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새로운 재미 맛보게 해' property='og:description' />

로그인메뉴

시리즈 | 배진영 기자의 어제, 오늘, 내일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삼국연의> - '날 것'으로 읽는 삼국지가 주는 감동

'모종강本'에 실린 서시씨 평(序始氏評), 협평(挾評) 등 완역. <삼국지> 읽는 새로운 재미 맛보게 해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내가 처음 읽은 제대로 된 《삼국지(三國志)》는 아버지가 읽으셨던 김광주(金光洲)의 다섯 권짜리 《삼국지》였다. 1970년대 초에 나온 책으로, ‘발연대로(勃然大怒)’니 ‘대경실색(大驚失色)’이니 하는 한자어가 수시로 등장하고, 세로쓰기로 되어 있는 고색창연한 책이었다. 아마 이 책을 열 번 이상 읽었을 것이다.
그 후 이문열이 평역(評譯)한 《삼국지》를 읽었지만, 별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다. 조성기·김홍신·장정일 같은 국내 작가들의《삼국지》가 나왔을 때에는 대형서점에 나가 살펴보았지만, 특별히 읽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이런 책들은 작가의 체취가 너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 조미료를 너무 많이 친 음식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 비봉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삼국연의(三國演義)》는 ‘날 것’ 그대로의 고전(古典)《삼국지》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기왕에 나온 《삼국지》들이 대부분 일본 작가 요시가와 에이지(吉川英治)가 일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개작(改作)한 《삼국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에 비봉출판사의《삼국연의》는 청(淸)나라의 작가 모종강(毛宗崗)의 《삼국지연의》(일명 ‘모종강본(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흔히 《삼국지(연의)》는 원(元)나라 말기 나관중(羅貫中)이 쓴 걸로 알려져 있지만(《삼국통속연의》), 사실 여부는 분명치 않다. 난삽한 형태로 전해져 오던 《삼국통속연의》를 오늘날과 같은 체계로 다듬은 사람이 바로 모종강이다. ‘모종강본’이 나오자 기존의 《삼국지연의》 류(類)의 책들은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모종강본’이 천하통일을 한 것이다.
원래 ‘모종강본’에는 본문 외에도 서문(序)과 일종의 후기(後記)인 <삼국지 읽는 법(讀三國志法)>, 매회 앞부분에 오는 서시씨 평(序始氏評), 본문 중에 실린 간략한 협평(挾評)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에 ‘모종강본’이라고 하는 《삼국지》는 없지 않았으나, 서문, <삼국지 읽는 법>, 서시평, 협평까지 모두 번역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라고 한다.

‘모종강본’에서 서시씨평은 각 회의 첫 부분에 나오지만, 역자는 이를 매 회 맨 마지막으로 돌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동탁을 죽이려다 미수에 그치고 달아나던 조조가 자기를 도와준, 부친의 친구인 여백사 일가를 죽인 후 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들을 배반할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반하지는 못하게 할 것이오.”이에 대해 모종강은 서시씨평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험 삼아 천하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누구인가? 그리고 감히 입을 열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 도덕과 학문(道學)을 강의하는 사람들은 일단 이 말을 뒤집어서 “차라리 남이 나를 배반하게 할 지언정, 내가 남을 배반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듣기에는 나쁘지 않겠지만, 그들이 하는 행동을 자세히 살펴보면 반대로 하는 일 하나하나가 모두 조조의 이 말을 몰래 배우고 있다. 그러므로 조조는 말과 행동이 일치한 소인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런 무리들은 입은 옳아도 마음이 글러서, 그 말과 행동이 직설적이고 통쾌한 조조보다 도리어 못하다.> (제4회)

유비와 손권이 형주를 놓고 다투던 와중에, 형주의 명목상 주인이던 공자(公子) 유기가 죽자, 오나라의 노숙이 조문을 온다. 물론 조문보다는 형주반환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모종강은 이렇게 평한다.
<조문은 원래 죽은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해서 하며, 조문은 본래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나를 위해서 한다. 조문을 하는 것이 나에게 무익하다면, 비록 조문을 해야 마땅하더라도 조문을 하지 않고, 조문을 하는 것이 나에게 유익하다면 비록 조문할 필요가 없더라도 역시 조문을 한다. 어찌 동오의 경우에만 이러하겠으며, 또한 어찌 조문의 경우에만 그러하겠는가! 무릇 근래 세상 사람들이 분분하게 왕래하는 것은 모두 동오의 조문과 같다고 봐야 한다.> (제54회)
사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의 경조사를 챙기는 이유 가운데 태반은 인간적 ‘정리(情理)’ 때문이기보다는 ‘이해(利害)’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을 모종강은 서시씨평에서 콕 집어 지적한 것이다.

이처럼 서시씨평에서는 인간과 역사, 사회, 인생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얘기들이 많이 있다. 또 서시씨평에서는 하나의 소설로서《삼국연의》의 문장, 서술기법, 구성을 해설하고 평하기도 한다.

본문 중간에 들어가는 협평(挾評)의 역할은 훨씬 다양하다. 판소리의 추임새처럼 흥을 돋우기도 하고, 앞에 나왔던 이야기를 상기시키면서 앞뒤의 얘기를 연결시키는가 하면, 뒤에 나올 얘기를 미리 누설하기도 한다.

왕윤의 계교에 의해 동탁의 첩이 된 초선은, 동탁이 짐짓 “나는 지금 너를 여포에게 주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하냐?”고 묻자, “차라리 죽겠다”면서 칼을 뽑아든다. 이 대목에서 협평이 한 줄 따라붙는다. “오늘날 부인들은 매번 죽어버리겠다는 말로 자기 남편들을 못살게 구는데, 이는 초선을 보고 잘못 배운 것이다.” (제9회). 혹시 모종강도 마누라에게 쥐어 사는 공처가여서 이런 소리를 한 건 아닐까?

오십이 넘은 유비가 두 번째로 상처(喪妻)하자, 오나라의 손권은 묘령의 누이동생을 유비와 결혼시키겠다고 나선다. 누이동생을 미끼로 해서 유비를 유인, 형주를 탈취하겠다는 주유의 계책이다. 유비가 제갈공명과 상의하자 공명은 “주역으로 점을 쳐서 크게 길하고 크게 이로운 점괘 하나를 얻었습니다”라면서 결혼을 추진하라고 권한다. 이 대목 협평에서 모종강은 “그 괘사의 말은 틀림없이 ‘늙은 사내가 젊은 여자를 얻게 된다’는 것이었을 것이다”라고 너스레를 떤다(제54회). 아마 마음 한 구석에 어린 여자와의 사랑이라는 로망을 품고 있는 많은 사내들이 이 대목을 읽으면서 빙그레 미소지었을 게다.

형주를 반환받기 위해 수차 유비를 찾아갔던 노숙이 유비와 공명으로부터 “서천을 얻게 되면 형주를 돌려주겠다”는 문서를 받아가지고 돌아오자, 주유가 화를 내는 대목에서의 협평은 이렇다. “원래 문서란 믿을 게 못 된다. 형주만 그런 게 아니다.”(제54회).
문득 20여년 전 원로정치인 윤치영씨에게서 들었던 “만국공법(萬國公法)이 불여대포일방(不如大砲一放)”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힘의 논리 앞에 휴지조각이 된 성명과 조약이 어디 하나 둘이었던가?

이처럼 저잣거리 이야기꾼의 입담처럼 구수한 협평은, 기존의 다른 《삼국지》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다.

10여년 만에 다시 읽는 《삼국지》여서인지, 10대나 20대, 30대 때에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가슴에 와 닿은 것은 공명의 <후출사표(後出師表)>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었다.
<이제 신은 나라를 위해 몸을 굽혀서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전심전력을 다해 일하다가 죽은 후에야 그만두려고 하옵니다 (鞠躬盡瘁 死而後已). 성공과 실패, 뜻대로 되거나 되지 않거나에 대해서는 신의 능력으로는 예견할 수 있는 바가 아니옵니다.> (제97회)
공명의 이러한 다짐은 유비가 천명(天命)과 천수(天壽)를 말하는 사마 휘에게 이렇게 말한 것과 통한다.
“선생의 말씀은 참으로 고견이십니다. 다만 이 유비는 한 황실의 후예이므로 마땅히 나라를 바로 일으켜 세워야만 할 입장에 있으니, 어찌 감히 이것을 천수와 천명에만 맡겨놓을 수 있겠습니까?”(제37회)

모종강도 제37회의 서시씨평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만약 춘추시대의 현사(賢士)들이 모조리 장저, 걸익, 접여, 장인들만 배우고, 그것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하려고 애썼던 공자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그 누가 존주(尊周)의 의리를 후대 만년에 드러내 보일 수 있었겠는가? 만약 삼국의 명사들이 전부 수경과 최주평, 석광원, 맹공위를 배우려 하고, 뜻을 결단하여 자기 몸을 죽여가면서 이롭고 손해됨을 따지지 않았던 공명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그 누가 한(漢)을 떠받들려는 마음을 천년 후세에 전할 수 있었겠는가? 현덕은 말하기를 “어찌 감히 이를 운수와 운명에만 맡겨둘 수 있겠는가!”라고 했는데, 공명도 이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우리 나이로 오십줄에 접어든 지금, 이제는 세상사라는 게 한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게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들이 다 비웃는 데도 묵묵히 노력하고 싸워서 뭔가를 이루어내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보인다. “鞠躬盡瘁 死而後已”라는 공명의 한 마디는, 자꾸만 약해지고 비겁해지려는 내 등짝을 후려치는 죽비소리 같다.

전에는 간과했던, 공명이 <후출사표>에서 언급한 ‘한적불양립(漢賊不兩立)’ 이라는 말도 이제는 새삼 무거운 의미로 다가온다. 모종강은 서시씨평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蜀漢)이 위(魏)를 역적으로 여기면, 위 역시 한을 역적으로 여긴다. 한은 설령 역적 위를 잊고 있더라도 역적 위는 한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역적을 치지 않으면 촉의 왕업(王業) 역시 망한다고 한 것이다.> (제99회)
왕조시대의 용어로 설명하고 있지만, 이 말은 분단시기 민족사적 정당성을 놓고 벌어지는 체제경쟁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모종강의 말은 “남북관계는 누가 민족을 대표하는가 하는 것을 놓고 벌이는 권력투쟁”이라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말과도 통한다.

“옥은 깨트릴 수는 있어도 그 흰 색깔은 바꿀 수 없고, 대나무는 불태울 수는 있어도 그 마디를 휘게 할 수는 없다”는 관운장의 말(제76회)이나, “지금 만약 임금과 신하들이 전부 항복하고 국난에 죽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다면, 그 역시 욕된 일이 아니겠소?”라는 오 나라의 마지막 승상 장제의 말(제120회)은 여전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직도 내 가슴은 더운가 보다.
하지만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아름다운 말에 마음이 움직이고, 이를 기억하려는 내게 모종강은 따끔하게 한 마디 한다.
“만약에 단지 읽기만 하고 몸소 힘껏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책을 읽은 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삼국지연의序>)

원로 출판인인 역자(譯者)는 “원문의 내용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았고, 원문의 뜻을 정직하게 충실하게 전달하는 데 가장 큰 역점을 두었다”고 자부한다. 널리 알려진 진수(陳壽)가 지은 역사서인《삼국지》와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삼국연의》라는 제목을 택한 데서도, 역자의 깐깐함을 느낄 수 있다.
번역은 기존의 다른 《삼국지》들에 비하면, 다소 거칠다. 직역(直譯)을 위주로 했기 때문이다. ‘좀 더 부드럽고 맛깔스럽게 번역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동란(動亂)의 시대를 내달리던 사내들의 거친 숨소리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 준다.
이 《삼국연의》의 또 다른 특색은 ‘공부에 도움을 주는 책’이라는 점이다. 여러 판본의 ‘모종강본’을 비교해 오자(誤字)를 바로잡았고, 짧은 한문 명문(名文)이나 성어(成語)들은 한자(漢字)를 병기(倂記)했다. 책 속의 인물이《논어》《맹자》등 고전을 인용하는 경우에는 그 출전을 명기했다. 무엇보다도 특기할 것은, 이 책의 제9~12권이 한문원문본(漢文原文本)이라는 점이다. 간단한 주석(註釋)을 덧붙여 《삼국지》를 통해 한문이나 중국어(中國語)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등록일 : 2015-01-05 03:49   |  수정일 : 2015-01-05 09:25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맨위로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