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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소미쌤의 학교종이 땡땡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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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민주화 다음 과제는 '교육 자유화' 이루는 것

평등화-획일화에서 벗어나 교육의 독립에서 희망을 찾을 때

한국 교육이 위기에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학교는 평가 기능만 수행할 뿐 지식 습득은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글 | 김소미 교육학 박사/ 용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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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시험을 준비 중에 있다.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상관없음./조선DB

앨빈 토플러의 비판
 
일찍이 1997년 한국을 방문한 엘빈 토플러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한국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교육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더 나쁜 것은 국가발전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인 평등화-획일화 교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똑똑하지만 꿈이 없는 아이들을 양산하는 한국 교육에 대한 작심 비판이었지만 미래학자의 경고가 좀처럼 통하지 않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폐허의 한국, 인간만이 근본자원인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 변변한 자원도 자본도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나라보다 뜨거웠던 교육열 덕분에 자녀의 학력 상향 이동이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61%에 달하는 나라가 되었다.
 
가계소비 중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7.3%에 이른다. 교육 부문 지출이 GDP의 7%를 차지하는 게 현실이다. 어느 OECD 나라보다 높은 비율이지만 정작 학부모의 만족도는 높지 않다.
 
사교육비도 어마어마하다. 2015년 18조6000억 원을 기록했다. 수치 상으로는 2.4% 가량 감소했지만 이는 학생 수 감소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줄어들지 않는 상태다. 이런 교육 현실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많은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 개입과 같은 착각은 의무교육과 통제교육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실제로는 정부가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가 국민들의 교육 욕구를 따르지 못하는 지체 현상 때문에 괴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제헌헌법 '능력에 따라 균등교육'
 
제헌헌법 이래 대한민국 헌법 31조1항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평준화'라는 이름하에 이뤄진 정부의 개입은 능력에 따른 양질의 교육을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를 박탈했다. 1974년부터 시작된 고교 평준화 정책이 가장 대표적인 정부개입이다. 그러다보니 교육 현장이 마치 똑같은 물건을 찍어내는 공장처럼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수월성 교육 규제, 등하교 시간제한 등과 같은 각종 규제 정책을 시달하고 있으니 학교도 발전의 동력을 잃고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한심스런 교실 분위기
 
"수업을 알리는 벨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적막강산이 된다. 3분의 1의 학생은 잠을 자기 시작한다. 쿠션과 베개를 집에서 들고 와 자기로 작정을 한 모습이다. 나머지 3분의 1은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는다. 선생님은 천장만 보고 수업을 한다. 누가 한국 교육을 배워야 한다고 했는가?"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 교육 예찬에 힘입어 1년 동안 한국 교육을 체험한 어느 외국인 대학생이 밝힌 교실의 모습이다.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교육열을 수십 년 째 정부가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결과다. 정부 개입의 폐해가 이렇다면 교육의 정치화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공교육 실패
 
무상급식을 할지언정 의무지출 항목인 누리과정 예산은 편성하지 않겠다는 시도교육감들이 이권을 챙기니 공교육 붕괴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된다. ‘교육의 경쟁력 제고’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다. 간혹 학력신장, 고교연합고사 부활 등을 정책으로 내거는 교육감 후보도 등장하지만 선거나 집단 논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예산 다툼도 모자라 지난해에는 9시 등교, 9월 신학기제, 시간선택교사제, 방학분산제, 자유학기제와 같은 이른바‘시간정책’이 범람해 논란이 일었다. 더욱이 일선 교사들이 정부와 교육청이 추진하는 갖가지 정책을 보조하기 위한 행정적 업무에 투입되다 보니 교육 만족도 향상이나 수업을 개선하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하기도 어렵다.
 
교육이 공공재라는 착각-EBS형 인간만 양성
 
수월성 교육 강화를 통한 자구책을 펼치는 사립학교들도 있지만 고교 3년 내내 수능시험에 전전긍긍하며 EBS 국영수 교재만 달달 외우는 것이 대부분의 학생들의 일과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사교육이 기승을 부린다고 불평불만이니, 선행교육을 규제함으로써 오히려 사교육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는 교육 서비스가 '공공재'라는 오해로부터 비롯된다.
 
교육이 상품이며, 학생과 학부모들은 소비자들이다. 이들은 당연히 각자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배우기를 원하며 능력에 따른 보상을 받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레 경쟁이 일고 구성원의 자질은 자생적으로 발전한다. 국방이나 치안은 공공재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교육은 공공재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위해 돈을 쓰려고 한다. 공공재가 아닌 것을 공공재로만 보니 서로 맞아 떨어져야 할 교육의 수요와 공급이 자연히 불일치하게 된다. EBS라는 방송집단이 공교육 위에 올라서 이권을 취하는 기형적인 모양새가 된 것도 이러한 오해로부터 비롯했다.
 
의무교육이 통제교육으로 변질
 
대한민국은 건국과 함께 의무 교육이 시작됐다. 해방 당시 78%에 달했던 문맹률은 1960년 10%로 줄었고, 비로소 민주 정치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어 산업화로 이룬 성장의 과실은 평생 교육이라는 이름의 보편적 교육서비스로 점차 발전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의무교육의 성과는 정부가 개입하는 과정에서 통제 교육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산업화와 민주화, 다음이 '자유화'이듯 교육에 있어서도 '자유화'가 절박한 이유다. 필자는 '자유'는 '독립'의 동의어라 보고 있다. 정치로부터의 경제의 독립, 정치로부터의 언론의 독립이 중요하듯 교육 역시 정치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이 필요하다.
 
교육소비자가 선택하게 해야 한다
 
양질의 교육을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교육은 자연도태 되는 것이 마땅하며, 오늘날 교육 현실이 그것을 일부 보여주고 있다. 교육을 완벽히 독립시킬 수만 있다면 정치적 중립을 애써 외칠 필요도 없다.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통한 '교육의 정치화'부터 걷어내야 교육수요자에게 피해를 주는 각종 규제 정책을 걷어낼 수 있다. 결국 '교육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외치는 것만이 정치로부터 교육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등록일 : 2016-01-22 15:14   |  수정일 : 2016-01-2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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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김소미 교육학 박사/ 용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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