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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강위석의 생각을 따라 말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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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만에 부활하는 중국의 '천하사상'

중화의 안정과 번영을 위하여 변방은 왕도(王道)나 패권으로 복속시켜야 한다는 것

글 | 강위석 시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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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마찰을 벌이고 있는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위치.

오랫동안 한국은 일본과 독도 영유권을 놓고 마찰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臺), 일본명 센카쿠(尖閣) 열도를 놓고 마찰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도발적인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가 주변국과 미국을 긴장시켜 놓고 있다. 동아시아 3국은 바다와 섬을 두고 알력을 빚고 있다.
 
 
19세기 말 청일전쟁 전야(前夜)가 재현 아닌가하는 불안
 
그 가운데 군함과 전투기가 심심치 않게 발진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일본이 사실상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의 사정은 그 온도가 매우 뜨겁다. 19세기 말 청일전쟁의 전야(前夜)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안도 피어난다. 여기에 북한이라는 이형(異形) 변수도 있다. 이 불안은 복잡하고 답답한 주관식 문제다.
 
지금 중국에서는 경제 개발과 무력 선진화에 자신을 얻은 나머지 청말(淸末)까지 2천여년 동안 지녔던 천하사상(天下思想)이 부활하고 있는 것 같다. 천하(세계)는 중화(中華)와 변방(邊邦)으로 구분된다. 변방은 변새(邊塞) 또는 사이(四夷)로도 불려 왔다.
 
중화의 안정과 번영을 위하여 변방은 왕도(王道)나 패권(hegemony)으로 복속(subordinate)시켜야 한다는 것이 천하사상이다. 변방은 조공(朝貢)이 필수(必須)이고 미연(未然)이면 때를 보아 정벌한다. 천하사상은 아무래도 다소는 공격성을 띄게 되는 중화 민족주의 내지 중화식 제국주의다.
 
일본은 지금 경제성장이 한계에 봉착해 있다. ‘잃어버린 30년’이란 것이 그것이다. 한편 미일 안보는 구소련을 대신한 중국의 굴기(崛起)와 조우하여 중국과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전선(戰線)을 형성하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미국의 상대적 경제력이 약해지면서 미일 안보가 종전의 직렬적(直列的: serial) 구조에서 병렬적(竝列的: parallel) 구조로 바뀌고 있다. 일본의 독자적 역할이 증대된 것이다. 이것이 일본을 우경(右傾)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가간 대립에는 애국심이 필요하다. 과도한 국가채무를 줄이려면 세율을 올려야 하는데 여기에도 국민의 애국심이 필요하다. 엔화의 평가가 절하되면 국민의 생활비가 올라가는데 이것을 참는 데도 애국심이 필요하다. 아베노믹스, 아베 폴리틱스가 우경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애국심이 우경이다.
 
 
애국적 국수주의 내지 민족주의의 강화
 
일본과 중국에서는 똑 같이 애국적 국수주의 내지 민족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일본은 소극적으로 현재 당면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중국은 적극적으로 천하사상에 입각한 중국의 재건을 위하여 자연스럽게 민족주의에 회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일전쟁이 터졌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의 경험에 의하면 민족주의는 격화하기 쉽고, 격화된 민족주의는 전쟁을 일으키기 쉽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일본과 중국 간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알력이 식민주의(colonialism)적 제국주의(imperialism) 배경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식민주의는 자기네 영토가 아닌 영토를 자기네 영토로 만들어 착취, 개척,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위키피디어). 콜럼브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뒤, 16세기에서 20세기까지 계속된 서양의 식민주의는 2차대전이 끝난 다음 사라졌다.
 
식민지 개척에 대한 유럽 각국의 열정은 중상주의가 쇠퇴하고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부터 이미 식어 가기 시작했다. 다만 이 트렌드는 19세기 말에 반전(反轉) 기간으로 들어 간다.
 
1873년에 시작하여 20년간 계속된 불황이 끝나면서 19세기 말에는 이른 바 중공업 중심의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열강의 식민주의는 일층 강화된 제국주의로 변모하게 된다. 식민지를 쟁탈하려고 열강끼리 무력 분쟁이 빈발하였다.
2차 산업혁명은 산업의 중점을 경공업에서 중공업으로 이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후발국들의 참여로 선발국들과 경쟁하는 판도를 형성하였다. 이 시기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본이 산업혁명에 성공하고 제국주의 대열에 참가했다.
 
반대로 1839년 아편전쟁 이전만 해도 ‘천하(天下)’의 종주국으로서 동아시아형 패권(hegemony)을 행사해 오던 중국(청국)은 열강의 침략을 받게 된다.
 
일본의 일차 목표는 조선을 식민지로 손에 넣는 것이었다. 일본은 조선과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 대신 청국과 벌였다. 청일전쟁(1894-1895)이 그것이다. 승리한 일본은 그 강화조약인 시모노세끼 조약의 제1조에 가장 중요한 전리품으로서 ‘조선은 독립국이다’라는 조항을 얻어낸다. 청국의 조선에 대한 종주국 지위를 말소한 것이다. 일본의 인식은 조선의 주인은 조선이 아니라 청국이라는 것이었다.
 
식민주의를 종식시킨 것은 3 가지의 서로 다른 힘이었다. 첫째는 강대국 간에 빈발하는 대규모 식민지 쟁탈 전쟁의 비용이 있었다. 제일 큰 비용은 전쟁 자체였다. 식민지 운영에서 얻는 편익, 즉 원료 조달과 제품 판매에서 얻는 이익이 비용에 못 미쳤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식민지에서 조달하는 단순 노동과 원료에 대한 의존도는 줄어들고 제품 시장도 선진국 간 교역 비중이 늘어 갔다.
 
둘째는 의식화한 식민지 인민의 민족주의적 독립 운동이 있었다. 민족주의는 서양 근대의 산물이다. 개인의 정체성을 민족에서 찾으려는 현상이 18세기에 크게 창발(創發)하였고 그것이 근대국가에 대한 시민의 애국심과 결부되었다. 민족주의는 분열되어 있던 국가를 통일시키기도 하고 통일되어 있던 국가를 쪼개어 독립시키기도 했다.
 
셋째로는 종주국 인민의 자유가 중요하면 식민지 인민의 자유도 중요하다는 종주국 지식인의 집단적 양심의 자각이 있었다. 종주국 인민의 양심 부분은 식민지 개척과 유지에 드는 비용의 과다 부분과 그 힘이 합산되었을 터다.
 
옛식민지의 독립은 2차대전의 전후 처리와 세계 질서 재편의 핵심 가운데 하나였다. 이전 같았으면 전승국은 패전국으로부터 영토나 이권과 함께 식민지를 배상조로 떼어주기를 요구하였을 터였다. 그러나 2차대전의 마무리는 달랐다. 전승 열강은 새로운 식민지를 취득하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왕에 경영하고 있던 식민지도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
 
지금은 19세기 말과 달라서 일본과 중국 둘 가운데 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다. 그 목표도 식민지 쟁탈이 아니라 양국 모두 자국의 국가 에너지의 강화를 위한 민족주의적 애국심의 결집이다.
 
한국의 입장을 추려 본다면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영토를 수호하되 과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중국과의 문제는 그들의 천하사상 패권 아래서 2천년을 지내 온 과거를 지금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북한 정권이라는 매우 어려운 변수가 추가되어 있다.
 
 
등록일 : 2014-03-05 오전 11:11:00   |  수정일 : 2014-03-0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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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강위석 시인, 언론인

-1937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

-마산고등학교, 연세대 (수학과,학사)
-미국 하바드대학교 케네디 스쿨(경제학 전공, 석사)
-현대문학지 시부문 추천완료
-한국은행, 국제상사(주) 근무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문화일보 논설실장, 중앙일보 논설고문 , 월간 에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자유주의, 보수주의 성향의 논설을 써 왔음
-시집 <알지 못 할 것의 그림자>, 칼럼집 <천하를 덮는 모자>, <향기나는 사람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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