고, 유독가스에 중독되어 죽어가면서도 그들은 독일군과의 혈투를 계속했다. 전투가 끝난 후 505 장갑벙커 내에서 107명의 프랑스군 장병시신을 독일군은 확인할 수 있었다. 부르귀농 중위 부대원들 중에서 진지고수 명령을 어기고 갱도 밖으로 탈출한 장병은 단 1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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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프랑스군 전통이 강인한 군대를 만들었다(18세기 프랑스군)

이처럼 전선지역에서 보여주었던 프랑스 장병들의 강인한 상무정신은 19406월 프랑스가 독일에게 굴욕적인 항복 이후 전 국민들에게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수많은 레지스탕스들이 국내외에서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연합군과 함께 대독 항쟁에 참여했다. 레지스탕스의 지하방송과 신문은 전쟁승리 이후 독일군 앞잡이들은 반듯이 응징될 것이라고 수시로 적치하의 프랑스 국민들에게 경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치체제 아래서 오히려 독일군을 적극 지원하고 레지스탕스 색출에 앞장 선 일부 프랑스인들도 있었다.
 
철저한 부역자 처벌로
국가 정체성을 재확립
 
마침내 19446,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성공과 8월 파리해방을 통해 대대적인 부역자 색출 돌풍이 불었다. 민족반역자 대숙청은 망명정부의 수반 드골장군 주도하에 종전 후에도 수년간 매우 가혹하게 집행되었다. 비씨정권의 페텡 원수를 포함한 당시의 각료, 정치인, 언론인, 기업가, 민병대원 등 나치협력 사건의 부역자에 대한 법원기소는 모두 124,751건에 달했다. 이중에 46,263 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6,763 (3,910 명은 궐석재판)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일부 보고서는 인민재판에서 즉결심판을 받아 처형된 사망자수가 11만 2,000여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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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과 부역자가 레지스탕스 처형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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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형에 처해지는 레지스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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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된 레지스탕스 대원 시신전시로 프랑스인들에게 공포심 조장

특히 나치치하에서 독일의 전쟁 물자를 적극 생산하여 납품한 프랑스의 대기업까지도 반역행위의 범주에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르노 자동차 회사는 전시 생산량을 25% 늘려 독일군을 도왔다는 혐의로 회사 전 재산을 프랑스 정부는 몰수했다. 회장 르노는 체포되어 교도소 수감 중 결국 스스로 자살하게 된다. 드골의 이같은 가혹한 부역자 숙청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지만 적 치하에서 국가에 해악을 끼친 프랑스 국민은 반듯이 응징을 받는다는 전통은 분명하게 수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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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개선하는 드골 장군

프랑스 주방위력은 핵무기
군은 PKO 및 테러방지 임무
 
파리의 도심지에서 여행객들이 관심을 가지면 쉽게 프랑스 주요 군사기관들을 볼 수 있다. 합동참모본부, 각군 본부, 지휘참모대학 등 군 핵심시설과 일부 군사교육기관들이 시내 중심부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전국토의 절반 가까이를 프랑스 헌병군이 치안 유지를 담당하고 있다. 도심지에 있는 군사시설을 일부 시민들이 무조건적으로 외곽 이전을 요구하는 한국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지휘참모대 앞에서 만난 프랑스 여군 소령 페이레(Peyre)는 남편도 직업군인이다. 과거 프랑스 국방개혁에 대해 질문하자 가장 어려운 점은 엄청나게 요구되는 개혁예산을 정부가 뒷받침해 주지 못한 것이다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또한 냉전 해체 이후 프랑스의 주적은 사라졌고 외부위협에 대한 주 억제전력은 핵무기이며 현재 군은 PKO와 테러방지 임무에 주안을 둔다고 했다. 180여만 명의 남북한 병력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와 안보환경이 판이하게 다른 프랑스의 국방개혁 모델을 한국군에 적용하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꼈다.
칼럼니스트 사진

신종태 전쟁과 평화연구소 교수


등록일 : 2014-02-05 오후 1:20:00   |  수정일 : 2014-02-2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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