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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변학수의 이야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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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소프라노 조수미의 노래에 아쉬운 점은?

그녀는 오페라에서도 출중한 능력을 지금도 과시하고 있는가?

조수미는 노래를 잘 한다. 그러나 과연 우리에게 알려진 대로 그녀는 오페라에서도 출중한 능력을 과시했고, 현재도 과시하고 있는가?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찬사를 들은 그녀의 신화에 필자는 내키지 않는 도전을 해본다.

글 | 변학수 문학평론가,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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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는 오페라 축제가 열리고 있다. <아이다> 공연이 지난주에 있었고, 이번 주에는 바그너의 <로엔그린>이, 다음 주에는 <리골레토>가 예정되어 있고, 그 다음 주에는 비제의 <진주 조개잡이>가 예정되어 있다. 특히 이번 주에 공연되는 <로엔그린>은 중세의 서사시인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작품을 토대로 바그너가 개작하여 새로 대본을 만들고 작곡한 작품이다. 남구(이탈리아)의 오페라가 제공하는 사랑의 감정과는 사뭇 다른, 그야말로 ‘숭고함 the sublime’의 미학이 느껴지는 오페라다. 신비하고 환상적인, 바그너 스타일과 프로이센 군국주의 스타일을 볼 수 있는 음악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3막의 시작과 더불어 연주되는 아리아 ‘혼례의 합창’은 우리에게 ‘결혼 행진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우리는 오페라에서 오페라 아리아를 중심으로 감상을 한다, 파바로티가 부르는 <사랑의 묘약>의 그 유명한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그것이 남자가 부르기에 더욱 애절하다. 인간이 숨기고 있는 기쁨의 눈물을 어찌 이보다 더 잘 표현하겠는가? 영화 <파리넬리>로 알려진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의 <울게 하소서>는 또 어떤가! 애절함을 넘어 카스트라토(거세된 남자)의 고통을 피부에 스며들게 한다. 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주인공들 비올레타와 알프레도가 부르는 이중창 ‘축배의 노래’는 그야말로 환희와 쾌감의 절정을 보여준다. 또한 벨칸토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아리아이다. 그러니 가히 <열린음악회>나 축하행사의 단골메뉴가 될 만한 곡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 이런 아리아들은 ‘잘 부르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오페라를 볼 때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리아와 오페라의 스토리이다. 그러나 거기에만 집중해서는 오페라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페라는 문학적인 이야기나 드라마와는 다르고, 음악이 중심이 되어 있으나 그것 또한 리릭 가수(성악가)가 부르는 성악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서정적 분위기가 중요할 때, 오페라 연출자가 가끔씩 리릭 테너나 리릭 소프라노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오페라에서 노래를 한다는 것은 (극적인) 상황에 맞는 행동(액션)과 감정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리트나 칸초네 가수나 그 창법으로 모두 감당할 수 없다.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만토바 공작(테너)이 부르는 아리아 ‘여자의 마음’은 경박함이 묻어나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귀족적이다. 하지만 베르디의 제자이자 최후의 벨칸토 작곡가라 불리는 푸치니는 오페라 <라보엠>(1896)에서 로돌포의 노래를 서민의 목소리로 재현하고 있다. 이유는 예술과 가난한 삶 속에서 온갖 고통을 경험하며 성장하는 젊은이의 목소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는 같은 작품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위에서 말한 <리골레토>의 10대 처녀 질다의 노래는 세상과 단절되어 새장에 갇혀 사는 동안은 순수하고 단조롭고, 아름답지만 공작과의 사랑을 경험하고 난 뒤, 아버지인 리골레토와 함께 부르는 2중창은 소녀가 아니라 한 여인으로 하룻밤 사이 성숙한 모습을 음악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따라서 질다 역의 소프라노는 아리아 ‘사랑스런 그 이름 Caro nome’을 벨칸토로 부를 수 있어야 하고, 순수하고 격정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복수의 이중창 Si, vendetta’을 부를 때는 좀 더 복잡한 감정을 제대로 소화하고 불러야 한다.
필자는 이 지점에서 조수미의 노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가수 중 그야말로 신화라고까지 할 수 있는 조수미를 언급하는 것은 정명훈의 신화에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금기이나 ‘원하는 것은 허용되어 있다’는 서양의 속담에 근거하여 질문을 해본다. 과연 조수미는 과연 노래를 잘하는가? 우리는 조수미가 노래를 잘 한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특히 오페라에서 노래를 잘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우선 조수미가 카라얀이 말한 대로 “신이 내린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어디에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주빈 메타 또한 조수미를 두고 “100년에 한두 사람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다”라는 극찬을 했다 하는 데 그것도 동의할 수 있다. 조수미의 목소리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이 C’까지 올라가는 콜로라투라의 음색은 가히 보통 성악가가 흉내낼 수 없는 소리의 절정이라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끔씩, 또는 자주 무대에 올라와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아리아를 부를 때 감동하지 않는 청중이나 관객, 비평가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목소리가 좋은 조수미는 노래를 잘 하는가? 그렇지만은 않는 것 같다. 우선 유튜브에서 조수미가 부른 ‘밤의 여왕’ 아리아를 들어보자.
 
 
 
목소리가 아름답고 맑고 듣는 이의 귀에 거칠 것이 없다. 이 영상에 관한 리플들을 보면 그야말로 찬사 일색이다. 그러나 노래를, 또는 오페라를 잘 아는 네티즌들이 이렇게 써놓은 곳도 있다. “엄청 옛날 영상 같은데 놀랍다... 진짜 잘 부른다 곡이 아름답게 들린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인 듯”(sg c). 또 다른 리플은 이렇다. “밤의 여왕은 뭔가 어둡고 묵직한 이미지인데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우셔.. 가사를 모르니까 영상으로 안보면 그냥 아름다운 노래 같음 ㅋㅋ”(양현모). 그렇다 이 두 리플은 노래를 제대로 아는 분들이다. 서양음악이 한국에 들어온 이후로 어떤 사람이든 우리의 서양음악가(성악가)들을 비판(비평)하는 것은 금기시 되어있다. 그 대신 그들에게 세계적이다, 또는 세계적인 지휘자, 작곡가, 비평가에게 이러이러한 찬사를 많이 따라 다닌다. 어떤 콩쿠르에서 1등 했다, 무슨 작품에서 얼마나 많이 했다는 말만 있어왔다.
 
그러니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조수미에 대해 비평하는 글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필자 또한 조수미가 과연 노래를 잘 하는가,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해 어떤 글도 접해보지 못했다. 다만 유럽에서는 조수미의 노래가 그렇게 늘 칭찬만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앞에서 말한 ‘밤의 여왕’ 아리아부터 살펴보자. 네티즌의 리플에도 암시되었다시피 조수미의 목소리는 좋지만 그녀는 오페라의 배역인 ‘밤의 여왕’을 잘 이해하지도 못했고, 더구나 잘 수용하지도 못했다. 이 아리아와 관련되어 항상 비교되는 가수(성악가)가 있으니 그 사람은 디아나 담라우(Diana Damrau)다. 그녀가 어떻게 부르는지를 들어보자.
 
 
지난 달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 <마술피리>에 대한 이론 강의를 할 때, 우리는 조나단 밀러 연출하고 프란츠 벨저 뫼스트가 지휘한 작품을 보았는데 거기서 루마니아 출신 스위스인 엘레나 모수크가 밤의 여왕 역을 맡았다. 이 오페라를 감상하면서 모수크의 아리아가 어땠느냐고 참가자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처음에 조수미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꾀꼬리 같은 좋은 소리 때문에 내용이 아름다운 노래(아리아)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수크의 아리아는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긴장감에 넋을 잃게 되었다는 반응이다. 밤의 여왕은 시녀들을 통하여 타미노에게 마술피리를 건네주고 딸을 데려오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자라스트로스에게 간 딸 파미나도 타미노 왕자도 함흥차사다. 화가 난 밤의 여왕은 직접 자라스트로스의 성을 찾아 딸에게 경고하고 명령한다. 이 칼로 자라스트로스를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모녀간의 의를 끊겠다. 섬뜩한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 때 밤의 여왕의 마음을 노래하는 것이 소프라노 가수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그런데 우리의 국보급 가수인 조수미는 엉뚱하게도 예쁘고 밝은 콜로라투라를 우리에게 선물하고 있다. 그러니 관객은(청중은) 그녀의 목소리가 아름답구나, 그녀는 노래를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만 받는다. 조수미의 목소리는 밤의 여왕에게 감정이입하여 분노하고 불안해하고, 나아가 아쉬워하고, 그러면서도 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복합감정의 상태를 표현하지 못한다. 목소리는 벨칸토로서, 문학적으로 말하자면 전형적인 수사학적 톤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것을 서술하거나 묘사하지, 관객을 몰입하게 하지는 못한다. 음악예술은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호소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호흡이 끊어지고, 피치와 파워, 그리고 템포가 적절히 어우러진 음악이 연주되어야 한다. 음악가 아르놀트 쇤베르크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지 이미지가 지시하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우리가 조수미의 목소리를 듣지만 목소리가 좋네, 안 좋네를 듣기보다는 그 목소리를 통하여 극적인 상황과 극적 인물의 내면에 강제로 몰입되기를 원한다.
 
담라우의 노래를 잘 들어보자.(필자는 모수크의 노래가 더 좋다) 밤의 여왕은 지금 자기를 떠나 원수인 자라스트로스에 합류한 딸을 죽도를 증오한다. 그러므로 이때 보이는 웃음, “아아아하하하하하”는 <디 플레더마우스>에서 ‘주인’(마르키 백작으로 가장)을 조롱하는 아델레의 웃음과는 다르다. 밤의 여왕의 웃음에는 분노와 경고, 그럼에도 딸이 자기를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속마음(다시 말해 사랑하는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그렇기에 모차르트의 음악은 베르디나 푸치니 식으로, 또는 롯시니 음악의 벨칸토로 불러서는 안 된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숭고함의 미학’이 묻어나게 불러야 한다. 아이가 잘못했다고 때리는 엄마를 생각해보자. 아이가 잘못한 점을 알고 용서를 빌도록 분노하는 마음만 있지 않다. 엄마는 또한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도 함께 갖고 있다. 그러니 이 감정은 어쩌면 뒤러가 그린 <어머니의 초상>(1514)에 나타나는 표정일 것 같다.(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번역본 17쪽 참조)
 
조수미가 노래를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그가 대학시절까지 국내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 듣는 <그리운 금강산> 같은 가곡은 ‘표현’ 일색의 이탈리아 식 국적 불명의 가곡이다. 가수(성악가)들은 이 노래를 부를 때 음정 박자 무시하고 자신들의 (정해진) 단순한 감정에만 충실한다. 단순한 감정이란 기쁨과 슬픔을 말하는데 이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인정되는 감정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공부하는 연주자들은 분노나 충격, 공포, 고통, 불안, 경이와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투르다. 더구나 서양어가 가지는 액센트(말의 피치)나 전동(Schwingungen) 같은 표현으로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진 어두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소홀히 한다. 언어는 표현한 것만이 아니라 생략된 것, 음조(어조), 감정, 표현, 몸짓 등과 함께 작동하는 것인데 우리 문화는 이런 표현을 오히려 억제하도록 강요한다.
 
조수미는 비단 <밤의 여왕> 아리아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리골레토>의 질다가 아버지(바리톤 레오 누치)와 갈등하면서 부르는 이중창을 보자.
 
 
복합감정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고 수준 낮은 연기와 벨칸토의 동어반복적인 노래만 반복될 뿐이다. 이런 느낌은 그녀가 부르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같은 데서는 최악을 보여준다. 벨칸토가 아니라(그건 롯시니의 음악이다!) 두성(Kopfton)으로 신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해야 노래의 의미가 살아난다. 그러나 조수미가 부르는 음색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벨칸토적인, 너무나 벨칸토적인’ 톤일 뿐이다. 

최상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 아닐까? 인터넷에 보면 그녀가 젊었을 때 카라얀과 만나는 장면을 일본어 자막을 달아 올린 동영상이 하나 있다. 거기서도 목소리가 좋다 했지, 노래를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좋게만 보는 관객이 조수미를 이렇게 만들었다. 그저 최고라고 박수만 치는 한국의 관객이 그녀를 만들었다. 그리고 또한 제대로 된 음악 비평가의 부재와 음악교육의 문제도 따른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감정표현을 배울 수 없게 하는 한국의 문화를 주범으로 꼽을 수 있다.
등록일 : 2015-10-15 08:26   |  수정일 : 2015-10-1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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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학수 문학평론가, 경북대 독어교육학과 교수

경북 문경 출생.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슈투트가르트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으로 석사학위(M.A.)를 받았다.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의 장학생으로 공부했으며, 같은 대학교에서 1993년 문학박사(Dr.phil.)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문학평론가로서 활동했고, 계간지 <시와반시>기획위원이며, <다층> 편집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며, 문학치료에 관심을 두어 2004년 경북대학교에 학과 간 협동과정으로 문학치료학과를 창설하였고, 독일 프리츠 펄스 연구소에서 문학치료사 훈련가 자격을 얻었다.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과 한국통합문학치료학회 회장, 한국아데나워학술교류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세이집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 『을의 언어』(박문사, 2014), 평론집 『잘못보기』(유로서적, 2003), 『토르소』(글누림출판사, 2014)가 있으며, 『문학적 기억의 탄생』(열린책들, 2008), 『내면의 수사학』(경북대학교 출판부 2008), 『프로이트 프리즘』(책세상, 2004), 『문학치료』(학지사, 2007), 『통합적 문학치료』(학지사, 2006), 『문화로 읽는 영화의 즐거움』 (경북대출판부 2004), Hermeneutische und ästhetische Erfahrung des Fremden(독일어 iudicium, 1994) 외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니체의 문체』(책세상, 2013), 『신들의 모국어』(경북대출판부, 2014)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글항아리, 2008) 『시와 인식』(문학과지성사, 1993), 『기억의 공간』(그린비, 2005), 『보리스를 위한 파티』(성균관대출판부), 『독일문학은 없다』(열린책들), 『릴케-헌시·시작노트』(책세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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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berly  ( 2019-03-07 )  답글보이기 찬성 : 1 반대 : 0
음악에 무지하고 말장난하는 평론가시네요
담라우를 비롯 다른 소프라노는 음악적 실력만으론 감히 조수미를 따르지못합니다
음악의 기본중의 기본인 피치 템포 비트 호흡 ..등등..에서 현저히 조수미가 한 수 위인데 다른 소프라노보다 뭐가 부족하단건지요? 다른 소프라도들 고음에서 힘들어서 속도 느려지고 음정 떨어지고 호흡 가쁜거 안 들리시나봐요 오페라도 음악의 한 장르일뿐 외국의 소프라노보다 조수미의 연기면에서만 볼때 좀 부족하다해서 오페라 아리아의 실력이 못 한건가요?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음악적 모든 기량이 월등하면 돼는거지 근거앖는 논리로 조수미가 이런 평가를 받아야하나요?..(참고로 저 애국자라 무조껀 조수미편드는 것 아님) 진정 예술가라면 감정표현조차 틀에 밖힌 표현보다는 나름의 해석과 창의적 표현이 더 존중받아야하는거 아닌가요?
이 오페라 배역은 이래서 이렇케 감정 표현해야된다.. 이거 누구나 다 아는 얘기거든요 설마 조수미가 그걸 몰랐을까요 ?? no no..
때때로 강한 무기보다 부드러운 붓이 마음을 움직이고.. 센 바람보다 따사로운 했빛이 외투를 벗긴다잔아요 !
전 평론가는 어니지만 세계 정상의 지휘자들이 왜 조수미를 극찬을 했는지 세월이 흐를수록 조수미의 음악을 알아갈수록 더 공감하는 세계인 속의 평범한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한국인입니다
음악을 모르면 공부를 더 하시단지 아님 평론을 그만두세요 ,정중히 부탁합니다 !!
김성진  ( 2017-02-01 )  답글보이기 찬성 : 16 반대 : 14
장문인데 별 읽을 가치는 없는것 같네요. 그냥 유명인을 걸고 넘어져 없는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싶은 그런 사람의 글입니다.
김철  ( 2016-09-18 )  답글보이기 찬성 : 10 반대 : 12
한국의 음악교육과 무조건적 떠받들기가 싫으셨던 모양인데 애꿎은 조수미만 희생당했네요. 한국에서 대학교까지 마친 뒤 유럽 미주 음악원에서 사사받고 호평받으며 활동하는 한국 오페라가수들이 많기에 한국 음악교육에 대한 언급은 이해가 되질 않고, 마지막에 조수미가 노래하는 방식에 대한 언급은 그녀와 작업했던 명지휘자들을 막귀로 만들어버리는 발언이지 않나 싶습니다. 현실은 21세기에도 바르톨리와 오페라 전곡반을 녹음할 수 있는 한국인 오페라가수는 조수미말고 없다가 정답인 것 같습니다. 다만 조수미씨의 오페라연기가 약하다는 의견에는 동감입니다.
문정호  ( 2016-02-21 )  답글보이기 찬성 : 24 반대 : 7
저 역시 전문 평론가는 아니지만 음악을 사랑하고 즐기는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위의 감상평은 독특한 관점으로서 존중은 하지만 지나치게 일반화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조수미의 역할에 대해서 현실성이 없는 너무 많은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씀드려 조수미씨가 연출자이면서 동시에 주인공이라면 비판하신 내용이 일부 설득적일 수 있지만 오페라 또한 종합 예술입니다. 배우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연출자의 연출 의도에 따라서 창조적인 또 다른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 예술작품이라는 것은 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두 개의 영상을 비교해 보면 이것은 배우의 능력 차이라기보다 연출자와 공연의 규모에 따른 차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분장이 다르고 무대 의상과 조명, 그리고 배우들의 동선이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수미씨의 연기와 목소리는 분명히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배역에 어울리는 조수미씨만의 해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충분히 관객들에게 잠시나마 현실 속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했다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조수미씨가 아니라 어떤 예술가라도 그들의 노력과 재능을 통해 또 다른 감동과 의미를 감사히 누릴 수 있었다면 그러한 찬사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배귀주  ( 2015-10-19 )  답글보이기 찬성 : 12 반대 : 8
나는 조수미 목소리가 특별히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저 고음을 잘 내눈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안태호  ( 2015-10-18 )  답글보이기 찬성 : 19 반대 : 6
조수미 오페라 곡에 대한 평가 동감입니다.
김은숙  ( 2015-10-15 )  답글보이기 찬성 : 23 반대 : 5
문학평론가께서 세심한 음악영역까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평소 저도 평론가님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전에 영국의 유명 매니저가 그러더라구요 조수미씨는 유럽에서 아티스트라기 보다는 엔터테이너로 알려져 있다고요. 조수미의 경우나 정명훈의 경우나 우리가 정명훈을 세계최정상급 지휘자라고하고 조수미를 세계 최정상급 소프라노라고 하는 우리시각에서 언급하는 것, 이젠 냉정한 시각으로 국제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김준원  ( 2015-10-15 )  답글보이기 찬성 : 18 반대 : 13
문화 평론가로서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칼럼이다. 노래를 잘 하는 것과 오페라를 잘하는 것과의 차이를 명료하게 설명한 글이다. 조영남씨가 노래는 잘 하지만 그를 뮤지션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된다. 그리고 연기력에 문제를 가진 배우들- 대표적으로 현재의 김태희씨 같은 경우-이 주연을 하는 드라마를 보는 관객들은 괴로운 이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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