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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엄상익 변호사의 못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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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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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봄이 있었다. 대학에 입학하고 신입생이 됐었다. 라일락 향기가 그윽한 교정에서 그리고 춘천 호반가의 삼악산으로 MT를 가서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들을 보며 꿈을 꾸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꽃뿐이고 열매가 없었다. 남들은 다 레일위에 올라 부드럽게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나만 들판에 홀로 긴 그림자를 끌며 남은 것 같았다. 우수와 번민이 따랐다. 봄은 실로 기쁘고도 슬픈 시기였다.
 
인생의 여름이 있었다. 정의를 이루어 보겠다고 치고 맞고 미워하고 저주했다. 나는 바른 일을 한다고 자부했는데도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세상의 무정에 분개했다. 일이 되지 않아서 화를 냈다. 살인범 누명을 쓰고 20년 동안 감옥에서 복역한 한 남자가 이렇게 소리쳤다.
 
“나 같이 억울한 놈을 그대로 내려다보고 빙긋이 웃는 하나님은 정말 사람도 아니야.”
 
하나님이 사람이 아닌 건 맞았다. 그렇지만 왜 불공평을 방치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하나님이 있는 건지조차 의심했었다. 뜨거운 눈물이 솟았다. 여름은 실로 괴롭고 어려운 시기였다.
 
인생의 가을은 왔다. 열매는 모르는 새에 무르익고 계획과는 상관없이 일은 이루어진 걸 알았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 싶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겸손을 알라고 점점 더 낮게 만드셨다. 허리를 굽히니까 이마를 부딪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싸움에서 지니까 마음속의 평화가 다가왔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싶었다. 하나님은 필요한 것이 없는 사람이 부자라고 가르쳐 주셨다. 쓴 만큼이 자기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은행에 거액을 예금한 부자라도 찾아 쓰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 있다고 하셨다. 탑골 공원 뒤에서 고급 아파트를 두 채 가진 치매에 걸린 노숙자 노인을 보기도 했다. 인생의 가을에 뒤돌아보면서 침묵하고 감사하고 기도한다. 쓸쓸함에 감사가 동반되고 고독에 축복이 넘친다. 인생의 가을은 실로 고요하고 즐거운 시기다.
 
스산한 느낌이 드는 인생의 초겨울로 접어들었다. 몸을 화려하게 치장해 주었던 무성하던 잎들이 다 떨어지고 빈 가지만 겨울하늘을 향해 갈퀴 같은 모습으로 뻗어있는 겨울나무가 된 것 같다. 꽃피고 새들이 울던 세월이 다 허망한 거라고 하는 소리가 아득한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장관을 하고 대법관을 하고 회장을 하고 사장을 했던 친구들이 모두 눈이 내리는 숲속에 겨울나무가 되어 조용히 서 있다.
 
적막한 오후 노인이 된 나는 혼자서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문학으로 변해있는 죽은 시인이나 소설가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조병화 시인은 인생의 겨울밤을 맞아 그가 태어난 호숫가의 집에서 하나님에게 언제 데려가실지 예정을 열심히 묻고 있었다. 생활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언제쯤 삶을 끝내느냐고 하나님과 따지고 있기도 했다. 소설가 정을병씨는 칠십대 중반에야 비로서 글이라는 걸 알았는데 왜 암이라는 초청장을 갑자기 보냈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인생의 겨울은 절망의 시기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또 다시 돌아올 봄을 기다리며 과거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늘에 쳐 있는 베일 저쪽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희망한다.
등록일 : 2019-01-07 09:44   |  수정일 : 2019-01-0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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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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