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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강위석의 생각을 따라 말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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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알야야 될 하늘의 하늘(天之天)은 무엇인가?

왕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

한고조 유방의 참모였던 역이기는 '임금의 하늘은 인민이고 인민의 하늘은 밥이다'라고 말했다. 밥은 임금의 <하늘의 하늘>이다. 또 말했다. '<하늘의 하늘>을 모르고서는 임금이 될 수 없다'

글 | 강위석 시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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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모범은 상상(想像) 속에나 있을 것이다. 지천지천(知天之天)으로 왕 노릇한 상상 속의 모범 임금이 중국 상고 시대의 요(堯)임금이다. 조선의 임금과 선비들은 요순시대를 닮고자 노력했다. /조선DB
 
역이기(酈食其)는 기원 전 2백년 대 사람이다. 후에 한나라 고조가 된 유방의 군사 및 외교 참모였다. 유방은 경쟁자인 항우와 오창(敖倉)이라는 땅을 서로 차지하려고 군대를 대치하고 있었다. 오창은 곡창(穀倉)이었다.
 
군사력에서 항우에게 달리던 유방은 오창을 포기하고 대신에 다른 곳을 차지할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의 역이기전(酈食其傳)에 의하면 역이기는 오창을 포기하는 것에 다음과 같은 말로 반대하였다.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습니다.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습니다(王者以民爲天 而民以食爲天: 왕자이민위천 이민이식위천).”
 
 한 편으로는 매우 오활(迂闊)한 담론이면서 한 편으로는 실용성이 큰 치밀한 원칙이다. 밥은 요즘 말로는 <경제>가 될 것이다.
 
“왕업은 하늘의 하늘을 아는 사람이 이룰 수 있습니다. 하늘의 하늘을 모르는 사람이 왕업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知天之天者 王事可成 不知天之天者 王事不可成: 지천지천자 왕사가성 부지천지천자 왕사불가성).”
 
 
왕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
 
 왕과 백성과 밥이 지천지천(知天之天)에서 비로소 함께 만난다.
왕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 고로 밥이 왕의 <하늘의 하늘>이라는 말이다. 하늘은 높은 것이고 하늘의 하늘은 지고(至高)의 것이다. 지고(至高)의 것인 하늘의 하늘이 실은 지근(至近) 평상(平常)의 것인 밥임을 지적하였다.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는다.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라는 말은 그 후 2천여년 동안 많은 사람에 의하여 여러 가지로 변형되어 되뇌어졌다. 그러나 다른 변형에서는 역이기의 것처럼 진실하고 도저(到底)한 뜻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자. 송서 문제기(宋書 文帝記)에는 ‘나라는 백성을 본으로 삼고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국이민위본 민이식위천)’라고 했다. 두 가지에서 역이기 것과 다르다. 왕(王) 대신에 나라(國:국)를, 하늘(天:천) 대신에 본(本)을 사용하였다.
 
<왕> 대신에 <나라>를 사용함으로써 당위(當爲)와 책임이 없어지고 단순묘사(描寫)와 동어반복(同語反覆)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국가는 국민에게 책임지는 주체가 아니다. 왕이나 정부라야 그런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국가와 국민은 대체로 같은 것이라서 ‘국민은 국가의 근본이다’라고 하면 동어반복적 설명이 된다. 임금과 정부는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을 책임에서 면제된다. 역이기는 국가가 아니라 왕(위정자)의 권력, 책임, 자질, 전략을 초점에 놓았다.
 
문제기(文帝記)에서 천(天) 대신에 본(本)을 쓴 것은 더 김새는 일이다. 천(天)은 다스림의 대상이 아니라 제사의 대상이었다. 그것도 천(天)에 제사할 수 있는 것은 대부(大夫)나 제후(諸侯)도 아닌 천자(天子), 즉 왕(나중 시대에는 황제) 만이었다.
 
역이기는 왕이 백성을 예배의 대상인 하늘(=하느님)로 생각해야 한다고 단언하였다. 문제기(文帝記)처럼 하늘 대신에 근본이라고 말하는 것은 백성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지고의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태도다.
 
그 바람에 밥은 백성의 하늘만으로 되고 만다. 임금의 <하늘의 하늘> 위치로부터 밀려난 것이다. 뿐만 아니다. 밥은 백성에게만 하늘일 뿐 임금과는 관계가 없어져 버린다. 역이기가 밥을 임금의 <하늘의 하늘>이라고 매겼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되었다.
 
 
세종,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조선의 세종도 백성의 굶주림을 당하여 수령(守令)들을 독려하면서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民惟邦本 食爲民天:민유방본 식위민천)’라는 변형을 남겼다. 송서의 그것과 비슷하다. 역이기의 원본이 가진 철저함은 갖추지 못 했다.
 
백성이 밥을 하늘로 삼는 것은 백성들의 일이다. 이 사실이 임금에게 중요한 것이 되려면 우선 백성이 임금에게 중요한 존재라야 할 것이다. 중요할 뿐만 아니라 백성이 임금보다 더 상위에 있어야 할 것이다. 임금이 백성을 하늘로 삼는 다는 것은 바로 이런 관계다.
 
완벽한 모범은 상상(想像) 속에나 있을 것이다. 지천지천(知天之天)으로 왕 노릇한 상상 속의 모범 임금이 중국 상고 시대의 요(堯)임금이다. 그의 치하(治下)를 태평성대(太平聖代)라고 부른다. 그 때의 백성이 불렀다는 노래가 격양가(擊壤歌)다.
 
해가 뜨면 일하고(日出而作: 일출이작)
해가 지면 쉬고(日入而息: 일입이식)
우물 파서 마시고(鑿井而飮: 착정이음)
밭을 갈아 먹으니(耕田而食: 경전이식)
임금의 덕이 내게 무슨 소용이랴(帝力于我何有哉: 제력우아하유재)
 
이 노래가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하는 것을 듣고서 요임금은 그제서야 자기의 정치에 만족했다고 한다. 태평성대는 다름이 아니라 임금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되는 경지까지 이른 정치다.
 
임금이 백성의 <일하고 쉬고 우물 파고 물 마시고 밭 갈고 먹는> 일에 간섭을 안 했다는 것이다. 백성은 자유로웠다는 것이다. 밥이 임금의 <하늘의 하늘>이었다는 것이다.
 
 
경제가 인민의 하늘이다
 
태평성대는 상상 속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라는 것이 있고서는 그런 경지가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정치라는 것이 없어지면 그 때는 무질서 때문에 태평성대와는 거리가 더 멀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인민으로 하여금 정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해 보겠다는 방향에다 정치의 목표를 두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참여자들이 인민을 하늘로 아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여기에 추가하여 경제가 인민의 하늘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그 정치는 지천지천(知天之天)에 가까이 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등록일 : 2014-02-20 오후 2:50:00   |  수정일 : 2014-02-2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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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사진

강위석 시인, 언론인

-1937년 경남 마산에서 출생

-마산고등학교, 연세대 (수학과,학사)
-미국 하바드대학교 케네디 스쿨(경제학 전공, 석사)
-현대문학지 시부문 추천완료
-한국은행, 국제상사(주) 근무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문화일보 논설실장, 중앙일보 논설고문 , 월간 에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자유주의, 보수주의 성향의 논설을 써 왔음
-시집 <알지 못 할 것의 그림자>, 칼럼집 <천하를 덮는 모자>, <향기나는 사람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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