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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의 못다한 이야기

50년 고시낭인

글 | 엄상익 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 2018-12-27 08:59

▲ / photo by tv조선 캡쳐본
지하철 교대역 부근을 배회하는 특이한 모습의 남자를 본 일이 있다. 두꺼운 렌즈에 얼굴의 반쯤 뒤덮는 둥그런 안경을 쓴 창백한 얼굴이었다. 남루한 옷에 잡동사니가 들어있는 듯한 카트를 끄는 모습을 보면 노숙자 같지만 지적인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나는 그가 혹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작가가 아닐까 짐작하곤 했다. 얼마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내고 변호사를 하는 선배가 함께 차를 같이 마시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서울법대동기로 같이 고시공부를 하던 친구가 있어. 평생 고시낭인이 됐는데 노숙자가 되어 한 달에 한 번씩 서초동에 있는 동창들의 변호사사무실을 돌면서 수금을 해 가는 거야. 처음엔 동정으로 방에 들이고 차도 내줬는데 녀석이 도대체 씻지를 않는지 떨어져 앉아도 냄새가 너무 심한거야. 그래서 지금은 모두 만나기를 꺼리고 비서를 통해 한 번에 몇 만원씩을 전해 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부서졌는지 몰라”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두꺼운 렌즈의 큰 안경을 쓴 남자를 떠올렸다. 선배가 덧붙였다.
 
“그 친구가 ‘고시낭인 50년’이란 제목으로 텔레비전에도 나왔다고 그래.”
 
그 얼마 후 텔레비전을 보다가 화면에서 바로 그 남자가 나오는 걸 발견했다. 경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66년경 서울법대에 합격했다. 고향에서는 플래카드를 걸고 그의 합격을 축하했다. 그는 고시라는 황금사다리를 타고 판사가 될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고시에 계속 낙방했다. 신림동의 고시촌을 벗어나지 못하고 50년의 세월을 보냈다. 나이 72세의 그는 지금도 신림동 고시원 쪽방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지금도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영어책을 보고 있었다. 하버드 대학 경제교과서였다. 그의 책상 옆 벽에는 그가 모신 부모의 영정이 그를 측은한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낮이 되면 그는 지하철 안에서 칫솔을 파는 행상이었다. 시간이 나면 가판대에서 영자신문을 사서 읽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그는 피디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영어만 잘하면 고시 1차는 힘들지 않아. 2차를 합격해야 판사가 되는 데 만 명 중의 하나 꼴로 되는데 그게 어디 쉬워? 같이 공부하던 대석이는 합격해서 검사를 하고 지금은 변호사를 해. 나도 나중에 대통령이 돼서 세계평화를 이루려고 했어.”
 
그의 학력, 꿈과 현재 그가 사는 악취가 나는 초라한 방과 그를 두르고 있는 가난은 너무 간격이 컸다. 그를 보면서 외면보다 뿌리깊이 스며든 그의 정신적인 피폐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도 같은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나역시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시켜 깊은 산속의 암자 뒷방이나 눈 덮인 얼어붙은 강가의 방가로에서 지냈었다. 다리를 건너는 밤기차의 촉촉한 기적소리를 들으며 그걸 낭만이라고 포장하고 현실에서는 낙오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세상은 격류같이 흘러가는데 고시생들의 영혼만 썩어가는 연못물 같이 고정되어 있었다. 삼십대 중반을 넘긴 주름이 생기는 여성고시생의 머릿속은 아직도 열여덟살 꿈 많은 소녀였다. 뒤늦게야 나는 무능한 자신을 알아차렸다. 물고기가 수 만개의 알을 낳아도 성장하는 건 소수다. 도토리나무가 몇 섬의 도토리를 내도 나무가 되는 것은 몇 개에 불과했다. 나는 허영에 들떠 무모한 길로 들어선 것 같았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에 다시 진입하기도 불가능한 것 같았다.
 
어느 새 나는 정신의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절벽 아래에는 영혼이 죽어버린 채 시체같이 몸만 걸어 다니는 좀비 같은 수많은 고시낭인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공포가 엄습했다. 나는 열등감으로 뒤틀어진 정신병자가 될 게 틀림없었다. 가족이나 주위사람을 괴롭히는 괴물이 될 게 틀림없었다. 어느 날 밤 두 시경 열려진 창문 밖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며 저절로 두 손을 모았다. 처음으로 찾는 하나님에게 간절히 부탁하기 시작했다. 합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영혼이 병들지 않기 위해 염치없지만 부탁 좀 드리자고 했다.
 
딱 한번만 합격시켜 주시면 절대 판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가난해도 노동과 기도로 채워진 단순 소박한 생활을 하면서 평생 감사하면서 지내겠다고 맹세했다. 어설프지만 간절한 나의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합격을 하고 벼랑 끝에서 영혼이 구조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주님의 섭리에 이끌리는 인생이 됐다. 세상에 공짜가 없었다. 그 때부터 고통의 십자가를 지기도 하고 험한 광야를 돌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내면의 어떤 존재는 알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한 방울의 물방울 같은 내가 40년을 그분이 이끄는 길을 따라왔다. 지금은 넓은 바다 앞에서 강물인지 바다인지를 돌고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칠십대 고시낭인을 보면서 그는 지금이라도 십자가에 매달린 우도 같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영혼에 지금이라도 성령이 들어가면 그는 성자가 되어 정신의 파라다이스에 있게 될 것이다. 깨끗하게 청소가 된 작은 쪽방에서 참회하는 상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낮이면 나가 장사를 한다. 가난을 받아들이며 이웃을 사랑한다. 그렇게 노숙자는 성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성공과 실패는 영혼의 문제라는 생각이다.
칼럼니스트 사진

엄상익 변호사


등록일 : 2018-12-27 08:59   |  수정일 : 2018-12-2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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