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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배진영 기자의 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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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총선을 보며 한국의 5·16을 떠올리는 까닭은?

글 | 배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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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8일 실시된 미얀마(구 버마)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90%가 넘는 의석을 차지하면서 압승했다.
  
이 뉴스를 보면서 《월간조선》 2007년 11월호에 썼던 ‘부패한 장군들의 나라 미얀마’라는 기사가 생각났다. 미얀마에서 9년간 사업을 했던 박창현씨의 체험담이었다. 그가 말하는 미얀마 군사정권의 부패상은 가관이었다. “난데없이 단전(斷電)·단수(斷水)가 되면 통장이 주민들로부터 돈을 걷어 지역 군(軍)부대장에게 상납한다. 그러면 바로 전기나 수돗물이 들어온다”는 박씨의 얘기에 ‘이건 거의 양아치 수준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5·16이 일어난 것은 1961년이었다. 버마의 네윈 장군이 두 번째로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것은 1962년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군사정부가 들어섰지만, 오늘날 한국과 미얀마는 정치·경제적으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을까? 기자는 4년 전 ‘4·19세대가 본 5·16’이라는 기사를 쓰면서 4·19세대 지식인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이영일 전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다른 나라 군사독재자들과 달리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지 않고 국력신장이라는 대의(大義)에 충실했다. 4·19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에게 정부를 변경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후 집권자들은 국민들을 두려워하게 됐다. 4·19와 같은 경험이 없는 나라, 집권자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는 발전이 없다. 4·19와 5·16, 이 두 노력이 집요하게 맞물리면서 민주화와 산업화가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1960년대 초 버마의 1인당 GDP는 한국보다 높았다. 하지만 1962년 집권한 버마 군부는 사회주의 노선을 추구하다가 나라를 망가뜨렸다. 1988년 버마 국민들은 뒤늦게 4·19를 시도했지만, 3000여 명의 희생자만을 낸 채 좌절해야 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민주화의 첫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미얀마를 보면서, 새삼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굴곡은 있었지만, 그만하면 행복한 것이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등록일 : 2015-12-28 10:56   |  수정일 : 2016-02-2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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