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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 배진영 기자의 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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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역사인식’의 현장 야스쿠니신사

⊙ 유물전시관(遊就館)에서 ‘대동아전쟁 70년展’ 열고, 매점에선 아베 총리 얼굴 그린 과자 팔아
⊙ 도조 히데키 등에게 無罪 선고한 인도인 판사 기념비 등 日帝의 정당성만 강조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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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부부들이 가을볕을 받으며 유모차를 끌고 산책한다. 연인(戀人)들이 벤치에 앉아 장난을 치며 밀어(蜜語)를 속삭인다. 나이 지긋한 분들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둘러본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공원 내 조형물 앞 안내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한다. 경내 한가운데 있는 오래된 목조건축물에서는 150년 역사의 무게가, 입구의 무사상(武士像)에서는 자신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총 면적 9만 3356m². 1335만명이 사는 거대도시에 이만한 크기의 도심 속 공원이 있다는 것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난 9월 27일 그 공원을 돌아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편할 수가 없었다. 그곳은 예사 공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내가 공원이라고 지칭한 곳은 실은 신사(神社), 그것도 야스쿠니(靖國)신사였다.
 
야스쿠니로 가는 길
 
야스쿠니신사는 1869년 보신(戊辰)전쟁·세이난(西南)전쟁 등 메이지(明治)유신 이후의 내전(內戰)에서 전사(戰死)한 장병(將兵)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도쿄초혼사(東京招魂社)로 출발했다. 1879년 메이지 천황이 ‘야스쿠니’라는 이름을 내렸는데, ‘야스쿠니(靖國)’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말로 ‘나라를 안정케 한다’는 의미다. 이후 야스쿠니신사는 청일(淸日)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中日)전쟁, 태평양전쟁 등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일본 제국주의가 저지른 침략전쟁에서 죽은 일본군인들을 ‘신(神)’으로 기리는 곳이 되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군인들을 기리는 것이 뭐 그리 잘못이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기리는 ‘신’들 중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A급 전범(戰犯)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게 문제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야스쿠니신사를 군국주의(軍國主義)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것도, 구미(歐美)에서 야스쿠니신사를 ‘전쟁신사(war shrine)’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늦은 여름휴가 삼아 2박3일간 도쿄 여행을 하면서 내가 굳이 야스쿠니신사를 찾은 것은 참배하기 위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일본 총리나 각료(閣僚)들의 참배 문제로 말썽의 단초가 되곤 하는 야스쿠니신사가 도대체 어떤 곳인지 느껴 보고 싶어서였다.
 
도쿄지하철 신주쿠(新宿)선 이치가야(市ケ谷)역에서 내려 야스쿠니거리(靖國通)를 5분쯤 걷자 야스쿠니신사의 담장이 보였다. 이치가야는 귀에 익은 거리 이름. 일제시대에는 육군성·육군사관학교 등이 있던 곳이다. 일본의 군인들은 “야스쿠니에서 만나자”면서 전쟁터로 갔다. 그들이 전쟁을 기획하고 준비하던 이치가야에서 죽어서 만나는 야스쿠니의 거리가 그렇게 가깝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야스쿠니신사의 담장에는 10월 추계례대제(秋季例大祭)를 알리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곧 이어 야스쿠니신사의 남문(南門)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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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신궁의 결혼식 행렬. 일요일이어서인지 여러 쌍의 결혼식이 있었다.

기술(旣述)한 것처럼 야스쿠니신사의 모습은 일견 평화로웠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가장 먼저 불쾌감을 자극한 것은 신사 안에 있는 유물전시관인 유슈칸(遊就館).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원의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건물 이름은 중국의 고전 《순자(荀子)》에 나오는 ‘군자는 장소를 잘 택해 거처하고, 훌륭한 선비에게 배워야 한다(君子居必擇鄕遊必就士)’는 구절에서 따왔다나.
유슈칸에서는 ‘대동아(大東亞)전쟁 70년전(展)Ⅲ’이라는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이미 관람시간이 끝나 가고 있어서 유슈칸 내부를 돌아보지는 못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몇 년 전 야스쿠니신사에 다녀왔던 친구를 만났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유슈칸에는 꼭 들어가 보지 그랬어? 거기 들어가 보면, 미친놈들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
 
내 친구들 중에서 가장 냉철하고 지적(知的)인 그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할 만했다. 인간을 폭탄으로, 어뢰로 활용할 정도로 전쟁의 광기(狂氣)에 사로잡혔던 자들에 대해 ‘미친놈들’이라는 말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을 것이다.
 
戰犯들의 無罪를 주장한 인도인 판사
 
유슈칸 옆에는 가미카제 특공대원을 형상화한 특공대원상이 서 있다. 특공대원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법복(法服)을 입은 인물의 모습을 담은 비(碑)가 있다.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라다비노드 팔 판사. 인도 법조인으로 도쿄전범재판 당시, 재판관들 가운데 유일하게 전범들의 무죄(無罪)를 주장했던 인물. 그는 “정의(正義)의 외피(外皮)를 쓰고 있지만, 패전국 범죄만을 다룬 승자의 보복”이라며 전범들을 두둔했다. 사실 팔 판사는 세법(稅法)전문가로 국제법에는 문외한(門外漢)이었는데, 영미(英美)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에서 일제의 대동아공영권 주장에 공감했다고 한다. 비석 앞에 있는 함(函)을 열어보니, 영어와 일본어로 된, 비문의 내용을 알려주는 안내문이 있다. 2005년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라다비노드 팔 판사의 이름은 지난 9월 1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만찬에서도 나왔다. 모디 총리는 “일본인은 팔 판사를 존경한다. 자랑스러운 일이다”라면서 “팔 판사가 도쿄재판에서 한 역할을 우리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2007년 인도를 방문했을 때에도 “군사재판에서 기개 높은 용기를 보인 팔 판사는 많은 일본 사람들로부터 지금도 변함없는 존경을 받고 있다”고 말한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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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신사 경내에 있는 모자상(母子像)과 라다비노드 팔 판사 기념비.

개와 말, 비둘기까지 기리면서 …
 
팔 판사 기념비 옆에는 ‘모자상(母子像)’이 있다. ‘총후(銃後·전쟁 당시 일본에서 ‘후방’이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하던 말)’에서 전쟁을 견뎌내야 했던 민간인들을 기리는 것일까? 모자상 옆에는 전쟁터에서 죽은 한 일본 군인의 철모 등 유품을 전시한 작은 진열장이 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전몰마위령상(戰歿馬慰靈像), 군견위령상(軍犬慰靈像)이 서 있다. 가만히 보니 그 옆에는 조그만 탑도 하나 있다. 구혼탑(鳩魂塔), 즉 전쟁터에서 통신용으로 활용한 전서구(傳書鳩)의 혼령을 위로하는 탑이다. 순간 속이 확 뒤집혔다.
 
‘특공대원, 전범들의 무죄를 주장했던 법조인, 후방의 민간인을 기억하고, 거기에 더해 전쟁터에서 죽어간 말, 개, 비둘기 혼령까지 위로하다니…. 전쟁과 관련해서 이렇게 알뜰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왜 시오노 나나미가 전선의 병사들에게 상냥하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고 극찬한 ‘종군위안부’들을 기억하는 일에는 그렇게 인색하신가?’
이렇게 야스쿠니신사 안에 있는 시설물들을 돌아보니, 이건 자기중심적 역사인식을 넘어 이기적(利己的)인, 너무나도 이기적인 역사인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전(拜殿) 앞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딱 딱 소리를 내며 손뼉을 치고 난 후 고개를 숙이고 무엇인가를 기원하고 있었다. 저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받아 주는 신, 이 배전 뒤 본전(本殿)과 영새부봉안전(靈璽簿奉安殿)에 모셔진 신들이 침략자, 살인자라는 것을 알고 있을까?

 
일본인들은 왜 반성을 모르나
 
만일 독일 총리가 나치 전범이나 전사한 무장친위대(SS) 장병들의 묘역을 참배한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총리나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관례로 굳어져 가고 있다. 그들은 때때로 야스쿠니 참배를 자제하는 척하기는 하지만, 그건 한국이나 중국, 혹은 한·미·일 3각 동맹을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미국을 의식해서인 경우가 많다.
 
아베 신조 총리의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총재 특별보좌는 지난 9월 30일 미국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11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추진하는 만큼 중국 방문 전에는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아베 총리가 영원히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아베 총리는 집권 1년째였던 작년 12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바 있다. 일본인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과거에 대해 반성할 줄 모르는 것일까?
 
도쿄여행을 전후해서 읽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보면,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내 눈길을 끈 것은 저자가 일본인의 ‘제자리 찾기’라는 의식과 ‘수치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이었다.
 
저자는 ‘각자가 자신에게 알맞은 자리를 취한다’는 일본인들의 전시(戰時)슬로건에 주목한다. 이것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고 표현하는 계급제도의 소산이지만, 군국주의 일본은 이것을 국가의 전략적 목표로 승격시켰다. 한마디로 열강(列强)들 속에서 더 많은 자신의 몫을 달라, 더 나아가 일본은 이제 열강의 일원이라는 자리에서 벗어나 세계의 맹주(盟主)가 되겠다는 요구였다. 뒤늦게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후발(後發) 제국주의 국가인 일본이 선발(先發) 제국주의 국가에 자신들의 몫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한편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의 문화를 일러 ‘수치의 문화’라고 했다. 수치심이 주요 기제(機制)가 되는 ‘수치의 문화’는 남이 자기에게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크게 의식하는 문화다. 이는 도덕의 절대적 표준을 역설하며 양심의 계발(啓發)을 크게 기대하는 구미(歐美)의 ‘죄의 문화’와는 다르다. ‘수치의 문화’도 사회 내부에서는 일정하게 윤리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선악(善惡)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자신의 죄를 절대자 앞에 고백하고 회개(悔改)한다는 개념은 없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해서 생각해 보자. ‘각자가 자신에게 알맞은 자리를 취한다’는 사고방식대로라면 일본의 제국주의전쟁은 그들에게는 세계질서 속에서 자신의 정당한 몫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건 일본인들에게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었다. 때문에 일본인이 죄의식 때문에 고개 숙여 사과할 일은 아니었다. 아니 절대적 선악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없는 일본인들로서는 그게 왜 사과해야 할 문제인지 자체를 모르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루스 베네딕트도 “일본은 패전 후에도 ‘대동아’ 이상을 부정해야 할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인 포로 중에서도 그나마 맹목적 애국주의의 색채가 옅었던 사람조차도 대륙 및 서남태평양에 대한 일본의 계획을 규탄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루스 베네딕트는 《국화와 칼》 말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본의 행동동기는 기회주의적이다. 일본은 만약 사정이 허락한다면 평화로운 세계 속에서 그 위치를 찾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무장된 진영으로 조직된 세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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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카제 특공대원을 기리는 특공대원상. 야스쿠니신사 경내 곳곳에는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상징물들이 있다.

‘晉擊의 大臣’ 아베 신조
 
물론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게 된다고 해서 그게 바로 군국주의로의 회귀(回歸)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은 ‘미국의 2중대’ 이상의 역할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은 20세기 초·중반처럼 혈기왕성한 청년(靑年)국가가 아니라, 노년(老年)국가다. 하지만 직접적인 군사력의 행사가 아니라고 해도, 외교적·전략적 역량을 이용해 일본은 제자리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그러한 노력이 대한민국의 국제적 입지와 국익(國益)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솔직히 일본 총리나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논란이 있을 때마다,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를 위해 죽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기리건 말건, 신경 쓰지 말자.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기보다는 극일(克日)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는 것이 먼저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막상 야스쿠니신사를 돌아보니, 일본인들의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인 역사인식에 대한 불쾌감과 역겨움이 밀려 왔다.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어서 그런가?
 
신사 입구에 있는 기념품점. 야스쿠니신사의 모습을 담은 패(牌)나 열쇠고리 같은 기념물 외에 히로히토 전 천황, 아키히토 현 천황 부부의 사진을 담은 액자가 특이하다. 갑(匣)에 아베 신조 총리의 얼굴을 만화처럼 그린 과자들도 있다. 유명 만화 ‘진격의 거인’을 패러디한 ‘진격의 대신(晉擊の 大臣’(‘晉’은 아베 총리의 이름에서 따온 글자임)이라는 과자도 있다. 어찌 됐건 ‘잃어버린 20년’을 극복하고 굴기하는 중국에 맞서려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아베 총리에 대한 일본인들의 기대감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9월 28일에는 시부야(澁谷)에 있는 메이지신궁(神宮)에 가 보았다. 이곳은 메이지 천황과 그의 부인인 쇼켄(昭憲) 황후를 신(神)으로 모시는 곳이다. 1920년 만들어진 메이지신궁은 70만m²의 넓이를 자랑하는 웅대한 도심 속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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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신궁에 있는 메이지천황 일대기 그림에는 ‘日韓合邦’ 그림도. 서울 남대문 인근의 모습을 담았다.

메이지신궁의 그림들
 
마침 일요일이어서인지, 메이지신궁 곳곳에서는 전통 혼례식이 열리고 있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신관(神官)과 신녀(神女)들이 인도하는 결혼식 행렬이 마냥 신기한지, 외국인 관광객들은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신궁 다른 한쪽에서는 기모노 차림의 나이 든 여성이 막 결혼식을 마친 딸을 떠나보내고 있었다. 신궁 마당에서는 외국인들을 포함한 관람객들이 나무조각에 소원을 적고 있었다.

신궁 경내에 있는 쉼터에는 메이지 천황의 일생을 담은 80개의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메이지신궁 구내에 있는 메이지기념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들을 작게 복사한 것들이었다. 이 그림들 중에는 당연히 1910년의 ‘일한합방(日韓合邦)’을 담은 것도 있었다. 이 그림에는 합방조약을 체결하는 양국 고관(高官)들의 모습도, 일본군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합방 당시 경성 남대문 주변 모습’이라는 설명 아래, 초라한 서울거리의 모습을 그려 놓았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합방’의 기만성과 강제성을 감추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일본의 군사적 위용과 경제적 번영을 묘사한 다른 그림들과 대조적으로 낙후된 조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합방’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싶어서였을까? 그림 설명 중에서 ‘조선정부의 동의를 얻어’ 운운하는 부분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문득 조선의 마지막 임금 고종(高宗)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종 이희(李熙)와 메이지 천황 무쓰히토(睦仁). 고종은 1863년 11살의 나이로 즉위, 1907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메이지 천황은 1867년 15살의 나이로 즉위, 1912년까지 제위(帝位)에 있었다. 비슷한 나이에 왕이 되어 비슷한 시대를 살았지만, 두 사람의 치세(治世) 동안 한일 양국의 운명은 극(極)과 극으로 갈렸다. 결국 한때 황제를 칭했던 한 사람은 망국(亡國)의 군주, 메이지의 번왕(藩王)이 되었다. 다른 한 사람은 죽어서 신(神)으로 모셔졌고, 지금도 일본인들로부터 ‘대제(大帝)’로 기림을 받는다.

무엇이 그들의 운명을 갈랐을까? 어떤 이들은 고종을 대단한 계몽전제군주라도 되는 양 추어올리면서, 우리의 자주적 근대화 노력을 짓밟은 일제의 만행을 소리 높여 규탄한다. 일제의 침략만행을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황현(黃玹)의 《매천야록(梅泉野錄)》이나 윤효정(尹孝定)의 《풍운한말비사(風雲韓末秘史)》 같은 책을 보면, 일제의 침략 이전에 이미 조선은 나라가 아니었다. 그 무책임과 부패와 무능과 분열, 그리고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無知)는 끔찍할 정도다. 청일전쟁 발발 후 일본공사가 갑오경장(甲午更張)을 강요해 올 무렵, 황현은 이렇게 탄식했다.

“경전에 ‘국가가 필시 스스로 자기를 해친 연후에 남이 치고 들어온다’고 하였으니, 아 슬프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임금과 신하들은 각성하지 못했고, 결국 그로부터 16년 후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이희와 무쓰히토의 엇갈린 운명을 생각하며 메이지신궁을 나오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지금 우리 위정자(爲政者)들은, 100년 전 나라를 망쳤던 그들보다 얼마나 더 나은가?’ 자신이 없었다.
 
가스미가세키에서

그런 생각은 도쿄에서의 마지막 날인 9월 29일, 일본 정치·행정의 중심부인 나가타초(永田町)와 가스미가세키(霞ケ關), 고쿄(皇居·황궁) 일대를 둘러보면서 더욱 강해졌다.

국회의사당역에서 나오자마자 총리 직속 기관들을 관장하는 내각부(內閣府)청사가 나왔다. 길 건너편으로 내각총리대신 관저(官邸·집무실)가 보였다. 사진을 찍자 경찰관이 제지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는 경찰관들이 쫙 깔려 있었다. ‘특별경계강화기간’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총리 관저 대각선 방향으로는 국회의사당이 보였다. 천천히 걸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총리 관저에서 내각부, 국회의사당이 글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한 위치에 있었다.
국회 회기 중이서인지 의사당 주변에는 경찰관들이 많았다. 그들은 긴 장대를 들고 있었지만, 우리를 검문하거나 제지하지는 않았다. 다만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남묘호랑게교’를 외우며 염불을 하던 세 명의 승려에게는 조용히 다가가 제지했다. 아마 회기 중에는 국회 앞에서 소란을 떠는 행위가 금지되어 있는 듯했다. 허구한 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확성기 시위가 열리는 우리의 현실이 떠올랐다.

국회의사당과 대각선 쪽에는 외무성 건물이, 그 맞은편에는 재무성 건물이 있었다. 외무성 정문 길 건너편에는 도쿄지방재판소와 법무성 건물이 있다. 국토교통성, 경시청(경찰청), 경제산업성 등의 건물, 그리고 그 밖의 정부 부처들을 수용하는 여러 개의 중앙합동청사 건물들도 다 인근에 있었다. 이곳이 일본의 관청가인 가스미가세키 거리다. 총리 관저와 내각부, 정부 청사들, 국회의사당이 모두 자동차로 2~5분, 걸어서 10분이면 오고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일본헌법상 ‘통합의 상징’인 천황이 사는 고쿄는 자동차로 천천히 달려도 5분이면 갈 수 있을 거리다. 많은 대기업 본사들도 같은 권역에 있다.

한숨이 나왔다. 대통령과 국회는 서울에, 정부 부처는 세종시로 떨어져 있는 우리의 현실이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총리와 내각, 국회, 천황, 거기에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들까지 지근(至近)거리에 있어 수시로 머리를 맞댈 수 있는 일본과 정부기관·공공기관이 전국에 흩어져 있어 공무원들이 하루 4~5시간을 길바닥에 버려야 하는 한국, 과연 어느 나라가 더 경쟁력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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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한 지하철역에서 발견한 납치자 문제 포스터. 납북된 일본인을 반드시 귀환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일본의 관심사들을 보여주는 포스터들

거리 곳곳에서 발견한 포스터들 중에서는 지금 일본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성장전략 실행’ ‘국민의 안심과 안전’ ‘국익수호’를 내건 중의원(衆議員) 선거 출마자의 포스터는 지금 일본 정치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었다. 지하철역에서 본 납치자 문제 포스터는 ‘국가의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도쿄도청(都廳) 인근에서 본 1964년 도쿄올림픽 50주년 및 2020년 도쿄올림픽 축하 포스터들은 오늘의 일본을 일구어 낸 고도성장 시기의 영광을 되새기면서 다시 한번 내일을 향해 달려가 보자고 국민들을 독려하는 듯했다. 우리의 위정자들에게, 아니 나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
출처 | 월간조선 2014년 11월호
등록일 : 2014-10-19 17:16   |  수정일 : 2014-10-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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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호쿠토  ( 2014-10-20 )  답글보이기 찬성 : 15 반대 : 25
베트남을 침략해서 베트남인을 학살한 병사를 매장하고 있는 장소를 한국 대통령은 잘 참배합니다만, 문제 없습니까?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의 전쟁 박물관과 같은 한국의 전쟁 박물관에서도, 베트남전쟁을 정당화하는 이기적인 전시를 보았습니다만, 그것을 본 적은 없습니까?
염성주  ( 2014-10-20 )  답글보이기 찬성 : 11 반대 : 9
배진영기자님 ♡..
고맙습니다 4514;말로만 듣던 야스쿠니신사의 내부 모습과 일본정가의 풍경들을 잘 설명해주셨네요4514;구한말의 치욕을 잊어버리고 당리당략만을 생각하는 작금의 정치인들을 생각하니 4514;니라의앞날이 가마득함을 느낌니다!!! 그래도 배기자님의 글을 통해 희망을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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