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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박정원 기자의 길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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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지명이야기<2>… 지리산 노고단·성삼재 유래는?

반야봉 전설도 전해… 임걸령·성삼재는 삼한시대 유적지로 알려져

글 | 박정원 월간산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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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으로서의 지리산은 그 넓은 면적으로 인해 자연․지리적으로 남과 북의 많은 차이를 낳았다. 남쪽의 여름은 고온다습한 남동계절풍이 남동 사면에 부딪혀 상승함으로써 발생하는 지형성 강우로 곳곳에 많은 비를 뿌린다. 겨울은 길게 뻗은 능선이 북서계절풍을 막아주고, 남해로 흐르는 난류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화한 기온을 보인다. 반면 남원․구례․함양의 북서쪽 겨울은 한랭건조한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기온이 낮고 기온차가 심하다. 북쪽의 심한 기온차와 지역성 강우 등 자주 변하는 기후 조건은 불교보다는 하늘에 모든 것을 맡기는 민간신앙에 더욱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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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올라가는 길에 엄청난 눈이 쌓여 백설의 세상을 실감케 했다.

남쪽의 온화한 기후는 목화나 차의 재배에 적합했다. 산청은 고려말 목화 시배지였다. 문익점이 지리산 일대에 목면을 재배한 것은 이 지역이 기후가 온난하고, 이미 중국에서 들여온 차(茶)가 하동의 지리산 자락에서 성공적으로 재배됐던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지금도 하동 쌍계사 바로 옆에 한국의 녹차 시배지가 비석과 함께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백두대간 지명이야기는 연하천부터 다시 한 번 훑어보자. 연하천은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다 하여 ‘烟霞泉’이라 했다. 연하천은 그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우면서 물이 넘쳐흐르는 곳이다. 따라서 사시사철 등산객이 끊이질 않는다. 지리산 종주객들이 짐을 재정비하고 물을 보충하는 주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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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은 천왕봉 이전에 지리산 산신제를 지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연하천 발원지이자 남서쪽 봉우리인 명선봉(1,586m)이 20여분 가면 나온다. 명선봉에서 대성리 의신마을과 삼정마을이 계곡 안에 묻히듯 가라앉은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명선봉은 토끼봉(1,534m)으로 이어진다. 토끼봉은 반야봉에서 방위가 묘향(卯向)이라 하여 묘봉으로 불리다가 토끼봉으로 불리게 됐다. 여순사건 이후 지리산으로 숨어든 빨치산들이 봉우리에 꽃이 만발한 모습을 보고 꽃대봉이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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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운해는 지리산 8경에 해당하는 명경이다.

이어 30분쯤 뒤 화개재가 도착한다. 화개재는 삼도봉과 토끼봉 사이의 허리목이자 뱀사골과 화개골을 연결하는 노루목이다. 북쪽 뱀사골에서 올라오면 만나는 첫 능선이 화개재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뱀사골산장이 바로 발아래 있었다. 화개재는 옛날 화개장터가 있던 자리라고 안내판에서 설명하고 있다. 화개장터는 지리산 능선에 있었던 장터 중 하나였다. 경남에서 연동골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과 해산물, 전북에서는 뱀사골로 올라오는 삼베와 산나물 등을 물물교환 했다고 한다. 정말 이 높은 곳까지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와서 물물교환을 했는지 의아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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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소식을 전하는 노고단 야생화들.

뱀사골에서 올라와 화개재를 거쳐 삼도봉~임걸령을 지나 피아골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뱀사골~피아골 남북 종주코스에 해당한다. 화개재는 백두대간 능선상으로 삼도봉(1,449m)이 바로 앞에 있다. 삼도봉은 이름 그대로 경남․전남․전북 삼도의 경계다. 정상부는 심하게 주름진 암릉이지만 전망이 좋아 잠시 쉬면서 지리산 주능선을 감상하는 곳이기도 하다.

삼도봉에서 10여분쯤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지리산 3대 봉우리 중의 하나인 반야봉 가는 길과 백두대간 주능선이 이어지는 노루목으로 가는 길이 나눠진다. 반야봉(1,728m)은 지리산 산신인 천왕봉 마고할미와 혼인한 도사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라 하여 반야봉이라 부르게 됐다. 또 우뚝 솟은 봉우리가 달마대사의 머리를 닮았다고 한다. 반야봉에는 남신(男神)의 상징인 반야와 천신의 딸이자 여신(女神)인 마야고(마고) 사이에 얽힌 러브 스토리가 전설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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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이 길게 펼쳐져 있다.

 마고는 사모하는 반야의 옷 한 벌을 지어놓고 반야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고는 고원에 핀 쇠별꽃이 바람에 일렁이며 물결칠 때마다 행여 반야가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착각에 사로잡혔다. 마고는 마침내 머리채를 나부끼며 신명나게 그 꽃잎 물결 속으로 반야의 옷을 든 채 달려갔다. 그리고 무엇을 잡을 듯 허우적거렸지만 그리운 반야는 보이질 않았다. 쇠별꽃의 움직임을 착각한 마고는 수치와 분노를 못 이겨 얼굴을 손바닥에 묻고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을 속인 쇠별꽃을 다시는 피지 못하게 하고, 반야의 옷은 갈기갈기 찢어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려버렸다. 또 매일 같이 얼굴을 비추어보던 산상의 연못은 신통력을 부려 메워 없애버렸다.

이 전설은 노고단의 마고할미와 연결시켜 이해하면 훨씬 재미있는 신화가 된다. 그 흔적은 지금도 지리산에 그대로 남아 전한다. 그녀가 메워버린 못을 누군가 천왕봉 밑 장터목에서 찾아내 ‘산희샘’이라 부르고, 찢겨져 흩어진 반야의 옷은 소나무 가지에 실오라기처럼 걸려 기생하는 풍란으로 되살아났다고 한다. 그래서 지리산 풍란을 ‘환란’이라는 별칭을 갖게 됐다는 전설도 있다. 

반야봉 올라가는 길 바로 아래에 노루목이 있다. 노루목은 흔히 노루가 자주 다니는 길목이나 넓은 들에서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좁은 지역을 말한다. 지리산 주능선의 노루목도 예외 아니다. 이곳의 암두(巖頭) 모양새가 마치 반야봉에서 내려지르는 산줄기가 산중턱에서 잠깐 멈추었다가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피아골로 내려다보는 것 같아 부르게 된 이름이다. 또 노루가 지나다니는 길목이란 얘기가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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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에서 바라본 반야봉의 일출. 반야봉 일출도 지리8경에 속한다.
 
백두대간은 임걸령(1,320m)으로 연결된다. 이곳은 옛날 녹림호걸(綠林豪傑)들의 은거지, 즉 주변에 키 큰 나무가 호걸처럼 많이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의적 두목인 임걸(林傑)의 본거지라 하여 ‘임걸령’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능선 10m쯤 아래 임걸령샘터가 있다. 한겨울 눈이 펑펑 내리고 얼음이 꽁꽁 얼어도 이곳만큼은 물이 콸콸 나오는 신비의 샘이다. 오히려 따뜻한 느낌을 주고, 여름에 얼음 같이 차가운 그런 물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수통에 물을 다시 채우는 곳이다.

임걸령은 또한 피아골에서 올라오면 주능선과 연결된다. 피아골 마을의 한자는 ‘稷田(직전)’이다. 여기서 직이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작물로, 보통 ‘피’라고 불린다. 풀어서 보면 직전은 피밭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6․25동란으로 이곳에서 피를 많이 흘려 ‘피의 골짜기’라는 뜻에서 이름 붙여졌다고 하나 이는 낭설이다. 왜냐하면 피아골은 전쟁 이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 기록에도 피아골은 자주 등장한다. 

주능선은 임걸령에서 돼지평전으로 이어진다. 돼지평전은 예로부터 멧돼지들이 좋아하는 둥굴레가 많이 나는 곳이어서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돼지평전을 지나면 바로 노고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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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재에서 노고단 올라가는 길이 온통 눈 속에 덮여 있다.

노고단(老姑壇․1507m)은 도교에서 온 말로, 우리 말로는 ‘할미단’이며, 할미는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을 일컫는다. 서술성모를 마고할미로 부르게 된 데서 노고단이란 지명이 유래했다. 노고단은 옛날 신라시대부터 지리산의 산신 서술성모를 모시는 남악사가 있었던 민속신앙의 영지(靈地)였다. 성모는 나라의 수호신이었고, 매년 봄․가을에 국태민안과 풍년을 비는 제사를 이곳에서 지냈다. 후대에 성모는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인 위덕황후로 신앙되기도 했고, 남악사의 성모는 신라 박혁거세의 어머니로 신앙되기도 했다. 지리산은 결국 신라와 고려의 시조를 잉태했던 성지였던 것이다.

반야봉의 신화와 연결되는 노고단의 신화는 다음과 같다.

지리산 산신 중 여신(여신)인 천왕봉의 마고할미는 선도성모(仙桃聖母) 또는 노고(老姑)라 불리는데, 바로 천신(天神)의 딸이다.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던 도사 반야(般若)를 만나 결혼해 천왕봉에서 살았다.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던 중 반야는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다. 그리고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들었다. 그리고 딸들을 한 명씩 전국 팔도로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렸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가 돌아오지 않자,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을 거둔다. 갈기갈기 찢겨 날아간 옷은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갔고, 그것들이 반야봉의 풍란이 됐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8도 무당의 시조가 됐다고 한다. 반야봉 주변에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는 것은 하늘이 저승에서나마 반야와 마고할미가 만날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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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노고단을 바라다 봤다.

백두대간의 지리산 주능선인 종주능선의 마지막 지점인 노고단에서 성삼재까지는 임도로 잘 닦여져 있다.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에 가까울 정도다. 성삼재는 삼한시대의 전적지로, 마한군에게 쫓기던 진한왕이 달궁계곡에 왕궁을 짓고 피난하여 성(姓)이 다른 세 사람의 장수를 보내 지켰다 해서 성삼재라고 한다. 성삼재는 가장 중요한 곳이라 남쪽에 있다. 북쪽 능선에 8명의 장수를 두어 지키게 한 곳이 팔랑재, 동쪽은 황장군에게 지키게 했다 해서 황영재, 서쪽 능선은 정 장군으로 지키게 했다고 해서 정령재(치)라고 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성삼재는 조망이 좋아 지금도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등록일 : 2016-02-12 09:23   |  수정일 : 2016-02-12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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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박정원 월간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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