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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윤희영의 어른동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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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 유시진 대위(송중기)보다 멋진 윤장호 하사를 아시나요?

글 | 윤희영 조선Pub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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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태양의 후예’ 인기가 많은데, 고(故) 윤장호 하사에 대해 기사화해 달라. 베트남전 이후 해외파병 중 공격으로 인해 사망한 첫 군인이다.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엊그제 조선일보 독자센터에는 이런 독자 요청이 들어왔다. 실제로 이 독자 지적처럼 드라마 ‘태양의 후예’ 시청률은 40%에 육박하는 등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며 인기를 더해가고 있지만, 드라마 주인공 유시진 대위처럼 극적인 군 생활을 했고, 유 대위 역할 배우 송중기 못지 않게 잘 생겼던 윤장호 하사에 대해선 다들 잊어가고 있는 듯 하다.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됐던 윤 하사는 2007년 2월27일 바그람 공군기지 정문 근처에서 일어난 자살폭탄 테러로 숨졌다. 청춘을 한창 불사를 나이인 27세였다. 베트남전 이후 해외 파병된 한국군 중 첫 희생자였다. 미국에서 유학해 영어가 능숙했던 윤 하사는 현지인 기능공들을 인솔하던 중 탈레반의 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윤 하사와 함께 20여명이 사망했다.
 
1980년 9월 21일 태어난 윤 하사는 서울 내발산동 발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을 마친 뒤 1994년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뉴욕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윤 병장은 고등학교 때 우수한 학업성적과 적극적인 교내 활동으로 클린턴 대통령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났다. 인디애나대 국제경영학과에 이어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던 그는 집안 형편을 걱정해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마련해 부모 부담을 덜어드렸던 효자였다.

어릴 때부터 신앙심이 깊었던 윤 하사는 매주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 활동을 하는 등 교회 봉사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유학 중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에 삭발을 하고 한달 동안 새벽 기도를 다니기도 했다.
 
2004년 켄터키주 남(南)침례 신학 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같은해 12월 군복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 건너간 뒤 학업 때문에 한 번도 귀국하지 않다가 군 입대를 위해 11년 만에 한국에 들어왔다. 병역 의무를 회피할 방법이 없지 않았지만, 편한 삶을 마다하고 특전사에 자원 입대, 2005년 6월 서울 송파구 특전사 본부에 통역요원으로 배치됐다.

윤 하사가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자원한 것은 제대를 9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중동지역은 테러 때문에 위험하다고 주변에서 극구 말렸지만 “이왕 군대 생활 하는데 영어를 잘 하는 내가 통역으로 나라를 돕고 싶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다산•동의부대 소속으로 근무하면서 받은 월급은 꼬박꼬박 집으로 보냈고, 부모는 그의 장래를 위해 고스란히 저축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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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귀국을 한 달여 앞두고 ‘전사(戰死)’하고 만 것이다. 제대를 불과 3개월쯤 남겨두고 있었다. “귀국하면 한국에서 취업해 부모를 평생 모시겠다”고 했었다. “제대하면 10년 넘게 제대로 못 본 아빠 엄마 얼굴 계속 볼 테니까 기다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어.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 먹고 싶어”라고 했던 아들이었다.
 
부대 후임병들은 "크리스마스 이브 때 종이로 접어 만든 양말을 전우들의 관물대에 일일이 붙이고 초코파이 1개씩을 넣어줬던 기억이 난다"며 "어렵고 힘들 때 먼저 다가와 등을 두드려주던 마음 따뜻한 선임병이었다"고 그를 회고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 대위에게 여의사 강모연이 묻는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요. 나에요, 조국이에요?” 그러자 유 대위는 “일단 강모연이요”라고 대답한다. “두 번 물으면요?”라고 하자 “그래도 강모연이요”라고 한다. 강모연은 다시 묻는다. 세 번째다. “그럼 조국은요?”

유 대위에게서 돌아온 세번 째 대답은 이랬다. “조국은 질투하지 않으니까.”
윤 하사 곁에는 그런 여자친구도 없었다.

지난달 26일 육군특수전사령부 국제평화지원단 윤장호 하사 추모비 앞에서는 유가족과 모하마드 살림 사옙 주한 아프가니스탄 대사, 부대 장병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9주기 추도식이 거행됐다. 그의 시신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등록일 : 2016-04-01 13:32   |  수정일 : 2016-04-0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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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영 조선Pub 부장대우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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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 2016-04-04 )  답글보이기 찬성 : 14 반대 : 17
6.25 전사자 보상비 짜장면 한그릇값 !
국방부 : 보훈처 서로 물풍선 떠 넘기기 바빠 ...
애국자가 비참한 대한민국의 현 실태 !
zzag  ( 2016-04-01 )  답글보이기 찬성 : 66 반대 : 8
하나만 물을게요. 그때 언론은 어땠나요? 멀고먼 타국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 헌신한 군인으로 그를 기렸나요? 쉬쉬하고 단신기사로 묻었나요? 죽은자는 말이 없으니까? 그러나 산자들이 시끄러울땐 가지말란 나라 가서 죽은 고 김선일씨처럼 실내체육관 장례에 경찰의장대에 수많은 화환까지.. 영웅처럼 대우해주더군요.
강경구  ( 2016-04-01 )  답글보이기 찬성 : 103 반대 : 5
잊고 있었내요.
세계 평화를 위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나갔던 분들의 고귀한 희생을....그리고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자신의 고귀한 피를 그 땅에 묻은 고 윤장호 하사를 추모합니다.
박은실  ( 2016-04-01 )  답글보이기 찬성 : 109 반대 : 0
아아 잊고 있었습니다 윤장호 하사!
참 아름다운 생을 살다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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