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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엄상익 변호사의 못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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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웨이터의 도통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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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미남스타가 칠십대 노인이 되어 작은 호텔의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꼼꼼한 손길로 화장지의 끝을 뾰족하게 접었다. 그는 호텔에 있는 웨이터가 되어 일을 하고 있었다.
 
음식접시와 와인글래스를 닦고 탁자를 정리하고 이따금씩 오는 손님들의 음식 서빙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손님들에게 너무 늙은 사람이 음식을 날라 와서 불쾌하지 않으시냐고 하면서 미안해했다. 영화의 거리인 충무로의 전철역 안 벽에는 한국의 백대영화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그중에 ‘아제 아제 바라아제’와 ‘길소뜸’에서 일급스타인 신성일, 김지미 그리고 강수연의 옆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미남배우가 있다. 그 배우의 이름이 한지일이다. 감독은 그에게 김지미의 가운데 ‘지’자와 신성일의 마지막‘일’자를 따서 한지일이라고 예명을 붙여주었다. 대중들에게 익숙한 그의 또 다른 이름은 한소룡이기도 했다. 늙으면 내남없이 외로워진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살던 그도 노인이 되어 고독하게 살고 있었다. 그는 새벽에 혼자 사는 집을 나와 하루 아홉 시간 동안 꼬박 서서 일을 했다. 밤늦게 돌아와서 혼자 밥을 먹는다. 전기밥통에 남은 말라빠진 밥을 물에 말아 김치와 햄 한 조각을 곁들여 먹었다.
 
그가 한 때 잘나가던 젊은 시절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배우를 하다가 영화제작을 했어요. 처음에는 예술성을 가진 좋은 영화를 만들었더니 손해가 난 거예요. 그래서 에로영화로 방향을 바꿨어요. ‘젖소부인’이란 이름으로 시리즈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게 대박을 친 겁니다. 제작비의 열배도 넘게 돈을 벌었어요. 그 돈으로 빌딩을 샀어요. 한 채 사고 거기서 받은 보증금에 융자를 얻어 또 다른 빌딩을 사고 그랬죠. 저는 여러채의 빌딩을 가진 영화제작자로 부자가 됐어요. 그러다가 IMF때 완전히 망한 겁니다. 영화사도 빼앗기고 갑자기 거지가 된 거죠. 어느 날 내가 하던 영화사를 갔더니 스텝진들이 시나리오를 들고 활기차게 일하는걸 보니까 눈이 돌더라구요. 그래서 확 불을 질렀다가 감옥까지 들어갔어요. 그때 이혼을 당하기도 했죠.”
 
성경 속의 욥처럼 불행은 그렇게 갑자기 몰려드는 수가 있었다. 그는 미국으로 도망가 닥치는 대로 일했다. 청소에서 시작해서 마트의 직원, 젓갈 장사등 스물일곱가지의 바닥 일들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나이 칠십을 넘어 귀국해 정착한 직업이 레스토랑의 늙은 웨이터였다. 그는 자신의 영락을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내 나이에 웨이터란 직업이 있는 게 어디예요? 돈이 많을 때의 백억보다 요즈음 받는 작은 월급이 얼마나 귀하고 좋은 돈인지 몰라요. 돈이 없을 때는 어디에도 나가 다니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요즈음은 일해서 번 돈으로 누구 밥이라도 사 줄 수 있으니까 예전 배우 할 때 선배나 동료들을 찾아갈 수 있어서 좋아요.”
 
그의 말 중에는 체험으로 얻은 진리의 말이 들어 있었다. 그는 슬프고 힘들 때 감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웨이터를 하는 그의 삶이 순간 보석같이 빛나고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던 것의 참 모습을 찾아낸 것 같았다. 얼핏 겉으로 보면 그는 화려한 스타에서 사회의 바닥으로 추락한 존재같이 보일 수 있다. 정말 그런 것일까. 변호사를 하면서 여러 스타배우나 가수들의 이면을 보았다. 무대의 막이 내리면 그들 역시 어쩔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보통사람이었다. 영화나 방송의 세트장도 가까이 보면 널빤지와 광목에 덧칠한 엉성한 쓰레기 더미였다.
 
화려한 대종상 포토라인에 서기 위해 빌린 옷을 들고 허겁지겁 뛰는 배우를 보기도 했다. 작품 속에서 썼던 지고지순한 탈 때문에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못하고 슬퍼도 울 수 없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보았다. 대중의 눈이라는 잣대에 맞추기 위해 능력에 넘치는 옷과 차를 사서 무리를 하기도 했다. 그는 그런 탈을 훌훌 벗어버리고 본연의 자기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대중의 입술위에서 춤추지 않고 웨이터를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인생의 환란이 그를 득도한 경지로 올려놓은 것 같다. 텔레비전의 인생프로를 보면서 성공은 무엇이고 실패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 누구나 타고난 자기의 그릇과 분량에 맞추어 자신답게 살아가는 게 성공이 아닐까. 연극 무대 위에서든 세상무대에서든 하늘이 자기에게 맡겨진 배역을 따라 막이 내려질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삶 말이다. 저세상에 가서 되돌아 볼 때 대통령이든 청소부든 부자든 가난하든 세상의 배역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등록일 : 2019-02-08 10:20   |  수정일 : 2019-02-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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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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