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메뉴

시리즈 | 배진영 기자의 어제, 오늘, 내일
  1.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기사목록 
  2. 글자 작게 하기글자 크게 하기

죽음 앞에서도 미래를 이야기하는 작가 복거일

“잊히고 기억되는 것이야 그가 통제할 수 없지만, 적어도 위엄을 지니고 죽음을 맞는 것은 그가 통제할 수 있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지난 4월4일(금) 자유경제원(구 자유기업원) 세미나실에서는 ‘자유포럼’의 복거일 선생님 초청 강연이 열렸다. 복거일 선생님이 간암으로 투병 중이시고 여생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보도 때문인지 자유주의진영의 많은 분들이 참석했다.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신중섭 강원대 교수, 민경국 강원대 교수, 강규형 명지대 교수, 조동근 명지대 교수, 김광동 나라정책원장, 남정욱 숭실대 교수, 논술강사 오태민 선생 등 나와 친분 있는 분들의 모습이 보였다. 모두들 복거일 선생님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그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더 듣고 싶어 나온 것이 분명했다.

강연 초입에 복 선생님은 자신의 투병에 대한 얘기가 언론에 나가게 된 경위를 짤막하게 설명하셨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를 늘 내던 출판사가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내게 됐는데,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간암투병 중인 자신의 절박한 사정을 얘기할 수 밖에 없었고, 소설을 읽은 눈치 빠른 기자가 출판사에 확인한 후 그 사실을 보도했다는 얘기였다.

자신의 투병에 대한 얘기는 그게 전부였다. 뭔가 ‘고별강연’ 같은 분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당신의 삶이나 작품 활동에 대한 회고도, 이 나라 자유주의 운동에 대한 당부도 없었다.
북한의 무인기(無人耭)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 강연의 주된 내용은 AI(인공지능)가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인류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복 선생님이 항상 관심을 가져온 진화생물학과 관련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기도 했다. 강연 내용의 대부분은 최근 나온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 나오는 얘기들이었다.
복 선생님이 인간의 판단력의 한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내 것도 오진(誤診)이면 좋겠는데....”라고 농담을 던지자 폭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모든 물질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는 ‘138억×10억×10억’년 후의 시평(時平)을 말씀하시는 데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겁(劫)에 비견할 만한 까마득한 시평 앞에서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개인적-공적 고민들은 한 없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서 복 선생님은 자신을 모델로 한 작중 인물 현이립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현재의 초라함, 더러움, 불의, 불완전에 실망하거나 절망하고서 아득한 과거로, 실재한 적이 없는 이상적 과거로, 돌아가기를 열망한 사람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런 과거지향적 열망은 궁극적으로 진화와 진보를 막는 힘으로 작용했다. 그는 과거로 눈길을 돌린 적이 없다. 그의 눈길은 생각하기 어렵고 두려운 미래로 향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강연에서도 복 선생님은 당신이나 우리들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미래, 그것도 까마득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셨다. 우리에게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라고 다그치신 셈이다.

“잊히고 기억되는 것이야 그가 통제할 수 없지만, 적어도 위엄을 지니고 죽음을 맞는 것은 그가 통제할 수 있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에서 현이립이 다짐하는 말이다. 이 말처럼, 나는 지난 며칠 ‘위엄을 지니고 죽음을 맞는’ 당당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그것도 종교가 아닌 이성(理性)에 의지해 그럴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경이(驚異)다. 나도 죽음의 순간 그렇게 담담하고 당당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등록일 : 2014-04-07 오전 9:26:00   |  수정일 : 2014-04-07 16:23
  1. 프린트하기 
  2. 기사목록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2건
독자 리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병숙  ( 2014-04-07 )  답글보이기 찬성 : 13 반대 : 10
이 시대에 복거일 선생처럼 용기있는 사람은 못봤다.
부곡촌음  ( 2014-04-07 )  답글보이기 찬성 : 22 반대 : 12
복거일 선생 = 실학자
맨위로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하단메뉴

개인정보 취급방침독자센터취재제보광고문의조선뉴스프레스인스타그램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