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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김정연의 그린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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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저널리즘의 실종과 '객관성', ‘관찰자’ 입장 지키기 어려운 ‘시민기자제도’

양심과 이성을 가진 환경 저널리스트 부재의 시대

글 | 김정연 예인경영문화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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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권리가 중요한 세상이다. 정보 채널이 다양화되면서 그 기류를 타는 지식인들도 많아졌다. 그 중에서도 환경 문제는 전문가들의 경제적, 과학적 논리에서 벗어나 일상 생활의 민감한 화두가 되었다. 그 동안 환경은 경제 발전 논리의 희생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환경 보전이 산업화보다 더 앞서는 가치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담론 생산과 유통의 공정성이다. 환경운동가들은 단체의 성격에 따라 여러가지 주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환경 언론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저널리즘의 사명에 복무하며 엄격하게 관찰자의 입장을 유지하여야 한다. 다각화된 시선과 사실에 입각한 보도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날 환경 언론에서는 그 사실이 망각되고 있는 것 같다. '선수'인지 '관찰자'인지 구분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더 포스트’, ‘관찰자’ 정체성을 가진 언론인의 책임성 말하는 영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는 71년 ‘맥나마라 보고서’를 입수한 워싱턴포스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수익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던 워싱턴포스트는 진실 보도를 할 것이냐, 아니면 회사의 기업공개(IPO)를 위해 외부 세력과 타협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해야 했다. 만약 워싱턴포스트가 존슨, 케네디, 닉슨 행정부의 베트남 전에 대한 치부를 공개한다면 금융 투자자들로부터의 불이익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일상생활에서는 정권과 ‘친구 관계’였던 언론 기업인 캐서린 그레이엄은 자신이 ‘관찰자’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미의 ‘참여자’인지 현실적 갈등에 빠진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광고, 협찬, 투자의 실리적 유혹보다 ‘엄격한 관찰자’로서의 어려운 역할을 택한다. 그리고 전세계 지식인들은 워싱턴포스트 지의 ‘맥나마라 특종’을 통해서 전쟁의 참상과 반전운동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그만큼 책임있는 관찰자의 역할은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찰자’ 입장 지켜지기 어려운 ‘시민기자제도’
 
그러나 미디어 환경의 복잡성으로 인해 다양한 형태의 인터넷 언론이 생겨나면서 ‘관찰자 원칙’은 조금씩 깨져가고 있는 듯 하다. 전속 취재 인력을 확보하기 힘든 몇몇 매체들은 ‘시민기자’라는 미명 하에 시민운동가들의 기고문을 기사로 내보내기도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객관성과 관찰자 원칙이 깨진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환경 저널리즘’이라는 명분으로 각지의 환경운동가들이 지역기자 또는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그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전통 미디어들이 자체 취재보다는 시민 기자들의 ‘기고’에 가까운 기사를 좌표 삼아 따라가고 있는 형국이다. ‘관찰자’와 ‘고발자’의 역할이 중첩되면서 또 하나의 권력이 된 것이다. 단체의 이익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정보를 양산하고 공급하는 기능까지 가진 이 시스템에선 그들의 독주를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의 역량과 기술적 지식과는 별개로 오랫동안 단체의 정치사회적 입장을 견지해 왔던 인물들이 ‘기자’라는 미명으로 활동하는 변형된 그들의 역할이 우리사회에서 순기능과 본래의 목적을 잃을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환경 저널리즘’은 안전한가
 
필자는 그래서 ‘환경 저널리즘’은 과연 안전한지 검증하고 싶다. 모든 분야마다 저널리즘의 질서가 엄격하게 존재한다. 미디어는 외부로부터 광고와 협찬을 통해 자원을 조달하는 기업이지만, 공적 책임을 갖고 있는 사회 주체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대상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객관적 보도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미디어의 기본 의무이다.
 
그러나 유독 환경 분야만 환경 단체 종사자, 환경 기업 담당자, 그리고 ‘환경 저널리스트’가 혼재 되어 있는 양상을 보인다. 우리가 안전하게 건강하게 살 권리를 위해 환경 안전과 보존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는데, 환경 담론을 생산하는 책임자들의 변형된 기능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객관성은 철저한 ‘타자 되기’를 통해서만 가능한 법 아닐까라고 묻고 싶다.
등록일 : 2018-03-08 09:00   |  수정일 : 2018-03-1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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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김정연 예인경영문화원 대표

현 예인경영문화원 대표
이뉴스 투데이 비고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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